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시생 생활 3년으로 얻은 것

여전한 사람들에 대한 고마움

by 김필영



휴대폰 일을 그만두고 며칠 되지 않아서 같이 일했던 동생에게 전화가 왔다. 파란색 운동복을 입고 자전거를 타고 출근했던 그 동생은 들어오자마자 항상 슈가볼이라는 가수의 앨범을 틀고 그 뒤에는 남자 친구 얘기를 했었다. 그 동생의 시간은 파란 운동복-자전거-슈가볼-남자 친구로 흘렀다. 그중에서도 당연하지만, 남자 친구를 정말 좋아했다. 하루에도 몇 시간이고 얘기하는 바람에 나 역시 그 남자에 대해 모르는 게 없게 되었다. 그 남자는 모텔에서 장기투숙을 하고 노래방에서 일했다. 볼 때마다 바지는 검은색 슬랙스에 신발은 회색 뉴발란스 운동화를 신고 파마머리였다. 가게에 종종 놀러 왔지만 내게 인사를 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내 기억에 그 남자의 얼굴은 옆모습만이 있다. 그 옆모습으로 동생과 둘이서 얘기를 한 뒤 나가곤 했다.






어느 날 나는 가게를 마치고 그 동생과 가게 옆 치킨집에서 술을 마셨다. 1차가 끝났을 때 그녀가 자신의 남자 친구가 일하는 노래방으로 2차를 가지고 했다. 그가 일하는 노래방에 같이 갔다. 그날 노래방 안에는 우리가 시키지 않은 많은 술이 나왔고 그 남자의 친구가 두 명인가 세 명인가 방에 들어왔다. 나는 그 공간에 있던 전부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어른처럼 가만히 앉아있다가 나와버렸다. 아무튼, 내가 그 가게를 그만두고 난 뒤 그 남자가 가게로 회칼을 들고 온 것이다. 물론 차에 싣고 와서는 사용하지 않았다고는 했지만 전화기 너머 떨리던 목소리가 느껴졌다. 그것을 들으며 나는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많이 놀라지 않았다. 그 남자의 모든 게 내 눈에는 이상해 보였으니 뭔가 당연하게 생각되기도 했다. 게다가 그때쯤 그 사람 말고도 주위엔 이상한 사람이 많았기에 웬만한 일로는 놀라지 않았다. 월급 첫날 명품가방을 사고 소고기를 먹으러 갔다가 담배를 피우다 가방을 태워버린 직원도 있었고 손님이 와도 꿋꿋하게 마스카라를 칠하던 직원도 있었다. 반복해서 듣고 보고 하는 사이 모든 얘기는 평범해져 있었다. 교도소에 가게 된 어떤 직원에 관한 얘기가 나오고서야 비로소 ‘어 걔가 교도소에?’ 하고 놀라는 정도였다. 휴대폰 파는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심심치 않게 그런 사람을 만날 수 있었던 곳이었다. 고등학교 때까지 한 번도 만나본 적이 없었던 사람들을 만나며 대체 이 사람들은 어디 있다가 지금 내 앞에 나타난 걸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했다.





휴대폰 가게를 접고 그다음이 왜 경찰학원이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경찰학원에서 설명을 듣고 학원비를 결제하기까지는 몇 분 걸리지 않았다. 원장실에서 얘기를 몇 마디 나누고 건물의 8층이었던 수업하는 공간과 밑층 독서실을 둘러보았다. 화장실에서 텀블러를 물로만 씻는 사람을 보면서 저러면 세균이 많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생각 말고는 그곳 사람들을 봐도 별 흥미가 생기지 않았다. 제대로 쳐다보지도 않은 그들이 지나갔다.





다음 날, 학원에서 첫 수업을 들었다. 끝나니 오후 4시 반 정도였다. 다른 아이들은 밑층 독서실에 내려가서 개인 공부를 시작했지만 나는 커피숍을 갔다. 그때 그곳의 새우 볶음밥을 좋아하기도 했고 통유리라 밖을 볼 수도 있었다.




학원에 다닌 지 한 달 정도 지났을 때 수업이 끝나고 커피숍으로 가는 걸 그만두었다. 별 이유 없이 독서실로 돌아왔다. 돌아와서는 비슷한 시간에 물을 뜨러 가고 비슷한 시간에 화장실을 가기 시작했다. 책상에 앉아있다가 때가 되면 커피를 마셨다. 점심을 일찍 먹고 저녁도 일찍 먹었다. 6개월 정도는 그 생활을 혼자서만 했다. 간간이 매점에서 밥을 먹고 있으면 귤이나 사과 같은 걸 갖다 주는 사람이 있기는 했지만, 아무튼 친구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그래도 비슷한 시간에 자리에서 일어나서 행동하는 사이 몇몇 얼굴이 눈에 익었다. 시간이 좀 더 지나고는 독서실 청소를 하는 독서 실장을 시작하면서 사람들을 한 명씩 알게 되었다. 독서실에는 스물여섯인 나보다 어린 동생들이 많았다. 대학교를 아직 졸업하지 않은 그들은 학교의 연장선처럼 생활했다. 그들은 모두 그냥 같은 행동을 또 하고 또 했다. 물을 뜨다가 마주친 그들에게 오늘 밤 뭘 할 거냐고 물어보면 대부분 드라마 얘기를 했다. 하루 종일 공부를 한 이들은 버스에서 휴대폰으로 드라마를 보는 게 낙이었다. 그런 걸 듣기만 해도 세상이 단순하고 바르게 흘러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시험을 준비하면서 3년 동안 그걸 보니 그쪽으로 바뀌게 되었다. 드라마는 여전히 보지 않았지만, 액세서리를 하지 않게 되었고 등산복을 처음으로 내 돈 주고 사게 되었다. 눈썹을 연하게 그리게 되었고 눈에 힘도 풀게 되었다. 혼자서 노래방도 디브이디 방도 많이 가지 않았고 술도 많이 마시지 않게 되었다. 책상에 몇 시간씩 앉아있을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휴대폰 가게에서 직원을 할 동안 나 말고 대부분 직원이 그렇게 화장을 했기에 내 화장이 진하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지만, 장소가 바뀌고 다른 공간에 완전히 들어가서야 예전의 내 행동이나 습관들이 다르게 보였다.


그때 같이 공부했던 그들 중에서 경찰이 된 친구도 있고 되지 않은 친구도 있지만 우리는 모두 비슷한 시간을 그 공간에서 보냈다. 밑 빠진 독을 채우면서 텅 빈 독을 매일 바라보았다.

학원에서 만난 그들 중 몇몇은 내게 친구로 남았다. 내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육아를 하는 동안 가끔씩 내 옆에서 여전히 드라마 얘기를 하고 몇 시까지는 뭘 해야 한다는 그런 류의 얘기를 한다. 새로 배운 운동이나 취미생활에 대해 성실하게 이야기하는 걸 보고 있으면 마음이 금세 편안해진다. 계속 이리저리 다른 길로 가면서 금세 물들어버리는 나는 이따금 그들을 집으로 초대한다. 그러면 그들이 들어오는 우리 집 현관에서부터 공기가 바뀌는 것 같다고 느낀다. 그리고 종종 생각한다.



이 여전한 사람들, 그리고 그들 방식으로 약간은 변한 나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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