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글을 쓰면 뭐가 좋나요?

나를 미워하지 않고 내일을 기다리는 법

by 김필영


내가 사실 글쓰기 수업을 하는 이유는 사람들의 앞면이 아닌 뒷면을, 그리고 옆면의 이야기를 가공되지 않는 상태로 듣고 싶어서이다. 평소에 우리는 앞에서 만나서 인사하고 앞으로 또 인사를 하고 헤어진다.

그런데 글쓰기 수업을 하면, 그들은 뒷면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그래서 육십이 되었고 1년은 하릴없이 지내는 것 역시 행복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나서 보니 두려움이 앞섰습니다. 이렇게 살다가 끝나는 걸까. 그러다가 우연히 동사무소에 와서 볼일을 보고 난 뒤 가려는데 글쓰기 수업을 보고, 잠시 멈칫했습니다. 내가 할 수 있을까. 그런데 지금 여기 와서 선생님의 수업을 듣다 보니 정말로 오기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나에 대해서 잊어버리고 살았는데 이제 정말 나를 찾아가는 시간을 가지려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자기소개를 들으며 그녀가 방금 말한 모든 것들이 이상하게도 그림처럼 잘 그려졌다. 그러다 마지막 부분에 멈칫 서서, 글쓰기 수업이라고 적힌 벽을 쳐다보다가 신청서를 작성했을 그녀가, 오늘 입은 파카가, 안경이 너무나 머릿속에서 세트처럼 그려졌다. 그러면서 내 머릿속 그림은 풍경보다 그녀가 한 발짝 먼저 사라졌다. 글쓰기 신청서는 그대로 있고 아무도 없는 공간.



또 다른 사람은 첫 번째 시간에 지각을 했다. 그녀는 여기 수업시간에 오기 위해 초등학생 삼 남매의 식사를 차려주었지만 아이들은 식사를 하지 않고 음식에 대한 품평을 하며 먹지 않겠다고 했다고 했다. 이 엄마는 아이가 한마디 할 때마다 시계를 한 번씩 보고, 한마디 할 때마다 대답을 해주다가, 결국 수업시간은 10시인데 10시 10분쯤 도착했다.



우리는 그런 이야기들을 나눈다.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아도 나에게 있어서 의미 있는, 어쩌면 앞면보다 소중한 뒷면의 이야기들을 글로 풀고 나눈다.




나 역시 그들의 이야기를 듣다가 내가 이십 대 초반에 자주 갔던 노래방이 떠올랐다. 그곳은 어둡고 음침했다. 나는 거기서 목소리를 냈다. 배에 힘을 주고 노래를 불렀다. 그 노래들은 아마 아무 에게도 닿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내게 그 공간은 온전히 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었다.





아무튼 그곳에서 목소리를 냈던 나는 요즘 밝은 곳에서 목소리를 낸다. 이곳에서는 내 목소리가 누군가에게 닿을 수 있다.


꼬불꼬불한 파마머리를 하고 비슷한 파카를 입고 비슷하게 주름졌지만 그녀들의 글을 읽어보면 내면은 다들 다른 모습이다. 아주 해맑은 사람도 있고 자꾸만 나무에 대한 이야기를 쓰는 사람도 있다. 뒷면은 다 다르다. 나는 그들의 뒷면을 생각하며 고유성을 찾아주려 노력한다.

편의점에 자주 들러서 담배를 사는 것도, 추운 겨울 파카 대신 코트만을 고집하는 것도 모두 나만의 글이 될 수 있다. 그리고 그 글들이 모두 모여서 한 권의 책이 되면 그 책은 나와 별개로 혼자만의 힘을 가지게 된다. 마치 다른 사람인 것처럼. 그러면 그때 비로소 나를 하나의 캐릭터로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영화의 주인공을 바라볼 때처럼.



다른 사람이 아닌 나의 앞 면과 뒷면을 모두 보고 싶다면 글을 쓰면 된다. 그러면 얼마 전 출판한 내 책, 무심한 듯 씩씩하게의 부제처럼 나를 미워하지 않고 내일을 기다리는 법을 알게 될지도 모른다.


인간에 대한 이해가 높아지면 어쨌든 살아가는 게 한결 편해진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두부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