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엄마가 항상 국을 한솥 끓여주셔서 그걸 아이들에게 먹이고는 했는데 얼마 전부터 몇 인용씩 포장되어있는 국을 마트에서 사기 시작했다. 봉지를 뜯어서 냄비에 넣고 끓이기만 하면 되었다. 얼렸던 걸 해동할 필요도 없고 세상 참 편하다는 생각을 하며 냄비 안에 사골 곰국을 넣었다.
팔팔 끓을까 봐 전기 레인지를 중간 정도로 낮춰놓고 티브이를 보는 아이들에게 말했다.
“엄마 똥 싸러 갔다 올 테니까 여기 소파에서 계속 티브이 보고 있어 알겠지. 앞으로 가면 안 돼.”
잘 가라고 손을 흔드는 아이들 옆을 지나 화장실로 들어갔다. 습관적으로 휴대폰을 들고 들어갔다. 유튜브를 켜서 개연성이 전혀 없는 코미디 영상 한 개를 보았다. 물을 내리고 화장실을 나왔다. 부엌으로 가 전기레인지 앞으로 가보니 무언가가 담겨있었던 흔적이 거의 사라진 빈 냄비만 외로이 올라가 있었다. 순간 짜증이 먼저 났다.
“아….”
‘전기 레인지가 성능이 정말 좋네...... 국이... 아니 어떻게....’
냉장고에는 그 국이 10개나 더 있었지만 더는 먹고 싶은 기분이 들지 않았다. 처음 가스레인지 대신 전기 레인지를 쓸 때는 파워 버튼을 눌렀더니 국이 넘치고 흘러서 전기레인지 위가 엉망이 되어 그걸 닦아내느라 고생했는데 이번에는 반대로 국을 홀라당 날려버렸다.
그때를 생각하니 기분이 더 안 좋아졌다.
언제까지 이러고 살아야 하나.
요즘 유일한 외출인 고전 독서모임에 가서도 그 글의 배경지식에 대해 조사를 많이 해온 사람들의 얘기를 들으며 ‘아….’를 말하는 게 내 역할이었다. 어떤 날은 2시간 내내 아, 말고는 한마디도 안 하고 그들의 얘기를 듣기만 한날도 있었다. 사실은 배경지식뿐만 아니라 등장인물의 행동에서 어떤 의미를 찾아내는 것도 잘 모르겠다. 어떻게 그 숨은 의미를 안단 말인가. 내가 그 인물도 아닌데. 그냥 나는 읽으며 좋은 문장을 발견하면 줄을 치고 바라본다.
‘이건 정말 사실적인 문장이네. 이 작가는 이런 표현을 자주 쓰네.’ 하면서. 다른 것은 정말 다 모르겠다.
오늘 아침에는 가스보일러 전원이 안 들어와서 기사님을 불렀다. 고치러 온 기사의 호통에 입에서 또 ‘아,’가 흘러나왔다.
“일단 가스보일러가 고장이 났으면 저를 부를 게 아니라 코드를 먼저 꼽았다가 빼보고요, 그다음에 눌러보고 이게 진짜 고장이 난 것인지 어떤 것인지 확인을 해보셔야 해요. 왜 자기 물건을 확인도 안 합니까.”
“아…. 가스보일러가 전기 코드가 있었어요?”
“하…. 참…. 그럼 가스보일러는 뭐로 씁니까.”
“가스로 쓰는 거 아니에요?”
“그건 사용하는 원료고요.”
“아……. 근데 제가 이사 오고 이 보일러를 처음 사용해봐서 사용법을 잘 몰라서요. 좀 가르쳐주세요.”
“이거는, 이것도 눈만 있으면 다 보이는데…. 숫자 24까지 보이시죠? 이게 예약이고 예약 단추 위에 버튼을 길게 누르면 실내온도로 설정이 되고 또 한 번 길게 누르면 바닥 온도로 설정돼요. 이 집 같은 경우는 바닥 온도로 해놔야 가스비가 적게 나오겠죠.? 거실에서 주무시진 않으시죠?”
“아…. 네.”
가스보일러 기사가 가고 나서 한동안 그 보일러를 이렇게 저렇게 만져보았다.
살면서 그 정도 아…. 를 했으면 나도 이제 뭔가 좀 알 때도 된 것 같은데 여전히 아... 를 할 일이 생긴다. 그때그때 배우지만 계속 모르는 게 생긴다. 모든 상황에서 모든 일이 처음 일어나는 기분이다. 80살이 되어도, 90살이 되어도 이렇게 계속 깨닫기만 하다가 결국 죽는 걸까. 20대 때에는 술을 먹고 매일 떠돌고 재밌다 싶은 일들을 일단 저지르며 반성과 후회를 했지만, 그때는 국을 날리지는 않았다.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데려다주면서 운전을 못하는 걸 느끼지 않아도 되었다. 예전에 아…. 하고 반성하고 깨달았던 일들이 있더라도 또 다른 일들로 인해 또 다른 것을 또 깨닫게 된다.
내 세계는 계속 넓어지고 깨달을 일들 역시 늘어난다. 모처럼 출판사에 글을 넘기고 오늘 같은 날은 글을 쓰지 않으려고 했지만 깨달음이 넘치다 보면 어느새 글을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