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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필영 Oct 31. 2019

나의 밤은 언제 펼쳐지나.

 나를 위한 이야기를 안주 삼는 그런 밤.



3살은 잉어빵을 하나 먹는 것도 신기한 나이이다.

 “이거는 잉어빵이야.”

 “엄마야 이건 안에 꿀이야?”

 “슈크림이야. 슈크림 해봐.”

 “수크임.”

 “그래 잘했어. 이거는 슈크림이야. 꿀처럼 달콤하지. 한 개 더 먹을래?”

 “네. 이거는 맛이 있어요.”

지금의 저녁 세계는 끝없이 대화로 이어진다.

양치해야지. 이제 씻자. 자기 전에 사탕은 안돼. 동화책 읽어줄까. 이제 티브이 그만 봐.

싸우지 마. 둘이 사이좋게 지내. 그래. 다 다인이꺼지. 그래도 동생도 좀 가지고 놀게 빌려줘.

밥 더 먹어. 한 숟갈만 더 먹을까.? 과일 깎아줄까. 로션 바르자.

밤마다 아이들의, 아이들에 의한, 아이들을 위한 이야기를 한다.

어제 이사를 위해 냉장고 청소를 해주시는 이모님을 불렀다. 바쁜 스케줄로 우리 집에는 저녁 7시에나 도착했다.

둘째는 그사이 잠들었고 첫째와 남편 나 셋이 뽀로로를 보고 있었다.

 “제가 냉장고 청소하면서 애기 우는지 들을 테니 셋이서 외출하고 오세요. 깨면 바로 전화드릴게요.”

우리와 친분이 있던 이모님은 웃으며 이야기했다.

끝까지 괜찮다고 했지만 어쩌다 보니 떠밀려 나오게 되었다. 어디를 갈까 하다가 3년 만에 처음으로 집 근처 번화가에 갔다.

기름이 튀지 않는 음식이 뭐가 있을지 고민하다가 보쌈집에 갔다.

거기서 첫째 아이는 얌전히 계란과 보쌈을 먹었고 남편은 맥주를 마셨다.

 “여보. 우리는 집 근처에 번화가가 있으니 밤에 가끔 나와서 술 한잔 하면 좋을 거 같아요.”

3년 전 결혼할 때 남편의 로망이 이제야 이루어지는 순간이었다.

줄줄이 애가 생겨 시도도 못한 일이었다.

30분 정도 지났을 때 둘째가 깨서 이모님이 전화가 오셨다.

나는 금방 집에 도착해서 둘째를 달래고 다시 데리고 나왔다. 그사이 술집에서 식사를 마친 남편은 미안한지

 “내가 애 둘 볼게요. 남겨놓은 음식 치우지 말라고 했으니 마저 먹고 조금 놀다가 들어와요.” 하면서 집 앞 여천천으로 애들을 짊어지고 갔다.

결혼 전 매일 갔었던 술집거리였다. 보쌈을 마저 먹고 그 거리를 걸었다.

아기띠가 아닌 가방을 메고 이리저리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설렜다.

1층보다는 2층을, 벽을 보는 자리보단 사람들을 쭉 둘러볼 수 있는 자리를 좋아했다. 통유리를 좋아했고 나무로 된 의자와 책상을 좋아했다.

그런 취향을 떠올리는 것이 낯설었다.

술을 마신 사람들은 하나둘씩 나와서 2차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불륜처럼 보이는 사람도 있었고 썸 타는 연인처럼 보이는 남녀도 있었다.

대학생들은 주로 남자 한 명 여자 둘이서 술을 마셨고 딸을 데리고 빨리 지나가려는 듯 종종걸음으로 걸어가는 엄마도 있었다.

예전에 술자리를 함께했던 남자들은 나에게 이야기했다.

 “건치네요.”
 “아, 잇몸이 예쁘세요.”


아마 통유리 술집에서는 지금도 그런 대화들이 오고 갈 것이다.

머리 색깔이 갈색이네. 눈동자 색깔이 너무 예뻐요.

상대의 선명한 웃음을 보기 위해서.

집에 돌아왔더니 10시였다. 이모님은 가시고 아이들을 급하게 재웠다.

애들이 자고 그 방을 나와서 작은방 옷장에 붙어있는 거울을 보니 화장을 하지 않은 얼굴이 잿빛이었다. 이틀째 감지 못한 머리가 딱 달라붙어 약간 떡이 져있었다.

그 상태로 게임하고 있는 남편 옆에 갔다.

 "남편, (나름의 애칭이다.) 남편은 처음 우리 소개팅했던 날 나 보고 처음에 바로 반했어요? "

남편은 대답했다.

"아니, 맥주 한잔하고 2차로 커피숍 가는 길에 옆에서 보는데 웃는 게 예뻐서 좋아하게 됐어요.”

어제 맨 정신에 본 밤의 세계는 반짝반짝했다. 

나도 거기서 술잔을 앞에 두고 아무 걱정 없이 남편이 좋아하는 웃음을 짓게 될 날이 올까.

나의, 나에 의한, 나를 위한 이야기를 안주 삼아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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