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아지들
특별히 아껴도 결국은 텅 빈 공간이 되었다
우리 가족에게 집이 생기고 얼마 되지 않아 개집도 생겼다. 그리고 강아지도 생겼다. 내가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경찰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던 이십 대 중반까지 강아지가 열 마리가 넘게 그 개집에 머물렀고, 사라졌다. 몇 마리는 묶어놓은 끈이 풀려서 앞 도롯가에서 달리던 차에 치여서 죽었고 몇 마리는 홀연히 없어졌다. 그때 동네에는 개장수라고 불리는 사람이 개들을 훔쳐간 경우도 종종 있었기에 그들이 훔쳐갔을 거라고 짐작했지만 사실 누군가가 진짜 훔쳐갔는지, 자신들이 끈을 풀고 갔는지는 모르겠다.
스무 살이 되고부터는 내가 집에 들어오는 시간은 자정이 항상 넘은 시각이었고 엄마가 절에 가는 시간은 새벽 5시가 되기 전이였다. 강아지는 우리에게 각각 인사를 해주었는데 아침이 되면 이상하게도 개가 사라져있을 때가 있었다. 그 몇 시간 만에. 그게 참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그냥 받아들이게 되었다.
나는 새벽녘까지 술을 마시고 집에 도착하면 개집을 살짝 두드려서 툭하면 그들을 불러냈다. 갈색 강아지를 불러내기도 했고 까만 털을 가진, 멀리서 보면 양말을 두 개 뭉쳐놓은 것 같은 작은 강아지를 불러내기도 했다. 치와와와 유독 닮은 강아지를 불러내기도 했다. 나를 바라보는 그 강아지들의 눈. 그 눈을 가지고 개집에서 나온 그들은 내게 안기거나 앞다리를 내 무릎에 올렸다. 새벽녘, 집으로 들어가는 건 어렵고 개집을 두드리는 건 쉽다.
그 강아지 중에서도 내가 유독 좋아했던 강아지는 한 여섯 번인가 일곱 번인 가쯤 키웠던 '용이'라는 이름을 가진 강아지였다. 뒷집 검둥이와 주인이 없던 흰색 개가 낳은 강아지였는데 베이지색이었고 형제 5마리가 함께 있을 때 보면 혼자서 항상 그 무리에 끼지 못하고 끄트머리에 있었다. 어느 겨울 그 강아지를 500원에 아빠가 사 왔다. 나는 얌전하고 조용하게 상자에 담긴 그 강아지가 마음에 들었다. 작고 예쁘고 하얬다.
용이를 키운 지 1년쯤 되었을 때 삼사 일정도 개가 사라진 적이 있었다. 우리는 모두 그도 다른 강아지처럼 역시 개장수가 훔쳐갔거나 아니면 차에 치였을 거라고 짐작했다. 그런데 며칠 뒤 용이는 옆집 감나무가 많은 주택에서 발견되었다. 그때 털에 흙이 묻은 채로 눈동자가 뒤집히고 몸을 떨고 있었다. 다리 쪽에 약간의 상처가 있었지만, 눈이 뒤집힐 만큼의 큰 상처는 아니었는데. 어쨌거나 안고 이발소로 갔다. 거기서 엄마, 아빠 그리고 나 가족들이 차례차례 몇 시간씩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힘없이 축 처져 있더니 좀 지나자 괜찮아졌다. 괜찮아졌지만 그 전과는 좀 다른 눈을 가진 강아지가 되었다. 계절이 한번 지나고 겨울이 되고 또 끈이 풀렸던 날, 용이는 동네를 떠돌아다니던 앙상한 강아지를 한 마리 데리고 왔다. 우리 집은 이발소가 1층이었고 2층에 집이 있었는데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외부에 있었다. 거기에 떡하니 그 개와 우리 개가 잠을 자고 일어나고는 했다. 마당에 개집을 놔두고서. 왜인지 그 계단에서 생활했다. 그 떠돌이 여자 개는 우리 가족을 보고 으르렁거렸다. 한동안 본의 아니게 두 강아지와 함께 한 시간도 좀 있었지만 결국 여자 강아지가 먼저 그 계단을 떠나고 나자 용이도 갑자기 어느 날 사라졌다. 용이는 특별히 내가 아꼈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렇게 되는 걸 막을 수는 없었다. 대신 없어지던 날, 용이의 사진을 보며 누군가에게 어떤 방식으로든 도착해서 잘 살게 해 달라는 이상한 기도를 했다.
갈색이든 검정이든 치와와든 삽살개든 내가 키운 모든 강아지는 같은 눈빛으로 나를 바라봐주었다. 누군가가 집으로 데려다줬던 날에도. 술에 몹시 취한 밤, 내가 아닌 것 같았던 날에도. 말도 안 되는 표정으로, 말도 안 되는 말을 하는 순간에도. 강아지를 보고 있으면 죽는 게 사는 게 그리고 떠나가는 게 당연한 일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그들은 말을 못 하지만 어쩐지 굳이 말을 할 필요도 없어 보기도 했고 그게 좀 부럽기도 했다.
새벽에는 '항상' 있었는데. 내 눈앞에 '분명히' 존재해놓고 어느 순간이 되면 인사도 없이. 아침을 준다고 내려가면 개집만이 남아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