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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필영 Nov 11. 2019

어느 날 입이 안 벌어졌다.

괜찮음과 기분 좋음의 차이.

첫째를 낳고 3년 만에 혼자 영화를 보러 갔다. 82년생 김지영을 보고 극장을 나서며 습관적으로 소화제를 편의점에서 사 먹었다. 자정이 넘은 시간 걸으면서 머릿속에 계속 떠오른 것은 극 중의 김지영이 괜찮다, 고마워 이야기할 때 약간 웃는듯한 표정이었다.

걸으면서 뒤쪽 턱에 힘을 주어 크게 입을 벌려보았다. 다행히  잘 벌어졌다

어느 날 입이 안 벌어졌다. 정말로 늘 있던 평범한 날이라 도대체 무슨 요일인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이의 패딩조끼를 한참이나 찾았던걸 보면 날씨가 갑자기 추워진 날이었다.

결국 옷장이 아닌 곳에서 발견하고 아이를 입혀서 어린이집에 보냈다. 날씨를 보니 딱 어중간해서 그것을 입힌 내가 뿌듯했다.

집에 돌아와서 아이가 남기고 간 치킨너겟을 먹으려고 입을 벌리는 순간 ‘탁’ 하는 느낌이 들었다. 마치 '원래 너는 이 정도밖에 입을 벌리지 못했잖아.' 정도로 자연스럽게 입이 안 벌어졌다. 말하는 데는 지장이 없으나 음식을 먹으려고 하면 턱이 아팠다. 병원을 찾아보니 턱 전문 병원이 있었다. 바로 갔다.

간호사는 이것저것을 시켰다. 아 해보세요. 각도를 조금씩 옆으로 옮겨서 아- 해보세요. 했다. 대부분은 하지 못했으나 시키는 대로 하려고 노력했다. 그것이 끝나고 의사 선생님을 만났다.

 “턱 디스크입니다. 최근에 충격적인 소식이나 스트레스받는 일이 있었나요?”

 "네? 아니요. 그런 일은 전혀 없었는데요."

 "그럼 지금 상황이 많이 답답하고 힘든가요?"

 "아니요......"

 "보통 스트레스로 입을 너무 세게 닫고 있거나 잘 때 이를 갈거나 그런 분들에게 많이 생기는 증상입니다. 일단 스트레스를 조절해보고 잘 때도 이를 너무 세게 닫지 않도록 교정장치를 하시는 게 좋아요."

나는 알겠다고 했다. 교정장치를 위해 다음 주에 병원 예약을 잡고 바로 택시를 탔다.

집에 와서 주스를 마시고 병원에서 배운 운동을 했다.

어깨를 툭 내려놓고 입을 벌릴 땐 턱 뒤쪽으로 크게 벌린다는 생각으로 벌린다.

운동을 하고 나니 조금 나아진 기분이 들었다

오늘 하루 의사 선생님의 말씀대로 조금 바보처럼 입을 벌리고 다녀야지 생각했다.

그리고 난 뒤 건조기의 빨래가 다 되어서 빨래를 개기 시작했다.

다 개기 전에 잠들었던 둘째가 깼다. 둘째 분유를 주고 이유식을 먹였다. 먹이면서 나도 좀 먹고 기저귀를 갈아주었다. 잠깐 유튜브로 노래를 틀어볼까 하는 동안 둘째는 화장실 변기 물로 물놀이를 하고 있었다.

둘째를 씻기고 나니 첫째를 어린이집에 데리러 가야 할 시간이었다.

첫째는 집에 와서 미역국을 쏟고 물을 쏟고 오렌지주스를 쏟았다.

첫째도 씻겼다. 요즘 안 씻으려고 하는 첫째를 위해 나도 다 벗고 뽀로로 물놀이 장난감 세트를 욕조에 뿌려놓고 목욕을 했다.

 “물놀이는 좋아요. 엄마.”

첫째가 좋아하는 걸 보니 나도 기분이 좋다.

밤 11시 애들이 다 잠들고 남편이 퇴근해서 왔다. 나는 아이를 재우다가 같이 잠들었다가 문 여는 소리에 깨서 남편에게 인사를 했다.

 “별다른 일 없었어요?”

 “아, 저 턱이 안 벌어져서 턱 병원에 갔다 왔어요. 교정기 하면 괜찮아진대요.”

턱이 벌어지지 않지만 괜찮다고 말했던 내 모습을 떠올렸다.

그다음 주에 교정기를 만들고 쓴 지  3일 만에 턱은 돌아왔다.


늘 바라보던 풍경




밤마다 창문을 열어서 다른 집 아파트와 가게들불빛을  바라보던 나는 용기를 내서 오늘 남편에게 말했다.

 “애들 둘 다 자니까 저 영화 보러 갔다 올게요. 애들 달랠 수 있겠어요?”

  “그래요. 조심히 잘 갔다 와요.”

3년 만에 들어선 영화관의 약간 더운듯한 공기마저 반가웠다.

아이들은 영화를 보는 2시간 동안 잘 자주 었다. 집에 돌아오니 남편은 게임을 하고 웃으면서 나에게 영화를 잘 보았는지 물었다.

 “정말 재밌었어요. 공유가 얼마나 좋은 남편이었는지......”

 "아무 얘기도 하지 마요. 저도 볼 거예요. 스포 금지!"

계속해서 그 감정을 전달하려고 하는 나와 스포라며 말리는 남편과 웃으며 실랑이를 벌였다.

내친김에 남편에게 말했다.

 “남편 다음 주 쉬는 날에 2시간 정도 저한테 글 쓸 시간 좀 주세요.”

남편은 그러라고 했다.

오늘 사 먹은 소화제는 효과가 좋은지 가슴이 뻥 뚫린 기분이 든다.

확실히 기분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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