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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필영 Feb 03. 2020

오줌을 기다리는 마음


 애를 키운 지 대충 3년 정도가 되었다. 첫째는 시계를 볼 줄도 모르면서 아침이 되면 “이제 여덟 시 반이다. 일어나자.” 하며 나를 똑같이 흉내 낸다.

 “이럴 거야!”라는 협박에는 “이럴 거다!”로 응수한다.

말하는 것 만 보면 다 큰 것 같은데 아직 기저귀를 하고 있다. 어린이집에서 우리 애 빼고 모두 기저귀를 뗐다.

 “수민이도 한솔이도 민서도 기저귀 안 해요. 다인이만 해요. 다인이도 이제 팬티 입을 거예요.”

그러면서 열심히 변기에 앉는다. 오늘 아침에도 일어나자마자 변기로 뛰어갔다. 누군가가 시키지도 않았는데도 말이다. “다 쌌어!” 하고 씩씩하게 바지를 올리더니 나에게 폭 안겼다. 변기에는 아무것도 없었지만 잘했다고 토닥토닥해주었다.      







 첫째가 어린이집에 가고 둘째가 낮잠이 들었을 무렵 근처에 사는 친정엄마가 왔다. 조용해진 집에 엄마의 목소리가 퍼졌다.

 “철학관에 또 가봤는데 네가 글로 성공하려면 2년 정도 걸린다고 하더라. 그러니까 올 한 해는 둘째 집에서 키우면서 그냥 쉬엄쉬엄 쓰다가 둘째 4살 되면 그때 어린이집 보내는 게 낫지 않겠냐. 이 어린 걸 어찌 어린이집을 보내냐.”

 “엄마, 일단 내년 3월에 보내보고 안되면 다시 퇴소할게. 남편도 허리가 아파서 아예 육아를 못 도와주고 있고 나도 너무 정신이 없어. 다인이가 어린이집에 있으니 세아도 적응 잘할 거야.”     

 엄마는 대답 대신 불안한 눈빛으로 소파 언저리에 놓인 노트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다시 말을 이어갔다.

 “아니, 그리고 애 잘 때 집 청소 좀 해라. 집이 이래서 뭐 어떻게 사니. 네가 지금 글 쓸 시간이 어딨니.” 
 “조금 있으면 다인이 어린이집에서 오는데…. 지금 아니면 아예 쓸 시간이 없는데.”     





 엄마는 가게에 손님이 왔다며 금방 가버렸다. 아까 했던 말들이 소화되지 못한 채 거실에 둥둥 떠있었다. 책상에 앉았다. 그런 마음에 대해 또 적기 시작했다. 적다가 보니 내가 요즘 첫째와 별반 다르지 않은 생활을 하고 있다. 글을 쓰고 내용물을 확인한 뒤 실망하고 또다시 책상에 앉는다. 아이가 또래 친구들이 먼저 팬티를 입은 걸 부러워하듯이 나 역시 비슷하게 글쓰기를 시작했지만 이미 출판을 한 친구들을 보면 부러웠다. 그렇지만 부러움과 별개로 나는 그들의 속도를 따라갈 수가 없었다. 매일 해야 할 빨래와 설거지가 산더미같이 쌓여있다. 며칠 외면한다고 해도 언젠가 어차피 내가 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을 처리하고 아이와 놀아주고 밥을 먹인다. 밤 9시에 커피를 한 사발 마시고 애들을 재우러 안방으로 들어가지만 내가 먼저 잠든다. 그래서 시간이 조금 주어지면 머리를 감지 않고 집이 난장판이 된 채로 글을 쓴다. 옷 정리와 설거지를 미루지 않는 한 좀처럼 시간은 주어지지 않았다.


 숨을 크게 마시고 책상 주위를 둘러보았다. 책상과 블라인드 사이에 아이에게 요즘 읽어주고 있는 배변 훈련을 위한 동화책이 보였다. 책장을 넘기니 변기에 싸는 걸 실패하는 장면이 나왔다.





     

 ‘어머, 안 나왔네. 괜찮아.’     







  언젠가는 다인이도 또래 친구들처럼 기저귀를 떼고 변기에 오줌을 싸는 날이 올 것이다.  나 역시 아이 둘을 키우면서 천천히 써도 책이 나올 것이다. 남들의 속도에 따라가려다 길을 잃어버리는 것보다는 무언가를 기다리는 마음으로 매일 조금씩이라도 행동하는 편이 낫다. 당장에 눈에 띄는 성과가 없더라도 꾸준히 무언가를 하고 것만으로도 조금씩 자라고 있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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