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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필영 Feb 08. 2020

허리디스크를 얻은 철없는 부부

 요즘 남편은 서서 밥을 먹는다.

2주 전 허리디스크 판정을 받았기 때문이다.

병원에 입원해서 엠알아이를 찍어보니 지금 허리디스크가 터진 것은 아니고 예전에 터졌다고 한다. 지금은 퇴행성 허리디스크라고 했다. 꾸준한 관리가 답이라고 하시면서 물리치료를 받으러 올 것을 권하셨다. 그래서 남편은 물리치료를 받고, 밥을 서서 먹고, 나머지 시간에는 온종일 누워 있다.

덕분에 나는 2주 전에 독박 육아를 시작했다.

다른 건 다 괜찮은데 목욕이 문제였다. 15킬로 나가는 첫째를 안아서 며칠 씻기고는 두 손 두발 다 들고 샴푸의자를 주문했다. 그런데 그 의자에서 씻기니 둘 다 잘 앉지 않으려 하는 것도 문제였지만 숙여서 감기는 자세 역시 불편한 게 제일 문제였다.

그렇게 며칠을 보내고 나니 왼쪽 팔목 통증이 왔다. 바로 어머님께 애들을 맡기고 한의원에 가보니 한의사 선생님께서 “쉽게 말해 엘보예요.”라고 하셨다.

침을 맞고 뜸을 뜨고 찜질을 했다.

 쑥뜸을 다 뜨고 나면 말할 수 없는 냄새로 주위의 시선이 느껴졌지만 한의원에 갈 시간을 획득했다는 것 자체에 즐거웠다.

그렇게 어머님께 부탁한 지 3일째, 팔이 거의 다 나았는데 갑자기 시작된 허리 통증에 잠을 잘 수가 없었다. 결국 새벽 5시에 오신 어머님이 파스를 붙여주시고 진통제를 한 알 먹고 나니 괜찮아져서 잠을 잤다.

그다음부터가 문제였다.

둘 다 아프니 뭘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어머님께서 아침에 며칠 또 와주셨다.

 “어머님 오셨어요.”하고 하루를 시작하는 것은 죄송하지만 든든한 일이다.

어머님은 아침에 도와주시고 저녁에는 애 둘을 나 혼자 봤다. 둘째는 이제 16개월이 되었는데 기저귀를 벗기는 것도 도망가고 다시 채우려고 하면 또 저만치 가있고 다시 바지 입히려고 하면 또 저만치 떠나 있다. 그래서 그 단순한 과정에 땀범벅이 되었다. 그래서 힘들 때에는 애들에게 1시간 정도 뽀로로를 틀어주고 이틀에 한 번씩 씻기기도 했다.






어찌어찌 시간이 흘러 그래도 정신 차려보면 애들이 잠잘 시간인 9시 반이었다.

둘 다 양치를 시킨 뒤 양팔에 아이들을 끼우고 자장가를 불러주고 옛날이야기를 해주며 잠을 재운다. 보통 같이 잠들고 같이 일어나는데 요 며칠은 허리가 아파서 내가 새벽에 자꾸 깼다.

어제도 일어나 보니 새벽 3시라서 살금살금 거실로 나가보았다. 어둠 속 남편의 휴대폰 불빛이 보였다.

 “남편 저 허리가 아파서 잠을 못 자겠어요.”

나는 팔을 쭉 밑으로 내밀고 있으면 괜찮았다. 그래서 선 채로 그렇게 팔을 덜렁거리며 말했다.

곧이어 남편은 돌아누우며 “저도 아파요.” 했다. 남편은 똑바로 못 눕고 옆으로만 누워야 해서 반대쪽으로 누우면서 말했다.



똑바로 앉지도 못하고 눕지도 못하는 부부인 우리는 오랜만에 새벽 3시에 만났다.

남편은 눈을 반짝이면서 스위치(닌텐도 게임기)가 갖고 싶다고 했다.

나는 그 게임이 어떤 건 줄 몰라서 한참 설명을 듣다가 요즘 계속 벼르고 있던 파마와 염색이 하고 싶다고 남편에게 말했다.

남편은 배가 고프다면서 식탁 주위를 어슬렁거리며 바나나를 하나 서서 먹었다.

그런 남편을 보자 짠한 마음을 뒤로하고 웃음이 다.

 

'파마는 기본 1시간은 앉아있어야 하고 스위치에서 남편이 하고 싶은 게임은 운동하는 게임이라 아마 지금 하지도 못할 텐데.'


식탁이 치우지 않은 채 그대로다. 게다가 설거지는 쌓여있고 빨래도 쌓여있다.

 ‘집 좀 치우고 살아.’

엄마의 목소리가 바로 옆에서 들리는 듯하다.  곧 오실 어머님을 위해 집을 치워야 했다. 그런데 우리는 이 시국에 스위치와 파마에 대한 이야기를 2시간이나 나누다가 잠들었다.

나만 철없는 게 아니고 남편도 철이 들지 않아 참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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