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는 서른다섯 정도. 결혼은 한번 했는데 이혼했고요. 고시원에서 글을 쓰고 있는데 돈은 안돼서 팍팍하게 사는 그런 여자를 주인공으로 등장시킬 거예요. 속옷은 딱 4개 정도밖에 없어서 한두 번 입고 나면 반드시 빨래해야 하는 삶을 사는 여자요.”
얼마 전 독서모임에서 소설을 쓴다면 어떤 주인공을 등장시키고 싶으냐고 했을 때 내 대답이었다. 이 주인공은 사실 내가 이렇게 살지 않았을까 생각했던 막연한 나의 미래 중 하나였다.
20대 꿈꿨던 나의 미래. 타인에게 이런 말을 하면 ‘그래서 네가 가난할 수밖에 없었다.’고 할까 봐 한 번도 입 밖에 꺼내지 못한 말이었지만 그날은 어쩐지 사람들에게 그녀(내가 꿈꾼 나)를 밝히고 싶어졌다.
그 길은 가난한 길이 아니라 그저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길이였다.
'내가 지금의 나로 사느라 어딘가에 있어야 하는 저 주인공을 내가 태어나지 못하게 한 것은 아닐까.'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을 하나씩 겪을 때마다 뭐가 중요한지 생각해 본다. 그리고 내가 놓을 수 있는 것을 생각한다. 사는 게 이렇게 매번 뺄셈이다. 뺄셈이 더하기나 곱하기보다 나는 계산하기 편하다. 누구의 도움도 없이 내게서 빼기만 하면 가벼워질 수 있으니까.
그런 사건들이 나를 압박해올 때면 그 주인공들을 떠올린다.( 고시원에서 사는 그녀 말고도 몇 명의 그녀가 있다. )
그들은 또 다른 의미의 나이고 또 다른 의미에서는 남이다.
아파트를 팔다가 끝끝내 하나도 팔지 못하고 계속해서 빚만 생기는 주인공이 있다. 여행용 트렁크에 물티슈를 가득 넣어서 사람들에게 한 명당 한 개씩 나눠준다. 비가 오는 날은 거기에 붙여놓은 번호와 그리고 김필영 과장이라는 글씨가 서서히 번진다.
반지하 원룸을 전전하다가 카드빚이 더는 감당이 되지 않을 만큼 쌓일 때 영화는 끝이 난다.
(아마도 삶은 이어진다 )
고시원에서 공부를 계속하다가 마흔, 오십이 되어도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지 못하는 주인공도 있다. 오십까지 늘 입었던 운동복 몇 개를 정리하고, 책을 버리고, 노트를 버린다. 예상문제 집을 버린다. 그리고 저녁 11시~ 아침 8시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구하는 전단지를 보며 영화는 끝이 난다.
(아마도 삶은 계속된다.)
휴대폰 가게를 창업한 뒤, 계속 재계약을 하며 가게를 계속 운영하는 주인공이 있다. 그 사이 건물은 더 낡고 나 역시 계속 늙어간다. 원래도 낡았던 그 동네에는 20년쯤 지나자 더는 사람이 찾아오지 않는다. 기기가 잘 팔리지 않아 저녁 9시부터는 가게 문을 잠그고 술집에서 서빙 아르바이트를 하러 간다. 깜깜한 술집에 들어가고 영화는 끝이 난다.
(아마도 삶은 계속된다.)
그 모양으로 사는 그들 모두의 삶은 계속되고, 그들 모두 계속되다가 결국은 죽을 것이다. 사는 것은 기다란 터널이고 기차들이 지나간 흔적만이 남을 뿐이다.
어딘가에 있을 잃어버린 내 주인공들은 그 모양대로 빛나고 있다. 아마도 아무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겠지만.
평범한 하루들이 쌓여서 미래가 만들어진다. 아무튼, 그 행동을 반복하는 동안 어떤 새로운 주인공이 생긴다. 지금의 나는 아이를 키우고 결혼을 한 5년 동안 만들어졌다. 새로운 결정을 하고 뺄셈을 하는 동안 지금의 내가 삶의 주인공이 되었다.
어디까지가 진짜로 사는 거고 어디까지 기억이고 어디까지 환상일까.
정확한 답은 모르겠지만 그것들은 모두 하루에 다 젖어있다. 환상이라는 것은 어쩌면 존재하지 않는 건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