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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필영 Feb 17. 2020

남편의 가출로 모든 여자들이 울었다


 그날을 생각해보니 역시 청소를 하는 게 아니었다.

나는 가구를 이리저리 바꾸며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대청소를 한 것이다. 허리가 너무 아파서 잠시 누워있었다.

쉬고 있으니 친정엄마가 와서 점심을 차려주었다. 둘째도 잠시 봐주었다. 덕분에 허리가 아픈 우리 부부는 나란히 누워서 쉬었다.

남편은 나에게 스토브리그가 얼마나 재밌는 드라마인지에 대해 말해주었다. 그러면서 여보가 글 쓰는데 이런 드라마는 꼭 봐야 한다고 했다.

누워있다가 보니 엄마가 가버렸다. 쉬는 날이었던 남편은 오후 5시부터 글을 쓰고 오라며 자유시간을 주었다.





그날따라 애들이 엄마를 찾았다고 한다.

영상통화를 하고 뽀로로, 콩순이 영상물을 틀어줘도 아무것도 안돼서 나에게 전화가 와서 다시 오라고 했다.

나는 글을 완성하고 싶었지만 알겠다고 하고 집으로 갔다.

 집에 도착하니 그사이 남편은 지쳐버린 모양이다. 표정이 좋지 않았다.

그런데 내 방에 가니 버려놓았던 티브이가 내 책상 위에 올려져 있었고 남편의 야구게임이 켜져 있었고 그것도 모자라 내가 오니 서서 게임을 시작했다.

10분 20분이 지나 남편이 지금 뭘 하는 건지 화가 났다.

아니 지금 뭐 하는 거냐고. 애들 있을 때 제발 게임 좀 안 하면 안 되냐고 말했다.

딱 3번밖에 말 안 한 것 같은데 (넉넉히 잡아도 5번이다.) 남편은 갑자기 화를 내었다. 원래라면 남편은 그 상황에서 춤을 춘다던지 ‘여보는 이상해.’라는 노래를 만들어서 부르던지 아니면 초콜릿을 먹으러 간다던지 하는데 3년 만에 남편이 처음으로 화를 냈다.     

 “여보는 진짜 너무해요. 나 그냥 덕신 가서(시부모님 댁) 살래요. 내가 나가던지 해야지. 진짜 못살겠네.”


거칠게 파카를 입는 소리가 들렸고 꽝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닫혔다.

나는 남편이 나간 뒷모습을, 정확히 말하자면 출입문을 쳐다보았다.

뭘 해야 할까 고민했다.

우선 돈을 두둑이 챙겼다. 돈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법이다. 그리고 아이들도 챙겼다.

 “얘들아, 우리 호텔 갈까? 가서 엄마랑 물놀이도 하자.”

아이들은 신나 했다. 밤 9시에 호텔을 가본 적은 없지만 나는 홀로 아이들과 남겨졌고 남편 앞에서는 한마디도 못했다. 집에 있으면 너무나 우울할 것 같았다. 아이들을 상대로 분풀이를 할 수는 없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내 기분은 슬픈 것보다 놀란 것이었지만.

화내는 사람은 말이 아니라, 표정이 다한다고 생각한다. 그 표정을 떠올리니 더 이상 집에 있을 수 없었다.

다행히 호텔에 방은 많았다. 호텔 입구에서 예약하고 가도 되겠다 싶어서 무작정 아이들과 기저귀 가방을 들고 아파트 입구로 나왔다.

택시를 잡으려는데 갑자기 코로나가 걱정되었다. 지금 몇 번째 확진자가 나왔다는데 호텔 같은 곳에 가도 괜찮을까. 그렇게 고민하고 있는데 발이 유난히 커서 멀리서 보면 발만 보이는 남편이 걸어왔다.

남편이 나간 지 1시간 만이다.

남편은 내 손을 잡으며 다시 집으로 가자고 했다. 남편 앞에서만 잘 우는 나는 금방 울음을 터뜨렸고 애들은 잠이 와서 징징거렸다. 모든 여자들이 울었다.

남편은 우는 여자 세명을 데리고 집으로 갔다.

 "아무래도 제가 게임을 포기해야 할 것 같아요." 하면서.


나는 애들을 재우면서도 계속 울었다.

그러면서도 ‘울어서 그런지 내가 이 시간에 깨어있군.’ 하면서  ‘이틀 동안 두 명의 엄마들을 만났다.’를 완성했다. (이럴 때 보면 나도 좀 이상하다.)

남편은 계속해서 본인의 상황을 설명해주고 화를 내서 미안하다고 했다. 몸이 아프니 아무래도 예민 해지는 것 같다고 했다.(남편은 허리디스크이다.)

그런데 말하지 않아도 정말로 알 것 같았다.

남편은 사과를 잘하고 아침에는 여지없이 신나는 노래를 들려주던지 춤을 춘다. 회사에서 집으로 올 때 우리 집 현관문을 열 때 아이같이 행복한 미소로 문을 열고 들어온다. 회사에서 있었던 일들을 모두 이야기해준다. 나에게 존댓말을 써주고 재밌는 것은 항상 나에게도 보여준다. (덕분에 나는 봉준호 감독의 수상소감을 5번이나 반복해서 보았다.)

3년 동안 남편이 보여주었던 믿음이 있다.

아이를 키워가는 과정 중에서 부부도 함께 커가고 있다.

가출을 통해서, 그리고 화해하는 그 과정 속에서.





그런데 다음날이 되자 웃으며 남편은 나에게 다가왔다.

 “여보, 허리에 아주 특화된 의자가 있더라고요. 그 의자를 사면 게임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결국 남편이 사자고 했던 의자를 샀다. 아직 아무튼 다 크려면 둘 다 한참 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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