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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필영 Nov 12. 2024

어제 바다만 일곱 번을 간 이유는

자연스러워야 소진되지 않는다



산 위에 올라갔더니 푸른 바람이 불고 그곳에서 멍하니 아래를 내려다본다. 다리가 아픈 게 조금 나아지는 기분이 든다. 이마에 땀이 바람에 조금씩 식는다.






어렸을 적 이발소에서 사람은 누구나 저렇게 일을 할 때는 타인에게 친절해야 한다고 배웠다. 나는 그곳에서 손님의 옷을 받아서 옷걸이에 거는 아빠의 모습을 천 번도 넘게 반복해서 보았다. 돈 만원을 받고 허리를 숙여서 인사를 하고, 별것도 아닌 말에도 웃으면서 손님에게 인사를 건네는 그런  모습.






2024년을 되돌아보며 내가 주목한 키워드는 2개다. 하나는 낭비. 하나는 소진.

나는 너무 중요하지 않은 일에 시간을 낭비하고 중요한 일에는 나를 너무 소진한다. 어제는 원고 마감 글이 써지지 않아서 바다를 하루에 7번이나 다녀왔다. 원고 종이를 손에 들고 한 손에는 볼펜을 들고 낫지 않은 감기를 달고 콜록콜록



아침부터 링거를 맞고 정신을 차리고 지금부터 소진한 나를 채워주는 것에 대해 생각해보려고 한다.

소진했다면 그만큼 채워 넣어야 한다. 나를 채우는 것. 우선은 여행.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는 여행. 많이 가본 적이 없지만 이십 대 초반 대전여행 때 나는 완전히 소모되었다가 삼일 만에, 대전의 길거리에서 다시 살아났다. 양말을 열심히 파는 양말 판매 아저씨를 보면서. 그리고 멀리 가지는 못해도 목적이 없이 걷는 여행도 나를 채워준다.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호텔 안에서 멍하니 있을 수 있는 것도 좋아한다.


또 꽤 괜찮은 소설책을 읽는 것. 상실의 시대는 그 책에 나오는 꽤 많은 인물이 나를 채워주었고 호밀밭의 파수꾼도 마찬가지다. 아,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영화도.


그리고 도서관. 도서관을 가면 분명히 채워지는 부분이 있는데 그것은 그 안에서 열심히 책을 읽을 때가 아니다. 그곳을 갈 때, 그리고 집으로 올 때 채워진다. 가끔 그 안 매점에서 뭔가를 먹을 때도. 그냥 별로 갈 곳 없이 그곳에 머무를 수 있다는 게 특권처럼 나를 채운다.


또 하루종일 일정이 없는 날, 아이들과 함께할 때. 아이를 쳐다보고 있으면 내가 채워지는 게 느껴진다. 아무런 기대가 없는 눈빛. 엄마랑 놀고 싶다는 생각 외에는 내게서 그 어떤 역할도 바라지 않는 그 모습을 볼 때 나는 왠지 안심이 되고 내가 채워지는 듯한 기분을 느낀다.


사실은 아마도 내게서 무언가를 바라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냥 이불 안에서 귤을 까먹고 조금 더 추운 날에는 고구마를 먹으면서 겨울을 보낸다고 해도 딱히 문제가 될 일은 없을 것이다. 나를 둘러싼 많은 문제들은 내가 너무 운이 좋아서 다양한 일을 할 수 있게 되어서, 그리고 두 번째 그 일을 하고 싶다는 내 욕망이 너무 커서 문제가 되었다.



그럼에도 나는 내 이름을 걸고 이런저런 일들을 하고 있다. 갑자기 캔슬이 된 일들 역시 내 이름을 보고 먼저 연락이 온 이들이었다. 이런 복잡 다난한 일이 싫으면 어딘가에 완벽하게 소속이 되어서 이름 같은 거 없어도 일감이 들어오고, 안정적으로 월급이 들어오는 일을 선택하면 될 일이다.




나는 최근 돈을 조금씩 더 벌기 시작했다.

그렇다. 분명히 그것은 좋은 일이다. 한 달에 내가 버는 돈은 후반기를 평균으로 보았을 때에는 작년의 2배이다. 나는 이렇게 과거에 비해 큰돈을 벌게 된 것이다. 물론 내 기준에...


그렇다고 해도 내가 모두 소진되면 이 일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할머니가 될 때까지 글을 쓰자. 내가 하는 업 중에서 그것을 방해하는 게 있다면 진심으로 그 일을 어떻게 할 것인지 고민해 보자.


내가 상태가 어떻든 잘될 일은 잘되고 잘 안될 일은 잘 되지 않는다. 내가 신념이 뚜렷하다고 해서 모든 일이 잘 되는 것은 아니다. 반대로 내가 신념이 없다고 해서 모든 일이 잘 되지 않는 것은 또 아니다.


멍하니 바다를 바라보는 걸 좋아한다. 바다를 보면 파도가 그 물이, 모래가 아주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늘 비슷한 속도로 바다는 바다가 있어야 할 곳에 있다. 나도 바다처럼, 내가 있어야 할 곳에 너무 빠르지 않은 적당한 속도로 있고 싶다.



그러니까 자연스러워야 소진되지 않는다. 양말 파는 아저씨처럼, 이발소를 하는 아빠처럼. 걸음도 표정도 생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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