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강의를 시작할 때, 첫 수업은 태화동 주민센터였다. 그리고 그 글쓰기 수업이 1년 내내 이어지는 긴 수업이 되긴 했지만 중간에 코로나가 심해져서 몇 달 쉬게 되었다. 그러면서 인생에서 세네 번째 강의가 세바시강연이 되어버렸다.
주민센터강의 때도 마찬가지고 세바시 강연 때도 그렇지만 나는 그때 그 강의에 목숨을 걸었다. 강의의 ‘강’자도 모르는 사람이었지만 내가 조금 열심히 하면 그만큼 딱 티가 나는 게 좋기도 했고 무언가를 전달하는 것 자체도 흥미로웠다. 그래서 나는 그때부터 적어도 1~2년간은 강의마다 목숨을 걸었다. 나를 갈아 넣었다. 어떤 식이었냐면 강의 전날은 무조건 모든 스케줄을 비워놓고, 그 강의를 계속해서 처음부터 끝까지 시연하는 방식으로 준비를 했다. 거의 사육당하듯이 아침 먹고 연습, 점심 먹고 연습, 저녁 먹고 연습이었다. 물론 전날뿐만 아니라 2주간은 미친 듯이 연습을 했던 것이다. 강의 당일은 모래를 씹을 것 같은 입 상태가 되는데 그때 삼각김밥 한 개를 다 먹지도 못하고 강의실로 향한다. 그래도 뭐라도 먹어야 강의를 하니 삼각김밥을 세입정도 먹으면서 흥얼흥얼거린다. 오늘 강의에 앞서서 블라블라.. 강의에 미친, <미친 강의 1년 차> 였던 것이다.
그렇게 몇 년이 쑥 지나가버리고, 그 사이 몇몇 제법 굵직한 곳에서 강의를 하기도 했다. 매일 성장하는 기분을 느끼고 있을 무렵, 작년하반기쯤 교육업체를 한 곳 알게 되었다. 확실히 업체에 소속이 되니 글쓰기 강의도 업체에서 기관으로 제안서를 쓰니 내가 혼자 하는 것보다는 훨씬 더 많은 강의가 들어오게 되었다. 또한 글쓰기뿐만 아니라 그때부터 1년 동안 셀프리더십 강의와 비즈니스매너 강의도 참 많이 나갔다. 나로서는 그 강의가 재밌었고, 특히 셀프리더십 안에 있는 자기 이해는 글쓰기강의와 비슷해서 좋았고 시간관리 목표관리는 평소 관심 있는 분야였던지라 강의를 하는 게 재밌었다.
그럼에도 강의가 그렇게 많아지고 나니, 결국은 일이 되기는 했다. 예전처럼 그렇게까지 강의 준비를 하지는 못하게 된 것이다. 한 달에 보름이상 강의를 나가는데 그 강의를 그때마다 2주씩 준비한다는 건 시간적으로 불가능했다. 그럼에도 아, 나는 이제 강의한 지 시간이 좀 지났고, 이제 좀 강의를 잘하는 것 같다는 생각도 좀 들었던 게 사실이다. 그러다가 문득, 2025년도 9월 강의들을 정리하다가 과거의 내가 떠올랐다. 그리고, 그때의 나를 지금의 내가 강의실에서 동료강사로 만난다면? 내가 1교시를 하고 그가 2교시를 한다면? 담당자는 과연 누구를 부를까?를 생각하게 되었다.
순간 어쩐지 자신이 없어졌다. 과거의 나를 부를지도 모른다. 스킬이고 뭐고, 목숨을 걸고, 자신을 갈고 강의를 준비한 것을 어떤 담당자는 알 것 같았다. 아무리 유연하고 부드러워도 목숨을 걸지 않은 것은 담당자가 알 것 같았다. 아니, 담당자가 아니라 세상은 그런 것을 안다는 기분이 들었다.
내 목숨은 하나이고, 강의마다 목숨을 건다면 정말로 몇 년 지나지 않아 목숨이 위태로워질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의 내 모습을 떠올리자, 이 강의 하나하나가 얼마나 소중한지 다시 한번 느껴졌다. 그리고 연차가 쌓일수록 분명히 실력이 늘겠지만, 실력은 전부가 아닐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움이 될 뿐, 결국은 링 위에서는 대단한 1년 차들과 싸워야 하는 것이다. 목숨을 걸고 있는 대단한 1년 차가 어떤 분야든 있다. 나는 결국 그들과 함께 하는 강의시장에서 나만의 강의스킬, 진심, 고유성을 개발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이렇게 글쓰기로 마음을 정돈하고, 한 달에 일정 강의 이상은 받지 말고 강의 하나하나 진심을 다해서 하려고 노력하는 것도 필요할 것 같다.
지금이 계속될 리 없다. 지금이 계속될 리 없다... 지금의 치즈가, 지금의 따뜻함이 당연히 계속될 리 없다. 치즈는 언젠가 사라질 것이고 언젠가 냄비는 따뜻함을 넘어서 보글보글 끓게 될 것이다. 너무 당연하고 매번 강의 때마다 비슷한 말을 하지만 내 삶에 적용하는 것은 쉽지 않다. 1년 차에 그렇게 고생했는데 이제는 조금 쉽게 가자라고 말하는 이가 내 안에 여러 나 중 한 명이 있다. 하지만, 미친 1년 차는 내 과거에만 있는 게 아니다.
이미 현재 시장에 포진되어 있다. 그러니 정신 차리고 다시 그냥 열심히가 아닌, 아주 열심히 강의준비를 해보자. 1년 차들만큼은 아니지만, 그들과 비빌 수 있을 만큼의 열정과 그 사이 쌓인 무언가를 무기 삼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