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추워지면 피부에 닿는 바람의 느낌이 달라지면 더 자주 DVD방을 간다. 거기에서 음악소리와 말소리가 뒤엉켜 나오는 영화를 본다. 무엇에도 집중하고 있지 않은 채 야금야금 미리 뜯어놓은 감자칩을 입으로 가져간다. 그 감자칩이 맛있다는 생각을 한다.
어쩔 수 없는 것은 분명히 존재한다. 이러나저러나 안 되는 것은 확실히 안 되는 것이다.
체념의 밤이 감자 칩을 먹으며, 영화를 보면서 지나간다. 그 공간에서 충분히 체념하고 집으로 간다. 역시 어쩔 수 없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 사실을 잊어버릴 때쯤 나는 또 그 계단을 밟고 4층의 그 디브이디 방을 간다. 찬바람이 훅 불어서 피부에 닿이면 왜 인지 그곳으로 간다. 그곳에서 내가 골랐던 영화의 엔딩 음악은 각각 달랐지만 어딘가 비슷한 느낌이 있었다. 그 장소에 그 음악이 나오면 나는 옷을 챙겨 입고 천천히 과자봉지를 정리한다. 휴대폰을 한번 본다. 살아있던 모든 일들은 시간이 흐르면, 과거가 되면 모두 죽어버린다. 이제는 집에 가야 한다. 나는 가벼워졌다.
가벼워지면 주위를 둘러볼 수 있다. 분명히 주위에는 무언가가 있다. 까만 어둠이 있더라도 그걸 볼 수 있다면 다음 단계로 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