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에 만난 크리스마스트리

by 김필영




걷다가 지하에 있는 노래방 입구에 서서 목을 빼서 지하로 가는 계단을 바라았다. 계단의 시작점에는 크리스마스트리가 있었다. 그 트리는 도대체 얼마나 그 자리에 있었던 걸까. 몇 발자국 걷다가 도시락집 가게 앞에서 붙어있는 장어 도시락 포스터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장어 도시락은 어쩐지 (장어는 먹어보았지만) 맛이 상상되지 않았다. 때 지난 어버이날 할인 포스터가 안경가게에 붙어있었다. 그리고 사거리 모퉁이에는 파리바게트가 있었다.


신호등을 건너자 어딘가에서 보았던 게장 집이 같은 간판을 달고 새롭게 오픈식을 하고 있었다. 색색깔의 화려한 무언가가 간판 주위에 달려있었다. 조금 더 걷자 둥근 공간이 있고 나무가 있고 벤치가 있는 공간이 나왔다. 트레이닝복을 입은 주인과 같이 다니는 하얀 강아지를 각각 다섯 마리나 마주쳤다.


리어카에 재활용품을 가득 싣고 끌고 다니는 할아버지가 어느 순간부터 나와 같이 걷고 있었다. 함께 신호를 기다리다가 초록불이 되었다. 나는 건너지 않고 그 할아버지를 바라보았다. 할아버지의 속도와 신호가 바뀔 속도를 미리 상상하다 지나가기 전 초록불이 끝나지 않길 기도했다. 전전긍긍하던 사이 리어카의 마지막 바퀴가 도보로 먼저 올라왔다. 다행이다. 할아버지는 멈춰서 박스를 정리했다. 그리고 다시 리어카가 움직였다. 사람들은 모두 빠르고 리어카는 느렸다.

우산을 들고 왔지만 쓸모없어진 나는 한 손에 우산을 들고 한 손에 휴대폰을 들고 걸었다. 갈 때 마주쳤던 걷고 있던 커플이, 다시 되돌아올 때는 게장집에서 밥을 먹고 있었다. 그들의 그다음 시간을 상상하다가 내가 그 거리에서 보냈던 시간들이 떠올랐다. 함께 걷고 또 걷다가 집에 가서는 전화를 꽤 길게 하던 사람들.



휴대폰을 켜서 시간을 확인하니 저녁 8시 반이었다.


가게. 리어카를 끄는 할아버지. 그리고 식사를 하는 누군가. 각자의 세계를 살고 있는 사람들.

그리고 9시까지는 집에 들어가야 하는, 우산을 들고 음악을 듣는 8시 반의 나.






예전의 나는 바보 같았지만 언제까지고 바보 같지는 않았다. 저녁에는 좀 거리를 헤매곤 했지만 아침이 되면 출근했다. 정해진 일을 했다. 진짜 바보 같은 것은 계속해서 같은 자리에 머물러있는 것이다. 아무것도 보지 않고 듣지 않는 상태이다. 도시락집 포스터라도 보면, 식사하는 누군가라도 보면, 리어카를 끄는 할아버지라도 보면 나아진다.





눈에 보이는 것은 본다. 유심히 본다. 보다가 알게 된 것은 받아들인다. 깨닫게 되는 것은 받아들인다. 잘못을 알게 되면 받아들인다. 그 정도가 내가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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