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부 이야기

잃는 동안 얻는 것

by 김필영





스무 살, 영화관에서 일할 때 나는 주로 마감시간에 일을 했다. 저녁 9시 반에 출근해서 새벽 4시 반 정도에 퇴근이었다. 그때 주로 중간 마감이었던 두부는 나를 종종 기다려주었다. 청바지를 입고 스니커즈를 신고 키가 178 정도 되어 보이는, 그런 멀쩡한 남자애와 친해진 게 좋았다. 마감을 할 때면 같이 전체 불을 끄고 계단을 내려가고 영화관 입구에 있는 브로마이드를 바꾸고. 특히 추운 날 그런 것을 '같이'하는 것은 정말 생각보다 훨씬 좋았다.


새벽에 마치면 자주 두부와 술을 마시러 갔다. 두부 말고도 친했던 애들 몇몇 이서 함께 마시기도 했지만 두부와 단둘이 아침까지 하는 술집에서도 종종 마셨다. 아마도 그와 어떤 부분에서는 연인으로 발전할 가능성도 있었던 것 같지만 어째서인지 흐지부지되었다. 그때 그가 입고 다녔던 검은색 광이 나던 파카 말고는 모든 게 완벽하다고 생각했는데. 얼굴색과 안경, 목소리 같은 것들이.


그때 나는 건강하게 마른 시기였다. 아침까지 술을 마시고 오후 4시쯤 일어나기도 했지만 그러면 또 괜찮아져서 다음날 또 일을 하고 술을 마실 수 있었다. 제대로 먹지 않아도 그게 티가 나지 않았다. 그때 노란색 티셔츠와 와인색 티셔츠를 두 개 사고 난 뒤부터 한참을 그 티셔츠 두 개를 번갈아 입다가 어느 날 미키마우스가 그려진 기모 후드티를 샀다. 덕분에 세 개의 상의 옷을 일주일에 한 번씩 갈아입었고 그러는 내내 하의는 짧게 리폼한 청치마를 입고 있었다. 운동화는 흰색 스니커즈에 시내에서 산 만 원짜리 작은 가방을 메고 다녔다. 짧은 앞머리를 하고 어깨까지 오는 어중간한 단발머리를 하고 다녔는데 스스로는 뭔가 그런 내 모습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가방이나 신발 같은 것까지 많으면 삶이 얼마나 복잡할까 하는 생각을 자주 했었다.


마감하고 난 뒤 갈 때가 없으면 두부와 근처 맥도널드에 갔다. 일할 때 발라야 했던 선명한 빨간 립스틱이 반쯤 지워진 채로 감자튀김을 먹으며 두부를 보며 웃었다.


시작은 이렇게 잘 생각나는데 끝은 언제였는지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는다. 그 뒤로 군인이 되어 내가 일했던 휴대폰 가게에 왔었고 그리고 그가 대학에 복학해서도 만났다. 만날 때마다 두부는 피웠던 담배의 종류가 바뀌었고 처음에 만났을 때 났던 그 향수 냄새는 나지 않았다. 아무튼 우리는 언젠가부터는 보지 않게 되었다. 더 이상 함께 시시덕거릴만한 주제도 사라졌다.



대학을 다니고 싶다는 생각을 하다가 스무 살의 나를 떠올렸다. 나는 두부의 어느 날의 옷들을 아직 기억한다.

그때, 그때, 그때 각각의 두부는 같은 사람이었을까. 만날 때마다 머리스타일로 바뀌었고 자주 쓰는 단어도 바뀌었다. 게다가 어느 날은 마트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내게 아주 싸게 당근을 판 적도 있었다.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나 역시 청치마를 입지 않고 시폰 원피스, 혹은 정장 바지를 입고서 만났다. 만날 때마다 조금씩 달라진 머리 길이로.


살다가 보니 어느 순간부터 어제와 내일을 이어 붙이는 풀 같은 것이 생겼다. 그래서 나 역시 어제를, 그리고 내일을 생각하면서 살게 되었다. 스무 살의 기억은 지금의 나와 이어진다. 그것들은 때때로 지금의 일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그때는 몰랐던 슬픔을 지금에야 느끼기도 한다. 아마도 그 풀 덕분에 지금은 여러모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무모한 짓을 점점 하지 않게 되었다. 그래 봤자 잃는 게 더 많았다는 걸 몸소 느낀 것이다.


그래도 오늘 문득 두부가 좋아했던, 그 양주의 이름은 잊어버렸지만 색깔이 떠올랐다. 아마도 잃는 동안 무언가는 머릿속에 남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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