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을 할 때면 늘 정장을 입는다. 위에는 블라우스나 얇은 니트를 입고 재킷을 걸치고 집을 나선다. 정장을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지만 이렇게 입으면 아무도 '누가 일을 하는데 이런 옷을 입었냐.'라고 하지 않는다. 그냥 아무런 말을 하지 않는다. 그게 좋다.
나는 패션에 대해 잘 알지 못하고 관심도 없다. 초록색과 보라색 땡땡이가 그려진 똑같은 양말이 집에 마흔 개 정도 있다. 양말로도 고민하는 삶은 원하는 삶이 아니다. 속옷 역시 마찬가지다. 흰색과 빨간색만 입는다. 빨간색을 입으면 왠지 힘이 나는 것 같고 흰색은 그냥 여러 모로 적당한 색이라는 생각과 블라우스가 흰색일 때 흰색 속옷이 필요하므로.
누군가와의 약속이 끝나고 나면 집으로 돌아가서 트레이닝 복을 입고 다시 집을 나선다. 예전에는 그런 복장으로 동네에 꼭 하나씩 있는 주황색 간판의 치킨집에서 누군가와 맥주와, 치킨을 먹었다. 동네에는 그런 가게가 꼭 하나씩 있고 그런 가게는 보통 늘 오던 사람이 온다. 아줌마는 아줌마끼리, 아저씨는 아저씨끼리 온다.
나는 보통 남자와 그런 치킨집을 갔다. 함께 먹은 밥이 백 그릇도 넘는 오래 사귄 남자와 그 후줄근한 치킨집에서 닭다리를 뜯고 있으면 왠지 충만한 기분이 들었다.
요즘도 늘 같은 양말을 신고, 3개 중에 한 개 트레이닝복을 골라서 입고 짧은 머리를 하고 집을 나선다. 요즘 치킨집은 가지 않지만 커피숍을 간다. 아까 걷다가, 예전에 자주 갔었던 치킨집과 비슷한 느낌의 치킨 집을 마주쳤다. 유리에 비친 내 모습을 보았다.
지금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가도 전혀 손색이 없다. 나는 과거에도 후줄근했는데 지금도 후줄근하다. 아마 앞으로도 후줄근할 것이다.
또 똑같은 양말을 주문할 것이다. 운동화가 떨어지면 하얀 운동화를 살 것이다. 아마도 운전은 계속 늘지 않을 것 같고 계속 글을 쓸 것이다. 강의나 모임을 계속할 것이다. 어쨌거나 그런 장소에서는 정장을 입으면 된다.
곧 강의를 하러 서울에 간다. 아마도 나는 정장을 입기야 하겠지만 내 방식대로 후줄근한 이야기들을 할 것이다. 나라서 겪은 에피소드들.
다시 한번 내 모습을 쓱 본다. 이걸로 충분하다.
역시나. 뭐하나 잘나지 않고 후줄근하다. 그래. 나를 쓰고, 나를 말하자. 자연스럽게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