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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필영 Nov 01. 2019

괜찮아. 아무도 기억 안 해.

나는 매일 노래방에서 울었었어.

 “헐, 필영아. 나 오빠랑 헤어졌다? 대박이지?”

명절에 한복을 입고 시댁에 다녀오는 길이였다.

 “응? 갑자기?”

옆에서 운전하던 남편이 손짓으로 바다를 보라고 했다.

 “더 대박인 건 오빠가 먼저 헤어지자고 하더라. 진짜 어이가 없어서….”

 “와. 진짜? 인제 와서?”

 “다른 여자가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다른 여자? 그건 아닌 것 같은데…. 아무튼 자세한 얘기는 맥주 한잔하면서 하자. 이제 집에 거의 다 와서 전화 끊어야 할 것 같아.”

 “그래. 그러자. 나중에 또 전화하자. 놀러 갈게.”

 “그래. 주말쯤에 봐. 전화해.”

5년째 고시 공부를 하는 남자 친구에게 친구가 차였다. ‘대박이지’라고 말하던 음성에서 떨림이 느껴졌다. 전화를 끊고 나니 5년 전 광복절이 떠올랐다.     

 그 날 아침부터 늘 입던 운동복을 벗고 하얀색 하늘하늘한 원피스를 입고 화장을 했다. 미용실에 들러서 드라이도 받았다. 책가방 대신 손에 작은 핸드백을 들고 버스를 탔다. 40분이 걸려 남자 친구 집에 도착했다. 그의 어머님이 반겨주시며 자고 있으니 들어가 보라고 했다. 방문을 여니 그가 침대 위에서 너부러져 자고 있었다. 옆에는 휴대폰이 있었다. 원래 서로 휴대폰을 보지 않았지만, 그날따라 아무렇지 않게 손을 뻗었다. 켜자마자 마지막에 주고받은 카톡 메시지가 보였다. 새벽 4시 55분이라는 숫자 옆에 ‘죽을 만큼 보고 싶어’와 ‘방금 봤는데도 또 보고 싶네’ 두 개의 카톡이 눈에 들어왔다. 화면을 껐다. 지금 본 게 뭘까. 침대 옆 방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래 3년이나 만났으면 지겨울 만도 해.’ 

자리에서 일어나 그가 누워있는 방을 멀찌감치 쳐다보았다. 내 물건이라고는 하나도 없었다. 어떻게 바람을 피우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했을까. 카톡 하나로 나에게 있던 무언가를 그가 가져가 버렸다. 텅 빈 채로 거실로 나와 어머님께 인사 비슷한 것을 하고 구두를 다시 신었다. 그때 그가 달리듯 나오더니 팔을 붙잡으며 무릎을 꿇었다. 그제야 눈물이 났다.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고 했다.     

 헤어지기까지 6개월이 걸렸다. 그는 어떤 날은 나와, 어떤 날은 그녀와 함께했다. 가끔 걸려오는 그녀의 전화와 문자로 그의 시간이 퍼즐처럼 맞춰질 때마다 우리는 싸웠다. 지금은 그 싸움들이 대부분 기억에서 지워졌다. 기억나는 것은 그의 차인 검은색 아반떼 정도이다. 화난 사람이 운전하는 차는 화를 낸다. 급하게 가버린 차에서 났던 엔진 소리와 1분 뒤 다시 걷는 내 구두 소리는 거의 함께였다. 구두를 신고 온 날마다 싸웠던 걸까. 차가 가버리고 나면 발가락이 앞으로 쏠리며 약지의 자리가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아픈 발가락을 가지고 앞으로 걸어갔다. 도착할 곳도 없으면서 말이다.


 한복을 벗고 새로 산 청소기를 밀면서 생각했다. 무슨 청소기가 백만 원이나 하는 시대냐면서 불평하며 사는 게 화난 차를 보는 일보다는 좋은 일이다. 헤어짐 이후 단골 노래방의 주인은 방 안에서 내가 얼마나 꺽꺽거리며 울었는지 알 것이다. 집 근처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은 4개에 만 원씩 팔았던 맥주를 밤마다 사 간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도 지금쯤이면 다 잊어버렸을 것이다.     

 이제는 새벽 두 시에 노래방에 가지 않는다. 친구는 어떻게 될까. 어떤 방법으로 이별 후의 시간을 보낼까. 약지 발가락이 아픈 걸 참으며 거리를 걷든 노래방을 가든 맥주를 매일 마시든 어떤 방법이든 상관없지 않을까. 결국, 시간은 지나가고 나조차 그때를 5년 만에 떠올렸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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