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꿨다. 나는 아무것도 싣지 않은 빈수레를 끌고 가고 있었다.
혼자 끌고 가면서 누군가의 미소를 떠올렸지만 그 미소가 금방 사라졌다. 너무 빨리 사라져서 그 미소가 꽤 오래 만났던 남자의 미소였던 것 같기도 했고 마지막 연애를 했던 사람 같기도 했다. 함께 마신 술을 떠올렸지만 그 술이 금방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그 술을 마신 날 그날을 떠올리자 그날이 통째로 사라져 버렸다. 아무것도 아닌 말들이 들어왔다가 금방 사라져 버렸다.
오늘 뭐해 데리러 갈까. 영화 보러 갈까. 있다가 볼까. 지금은 뭐해. 아니 있다가 전화할게. 조금 있으면 끝날 거 같아. 아 진짜? 그럼 씻고 바로 갈게
결국 빈수레를 끄는 소리만 들릴 뿐 아무것도 싣지 못한 채 앞으로 갔다.
꿈에서 깨니 괜히 과거에게 미안해졌다.
첫째가 5살, 둘째가 4살이 되었고 결혼한 지 5주년이 되었다. 우리 가족에게 현재 새로운 사이는 없고 낡은 사이만 남았다. 낡은 만큼 그 사람에 대해, 그 물건에 대해, 그 감정에 대해 믿게 된다. 낡은 것은 믿게 된다. 그러니까 나는 낡은 사이를 좋아한다. 여전히 있는 것들. 낡아버린 많은 것들. 너무 많은 과거를 공유해서 이제 어떤 것을 말할 때마다 내가 말을 했었냐며 묻게 되는 그런 낡은 사이.
낡다 보면 나중에는 사라지게 된다. 모든 것들이 그랬다. 낡다가 사라진 것들. 아마도 나는 계속 빈수레를 끌고 갈 것이다. 사라지기 전까지 내 옆을 채우는 낡은 것들. 대체로 그것들은 편안하고 반복해온 힘이 있다. 낡음 안에는 알 수 없는 많은 것들이 낡은 것의 편이다.
이상하다. 왜인지는 모르겠다. 언젠가 사라지더라도 좋은, 오래되고, 많이 사용해서 낡은 것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