� 키키(KiiKii), 〈404 (New Era)〉
어제 지하철을 환승하다가 문득 나는 걷던 걸음을 멈췄다. 스크린 도어에 비친 내 얼굴 뒤로 전광판이 번쩍였고, 은빛 크롬처럼 번들거리는 조명 아래에서 사람들의 움직임이 묘하게 기계적 리듬을 만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약속 시간이 다가오고 있어 서둘러야 했지만, 어디서 본 것 같은 느낌에 손끝으로 오래된 감각을 더듬듯 이어폰 줄만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Y2K를 기억하는 세대에게 그것은 투박한 폴더폰을 닫을 때의 마감, 반짝이는 젤리 액세서리와 과장된 네온의 질감과 같이 보였다. 그런데 키키(KiiKii)의 〈404 (New Era)〉는 그 추억을 그대로 복원하지 않는다. 테크토닉의 각진 팔 동작과 크리스 크로스 스텝처럼, 몸을 좌우로 튕기며 방향을 바꾸는 속도를 2026년식으로 재가공하여 보여준다. “404 Not Found in the system”이란 가사는 그것을 단순한 실패 지점에 대한 외침으로 읽히지 않는다. 오히려 시스템이 요구하는 좌표값을 일부러 응답하지 않는, 약간의 장난과 도발이 섞인 태도로 보인다. 또 “404 좌표 밖의 지점”은 길을 잃은 변명이 아니라 ‘내가 서 있는 바닥을 바꾸겠다’는 선언에 가까운 것 같다. 그리고 이 선언은 무겁게 투쟁하지 않는다. 오히려 “나 잡아봐라 Off the Wi-Fi”처럼 웃으며 접속을 끊고, “말을 안 해도 I’m already on this vibe”라며 설명을 생략해버리고 만다. 이 곡의 컴백 컨셉이 Y2K와 테크토닉을 ‘복고’가 아니라 ‘새 규칙의 춤’으로 만든다는 점에서, 404는 오류 코드가 아니라 새로운 박자를 만들어낸다. 찾아지지 않는다는 사실이 곧장 불안으로 전환되지 않는 순간, 우리는 잠깐이나마 연결되어 있어야 할 것 같은 강박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리고 그 벗어남이야말로 〈404 (New Era)〉가 만드는 정동(Affect, 신체에서 일어나는 무의식적·생리적 자극)이다.
그리고 이것을 설명하기 위해 질 들뢰즈(Gilles Deleuze)의 철학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들뢰즈가 진단한 “통제사회”란, 규율이 벽과 규칙으로 인간을 가두던 시대를 지나 이제는 더 유연한 방식으로 우리를 관리하는 시대를 의미한다. 출입증과 CCTV 같은 고정된 감시만이 아니라, 접속 로그, 추천 알고리즘, 위치 정보, 반응 속도 같은 흐르는 데이터가 이제는 사람을 계속 평가하고 조종한다. 중요한 것은 통제가 강압적으로만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통제는 편리함과 맞바꾼 친절한 제안처럼 다가오고, 유저의 편의성 도모라는 명목으로 자기 정당성을 얻는다. 그래서 더 잘 스며든다. 여기서 주목할 만한 개념은 ‘변조(modulation)’다. 그에게 있어 변조란 고정된 규칙으로 한 번에 판정하는 것이 아니라 상황에 맞춰 계속 형태를 바꾸며 개인을 조종하는 방식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 한번 결정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매 순간의 반응과 성과가 점수처럼 업데이트되는 것이다. 그리고 ‘탈주선(ligne de fuite)’이란 개념 역시 중요하다. 들뢰즈는 탈주선을 기존의 배치(관계망, 규칙, 역할, 평가)에서 다른 연결을 만들어 내는 움직임으로 보았다. 즉 기존의 길을 부수겠다는 거창한 선언보다, 몸이 다른 리듬을 선택해 새로운 통로를 열어젖히는 미세한 방향 전환인 것이다. 변조가 우리를 계속 ‘업데이트 가능한 대상’으로 만들며 붙잡는다면, 탈주선은 그 붙잡힘 속에서 새로운 결을 만들어 ‘다르게 이어지기’를 가능하게 한다. 이 둘은 맞물려, 변조는 우리를 잡기 위해 더 부드럽게 변하고, 그럴수록 탈주선은 더 과격한 혁명 대신, 더 민첩한 춤처럼 나타난다. 〈404 (New Era)〉가 2026년식 테크토닉을 불러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는 것 같다. 각이 선 동작과 빠른 방향 전환은, 붙잡히는 방식을 바꾸는 몸의 기술이 된다. 이 곡의 ‘new era’는 과거의 미학을 빌리되, 통제의 시대를 통과하는 새로운 움직임을 제시한다는 데서 성립한다.
가사에서 “404 Not Found in the system / 404 The new era era”라고 첫 소절부터 일반적 판정을 비틀어 놓는다. 시스템이 ‘찾지 못한다’는 말은 보통 버그로 인식되므로 곧바로 복구가 요구되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 곡은 404 코드를 복구의 대상으로 보고 있지 않다. 되려 “404 좌표 밖의 지점”이라고 말하며, ‘찾아지지 않음’을 ‘오류점’에서 ‘위치해도 괜찮은 곳’으로 바꾼다. 여기서 들뢰즈의 변조 개념이 유효해진다. 통제의 변조는 우리에게 끊임없이 위치를 요구한다. 지금 어디냐, 무엇을 하고 있냐, 어떤 상태냐, 어떤 카테고리냐. 대개의 그 질문은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라 ‘데이터로 업데이트 가능한 상태’로 우리를 붙들어 두기 위함이다. 그런데 곡은 “404 우리 신호는 Question / 404 안 떠 Radar radar”라고 말한다. 신호가 물음표라는 것은 응답을 거부한다는 말이면서 동시에 응답이 하나의 정답으로 고정되는 것을 미루겠다는 말처럼 들린다. 또 레이더에 안 뜬다는 표현은, 변조의 작동을 위해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좌표 입력을 거부하는 태도에 가깝다. 이어 나오는 결정적인 라인은 “404 백지를 내도 백 점”이다. 통제 사회에서 백지는 최악의 점수다. 입력이 없으면 평가가 불가능하고, 평가가 불가능하면 경쟁에서 밀려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 곡은 백지를 100점으로 뒤집는다. 여기서 중요한 건 대충 살아도 된다라는 무책임이 아니다. 점수 체계 자체가 상황에 따라 우리를 조종하는 장치임을 폭로하는 것이다. 백지를 100점으로 말하는 순간, 점수는 절대적 진실이 아니라 변조의 도구로 드러난다. 곡의 언어는 가볍지만, 효과는 명확하다. 평가의 장치가 요구하는 입력을 잠시 비워 두면서, ‘내가 지금 이 시스템에 꼭 업데이트되어야 하냐’라는 감각을 체험하게 만든다. “Always riding low 안 터져 안테나”라는 구절도 같은 방향을 갖는다. 높이 서서 신호를 잡는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라, 낮게 이동하며 신호가 터지지 않는 상태를 선택하고 있다. 이것 역시 결함이 아니라, 변조가 붙을 손잡이를 줄여버리는 방식이다. 404는 실패가 아니라, 변조의 요구에 즉각 응답하지 않는, 지연을 하기 위한 기술로 읽힌다. 그리고 지연이 곧 새로운, 나만의 리듬을 만든다.
그리고 한편에서는 들뢰즈의 탈주선이 겹쳐 보인다. “나 잡아봐라 Off the Wi-Fi”는 관계를 끊겠다는 선언이 아니라, 붙잡힘의 방식을 협상하겠다는 태도다. 통제의 시대에 접속은 의무가 되기 쉽다. 늘 온라인이어야 하고, 늘 반응해야 하며, 늘 설명 가능한 상태여야 한다. 그런데 곡은 오프라인을 부정적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오히려 장난스럽게 “잡아봐라”라고 말하며, 붙잡는 쪽의 권력에 작은 균열을 낸다. 하지만 탈주선은 ‘도망’이 아니라 ‘다른 연결의 개시’이다. 가사는 곧바로 “말을 안 해도 I’m already on this vibe”라고 이어진다. 설명을 생략한 채 성립하는 공기, 말보다 먼저 전달되는 리듬이 있다는 선언이다. 이어서 “경계를 넘어서 이미 Outta town”이라고 말할 때, 탈주선은 지리적 이동이 아니라 배치의 이동이 된다. 다시 말해 도시를 벗어났다기보다는, 도시가 요구하는 규칙적 리듬에서 벗어났다는 것이다. 테크토닉의 빠른 전환처럼, 기존의 정렬된 스텝을 그대로 밟지 않고 “Criss cross, lip gloss / Missed some 괜찮아 Uh uh”라며 누락을 본인만의 개성처럼 처리한다. ‘놓쳤다’는 것 역시 즉시 교정해야 할 결함이 될 수 있음에도, 새로운 동작의 일부로 편입시키는 태도인 것이다. 후렴의 “(Bye) All left behind / (Bye) 모든 짐은 다 놔둘게”는 과거를 폐기하겠다는 과격한 단절이 아니라, 붙잡히는 관성을 잠시 내려놓는 가벼운 동작에 가깝다. 특히 “All the girlies to the floor 들어 손 흔들어 몸 / Wink wink 메롱”은 이 탈주선의 성격을 더 분명히 한다. 통제의 언어가 개인을 고립된 데이터로 만들 때, 이 노래는 집단이 오를 수 있는 바닥(floor)을 만든다. 손을 흔들고 몸을 흔드는 행위는 ‘입력’이 아니라 ‘함께 흔드는 것’이다. 그래서 “Put down your phone / Look me in my eyes”는 훈계가 아니라, 접속의 기본값을 잠깐 꺼서 다른 회로를 열어보자는 제안이다. 폰을 내려놓는 순간 눈이 연결되고, 데이터가 아니라 몸의 리듬이 신호가 된다. 마지막으로 “We can have it all 골라줘 31 / Tell me what you want”는 선택의 과잉을 장난처럼 재현하면서도, 곧바로 “Let’s run into unknown”으로 방향을 튼다. 끝없는 옵션이 우리를 붙잡는 시대에, 탈주선은 ‘더 나은 선택’이 아니라 ‘미지로 뛰어드는 움직임’에 의해서 생길 수 있다. 그래서 이 곡의 “keep on surfing”은 도착의 약속이 아니라, 불확실함 위에서 균형을 연습하는 기술이 된다.
정리하자면, 〈404 (New Era)〉의 “Not Found in the system”은 존재의 부재 선언이라기보다, 통제 사회의 변조가 요구하는 ‘즉각적 좌표 제출’을 지연시키며 평가가 붙잡을 수 있는 손잡이를 없애거나 혹은 헐겁게 만드는 말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 신호는 Question”, “안 떠 Radar radar”, “백지를 내도 백 점”은 입력과 판정이 자동으로 이어지는 회로를 끊고, 점수와 검색 가능성이 삶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실감하게 해 준다. 동시에 “Off the Wi-Fi”, “Outta town”, “All the girlies to the floor”, “Put down your phone / Look me in my eyes”, “keep on surfing”은 탈주선의 리듬으로, 고립된 개인의 데이터가 아니라 함께 흔들리는 바닥과 몸의 연결을 새로 만든다. 만약 들뢰즈가 이 노래를 들었다면, 그는 404를 단순한 오류 코드가 아니라 변조의 회로에서 잠깐 빠져나와 다른 연결을 발명하는 ‘작은 탈주선의 신호’로 읽었을지 모르겠다. 나 역시 어제 환승하러 갈 때에 잠깐 스마트폰의 음악을 끄고 내 걸음의 속도를 바꾸었다. 내 위치를 증명하는 일보다 먼저, 내 호흡과 리듬이 어떤 것인지 확인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덩치만 커졌지 여전히 일곱 살의 심장을 가진 나는, 앞으로도 나는 내 주변의 모든 연결을 끊겠다는 선언 같은 것은 하지 않을 것 같다. 다만 어딘가 붙잡혀 있는 마음을 조금은 내려놓고, 필요할 때만 가볍게 접속하며, 미지의 파도 위에서 균형 잡는 법을 한 번 더 연습해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