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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필영 Sep 01. 2019

단골 노래방이 주는 힘

 

입구에 들어가면 가입된 이름 있으세요?라고 물어본다.

 “한서희요.”

하고 친구 이름을 대면, 그쪽에서 항상 아, 하는 목소리와 함께 몇 번 방으로 갈지 안내해 준다. 스무 살 때부터 자주 갔었던 단골 노래방의 흔한 풍경이다.

늘 아,를 듣고 늘 한서희라고 했다. 많게는 일주일에 세네 번씩 갔으면서 왜 친구 이름으로 된 멤버십을 내 이름으로 바꾸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아무튼 7년이나 나는 그곳에 한서희로 다녔다. 주로 7번 방, 14번 방 때로는 제일 끝 방인 19번 방을 배정받았다.

취향이 확실해진 이후부터는 그곳을 혼자 다녔다.

휴대폰 가게를 창업한 이후 여러 손님들을 접하면서 그들에게 아무렇지도 않게 안부 인사를 하는 시간이 늘어남에 따라 노래방에 있는 시간이 늘어났다. 이번 휴가는 어디로 가냐는 말이나, 오늘은 어딜 다녀오셨냐는 둥 궁금하지 않은 것을 너무나 자연스럽게 물어보았다.

그런 나 자신이 불편했다.

그저 가만히 있고 싶었다. 밀물이었다가 썰물이었다가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오고 갔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그러나 어쨌거나 가게를 오픈한 이상 나는 휴대폰을 팔아야만 하는 사람이었고 수화를 할 줄도 모르고 점자를 읽을 줄도 모른다. 그저 할 수 있는 말을 해서 팔아야 했다.

대개 사람들은 본인들에게 관심을 가져주면 좋아했다. 새로 바꾼 머리 모양에 대해서 손톱 모양에 대해 혹은 머리 색깔에 대하여.

나는 그때 정말 많이 떠들었다. 주식 어플을 깔아주다가도 내 주식 실패담에 대해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들고 온 빵 봉지를 보고도 여기 빵은 진짜 맛있던데요. 하며.

대부분 안 해도 상관없는 말들이었다.

그러나 가장 문제는 그 말이 하고 싶지 않은 순간 억지로 짜내서 내가 이야기한다는 것에 있었다. 그럴 때면 끝나고 노래방에 와서 노래를 불렀다. 특유의 방향제 냄새를 비록 마셔야 한다는 단점은 있지만 소리도 지르고 춤도 추고 라면도 먹고 커피도 마시고 맥주도 마시고 혼자서 정말 쇼를 하다 보면 마음이 조금 괜찮아졌다.

비로소 그날의 한을 풀고 집에 갈 수 있는 정도가 되는 것이다.

잘 몰라도 떠돌이 귀신과 같은 마음일 것이다. 이대로는 하늘로 갈 수 없다. 억울하다. 인간세상을 떠도는 것이다.

한이 남아있으면 귀신도 나도 집에 들어갈 수 없다. 그대로는 잠을 잘 수가 없다. 어찌 된 것인지 몰라도 어떻게 보면 그것이 몹시 이치에 맞다는 생각이 든다.

다들 그 한을 가지고 그냥 사는 걸까.

새벽 한 시가 넘어까지 고래고래 노래를 부르고 나서야 기진맥진해져서는 다시 구두를 신고 집으로 걸어갔다. 그렇게 모든 에너지를 쏟아붓고 나는 잠을 잘 수 있었다.

 그 생각이 났다. 거울이 양쪽에 있고 중간에 테이블이 있는 내 단골 노래방이.

역시 분양 일을 하며 너무 많은 전화를 했다. 게다가 하고 싶지 않은 말들만 했던 것이다.

낯선 사람에게 분명할 말이 없었겠지만 그래도 적어도 실투자금이니, 노후 준비니 이런 말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조금 더 좋은 말들도 많이 있었을 것이다.

근처에 노래방을 살피러 나왔다. 원룸촌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금방 시내가 나온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내 반 지하방은 나쁜 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술 먹기에는 또 딱 좋은 환경이다.

내가 일하는 모델하우스도 그 시내에 있다. 그쪽을 기준으로 위로 조금 올라가니 노래연습장이 보였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시작은 연습장으로 하자. 하며 계단을 통해 2층으로 갔다.

멤버십 따위는 묻지 않는다. 아르바이트생에게 결제를 하고 안내받은 방으로 들어왔다.

방 전체를 눈으로 한번 삥 둘러가며 보았다. 비슷한 풍경이다. 나는 약간 어두운 그곳에서 사진을 찍어서 썸남에게 보냈다.

 “나 노래방 왔어.”

 “어떻게 그렇게 눈이 초롱초롱해? 어떻게 그런 눈을 가지고 있어?”

 썸남은 한껏 띄어주었지만 나는 예전처럼 훨훨 날아오르지 못했다. 어쩐지 그곳이 낯설었던 것이다. 노래를 부르고 있으니 금세 예전의 오래된 내 고향의 노래방에 가고 싶어 졌다.

집에 돌아와서 맥주를 마시고 오징어를 질겅질겅 씹는 순간 눈물이 났다.

경기도로 오기 바로 직전 울산에서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함께 하다가 남자 친구에게 차이고 난 뒤에도 나는 무언가에 홀린 듯이 그 노래방에 갔었다.

그곳에 가면 내가 해야 할 무언가가 없다. 노래를 30분쯤 부르지 않고 춤만 춰도 된다. 혹은 울어도 되고 한서희라고 이름을 이야기해도 된다.

그 공간에 머무르며 내가 받았던 카톡, 문자의 뻔한 글보다 훨씬 진심으로 나를 머무르게 해 준 단골 노래방이 주는 힘에 대해 생각한다.

맥주와 오징어의 조합의 끝은 어딜까. 술에 취하는 도중 생각한다. 지금 당장 그곳으로 순간 이동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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