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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필영 Jun 13. 2019

곰팡이와 함께한 시간

마음의 빈자리를 채우는 방법



1-1. 남 탓하기.



 

집 밖을 나서면서 휴대폰과 지갑을 챙겼지만 뭔가 빠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매일 나오는 음식물쓰레기를 모아서 밖에 내다 놓기가 귀찮아 냉동실에 얼려 놓는 그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어제 갔었던 술자리에서는 그다지 남은 게 없다. 보통의 술자리에 보통의 사람들이었다. 컵은 잊을 만하면 맥주로 채워졌고 의자는 엉덩이들로 채워져 있었다. 그 공간은 음악 소리와 말소리가 섞여서 채워져 있었다.

자정이 됐을 무렵 집으로 왔다. 집에 오면 말소리도,  음악 소리도 없다. 적막한 집에서 빨래를 갠다. 개고 나서는 각자의 자리로 채워준다. 빨래는 모두 알맞은 위치로 들어갔다.



그러나 뭔가가 아직 채워지지 않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그 느낌을 채우기 위해 다시 집을 나왔다. 그리고 2층에 bar라고 적힌 곳을 갔다. 거기서 잭다니엘을 시켰다. 옆 테이블에는 다트 던지기를 하고 있었다. 나는 고향에 있는 친구들과 카톡을 하며 양주를 한 잔씩 마셨다. 스트레이트로 마시기도 하고 얼음을 정성스럽게 넣어 희석시켜 먹기도 했다. 그러나 그럴수록 점점 더 넓어지는 그 공간을 감당할 수는 없었다.

그것은 마치 끝없이 펼쳐지는 수평선 너머 바다 같았다. 끝은 있을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을 뿐. 내 속도로 다다를 수 없을 뿐. 결국 Bar라고 적혀있던 2층의 그 공간에서도 별 승산 없이 문을 열고 나왔다.



들어갈 때와 차이점이 있다면 진한 립스틱으로 입술을 채웠던 것이 지워졌다는 것과 약간의 정신머리를 그곳에 때어놓고 집에 왔다는 것이다.

자고 일어나니 출근을 해야 해서 양치를 하고 정장을 입고 집을 나섰다. 그때 나는 습관적으로 썸을 타고 있는 남자에게 카톡을 보냈다. 타지 생활에서 남자란 공간 좁히기의 치트키 같은 존재이다. 현실 속의 대화를 전화로 밤새 하다 보면 공간이 좁혀진 기분이 들었다.



 "뭐 먹고 있어?"

라는 나의 질문에 비록 초점이 맞지 않았지만 밥그릇에 삼겹살을 올려놓은 사진을 보내준 그 남자 덕분에 무거웠던 머리가 조금 가벼워졌다. ‘아침부터 웬 삼겹살’이라는 생각도 잠시 했지만 현실이라는 것에 안도했다.

한 근으로도 살 수 있고 만 원어치만도 살 수 있고 250그램도 살 수 있는 삼겹살은 어떤 방식으로든 현실이다.



출근을 했다.

짧은 검정 머리를 하고 빨간 립스틱을 바르고 대충 지어진 그 모델하우스 안에 모형을 보며 이렇게 저렇게 같은 동선으로 돌아다니다 보면 나 또한 모형이 되는듯한 기분이 든다. 늘 같은 정장을 입고. “여기가 거실이고 여기가 안방입니다. 한화 브랜드 믿을만한 건 다들 아시죠.”라는 같은 멘트를 한다. 어떤 것이 맞는 행동인지는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뭐가 중요한가. 하루에 200통씩 티엠(무작위 통화)을 돌리면 그중에 20명 정도는 화를 내었고 4명 정도는 호의적이었고 3명 정도는 신고를 한다고 소리를 질렀다. 그런 것쯤이야 아무래도 좋다고 생각했다. 계약만 할 수 있다면 말이다. 오늘도 내방 일지를 작성했다. 4칸을 모두 채웠다.



그러나 오후에 호의를 보여서 모델하우스에 직접 오신 50대 아저씨는 웃으며 실투자금 4천만 원은 없고 사은품이나 받을까 싶어서 와봤다고 했다. 짧은 검은 머리에 빨간색 립스틱을 바르고 그때도 웃으면서 말했다.


 

“선생님, 잘 오셨어요.”



퇴근 후에는 회식이 잡혀있다. 팀장님과 회식을 할 때면 내가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음식만 먹으러 다녔다.



“오늘은 지리탕을 먹으러 갈까.? 그래 오늘은 콩나물해장국 어때?”



아무렇지도 않은 가벼운 그 음성을 듣는 순간 갈 수 없는 핑계를 찾게 된다. 오늘도 친구가 울산에서 올라왔다는 핑계를 남기고 모델하우스 앞에 있는 초밥집으로 갔다.

연어가 들어오는 날은 화, 금이었다. 그러나 나는 밤마다 이렇게 연어초밥을 포장해와서 5일을 주기적으로 먹는다. 그냥 내가 필요하면 5일 동안 먹는 것이다.



언제 잡혔는지 보다는 내가 먹고 싶은지가 중요하다. 왜?라고 누가 묻는 것에 진절머리가 났다.

왜 용인에 왔어요? 울산에는 파리바게트가 없는가 봐요? 울산의 파리바게트에도 커피를 파나요? 가격이 여기랑 같나요? 끝없이 이어지는 질문을 듣다 보면 듣는 것만 해도 지겨워졌다.



그래서 아무 질문도 없이 혼자 집에서 먹었다.

소음이 거의 없는 반 지하방에서 쾌쾌한 냄새를 맡으며. 그래도 12개를 먹는 그 순간은 ‘행복이다.’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채워진 마음이 들었다. 어쩌면 그 정도의 행복이면 된 거였다.



나는 뭘 바라고 29살이라는 나이에 분양 일을 하겠다고 여기 낯선 용인에 온 걸까.

게다가 더 낯선 평택의 도시형 생활주택을 울산에서만 29년 산 내가 팔고 있다.

판교고 분당이고 처음 들어보는 소리에,  옆 사람이 하는 말을 그대로 따라 한다.


 

 “평택이요 선생님. 제2의 분당이 될 겁니다! 지금 사셔야 됩니다.”



그런 것이다. 나는 그저 레고 장난감에서 포크레인 안에 사람이었던 것이다. 1. 흙을 판다. 2. 흙을 든다. 3. 옆에 흙을 붓는다. 4. 반복한다. 그 안에 영혼이 빠져있었다. 낯선 모델하우스에서 지어지는 곳은 더 낯선 그곳의 성공을 내가 말한다. 대형마트 직원의 45000원입니다. 할부해드릴까요? 봉투 필요하세요? 보다도 훨씬 더 의미 없는 말이 내가 하고 있었던 말이었다. 어쩌면 그 사실을 나 빼고는 다 알고 있었을지 모른다. 진심으로 나를 응원해주는 사람이 그곳에 적어도 한 명은 있어야 했다. 콩 심듯이 누군가가 한 명 콕 심어놨더라면 나는 그런 식으로 생활하지 않았을 것이다. 성인이 되어서도 나이트를 한 번도 가보지 않았다.



처음 나이트를 갔던 것이 지금의 팀장님과 울산에 있을 때 50대 이상 아줌마 아저씨들이 가는 성인나이트였다.

팀장님은 나이가 맞았고 나는 작년이었으니 28살이었다. 그곳에서 팀장님과 춤을 추었다. 그러나 별도의 음흉하거나 찐득한 시선도, 행동도 없었다.

그냥 팀장님은 20대처럼 신나게 춤을 추었다. 나는 하이힐을 신고 있어서 그냥 박수만 쳤지만 모두들 우리를 쳐다보았다. 내가 너무 어렸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왜 팀장님은 나와 함께 그 나이트에 갔던 걸까?

어쩌면 거기서부터 뭔가가 잘못된 건 아닌지 생각해본다. 그렇지만 지금 생각해도 왜 나를 데리고 그곳을 갔는지 모르겠다. 그때 아파트 분양 사무실에는 나머지 분양하는 팀장님 또래의 아줌마들이 엄청 많았다.

그분들과 갔으면 팀장님은 훨씬 더 재밌었을 것이다. 회식을 해봐서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정말 나와 사심 없이 친구가 되고 싶었던 걸까? 그랬다면 여기 용인에서도 정말 친구처럼 대해 줬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 여기서는 또 그냥 팀장님이다.



나는 이럴 때 좀 헷갈린다. 그 속도, 좀 가르쳐줬으면.


 

 “이제 자네,  용인에 가면 나와 친해질 일은 없어. 기껏해야 팀 회식으로 지리를 먹으러 갈 거야.

그래도 용인에 가겠는가?”



그랬다면 절 때 가지 않았을 것이다. 지리도 싫고, 이랬다 저랬다 하는 사람도 싫기 때문이다.



비가 오는 날 유달리 냄새가 많이 나는 방에서 생각한다.

남 탓이라도 하자. 여기 공간이 모두 곰팡이로 뒤덮이기 전에,  우울증에 빠지기 전에 그만둬야 한다.



모든 것을 내 탓으로 돌리는 일은.



예전 나의 요가 선생님도, 얼마 전 읽은 책에서도 그랬다.

모든 것이 내 결정이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해진다고.


 

 “필영 씨. 필영 씨가 여기에 있는 것도 이것을 하는 것도 모두 필영 씨의 결정이에요.”



개뿔이다. 나는 점점 더 우울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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