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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필영 Feb 20. 2020

"이제 엄마 다됐네."

'엄마'라는 페르소나

페르소나 : 그리스 어원의 가면을 나타내는 말로 외적 인격 또는 가면을 쓴 인격을 뜻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참조)      



         

 고등학교 3년 내내 많은 책을 읽었다.

남들이 수능 준비를 할 때 내 사물함에는 샴푸와 수건, 클렌징 폼, 칫솔 그리고 소설책들이 있었다. 특히 고3 때에는 철학서에 빠졌다. 윤리 책을 10번씩 읽고도 그것만으로도 부족해서 철학서를 사서 읽었다.

학교에 가서나 양치를 하고 머리를 감을 만큼 게을렀으면서 인간의 성선설과 성악설을 고민하는 심각한 고3 학생이었다.

친구관계도 나쁘다 할 것도 없었던 게 친구라고 부를만한 사람도 없었다. 그 당시 나는 그런 것에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졸업한 지 몇 년이 지나서 어느 날 갑자기

 "왜 근데 그때 애들 전부다 교복 위에 노스페이스 바람막이를 입고 있었지?"

라고 절친에게 물어보니

 “그거, 유행이었잖아.”

 유일한 내 친구가(중학교 때 학원에서 만나서 친해졌다.) 황당해하며 대답했다.

나는 그제야 아, 했을 정도로 외부 상황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렇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일찍 사회생활을 했다.

 그러면서 책 대신 술을 마셨다. 새벽녘까지 어울렸다. 친구들은 많았고 술은 돈만 내면 더 마실수 있었다. 게다가 돈을 내지 않아도 술을 사주겠다는 남자들은 넘쳐났다.

내가 20대 때 10년 동안 제일 많이 한 생각은 주로 치킨을 앞에 두고였다.


주문한 치킨이 나왔다.

치킨을 앞에 나누다 보니 네가 좋아진다.

너와 함께 이야기하다 보니 네가 또 좋아지고

눈을 마주치니 네가 좀 괜찮은 것 같고..

술집에서 새벽이 되니 왠지 또 네가 좋은 것 같고

네가 화장실 간사이 너를 생각해보니

너 정도면 괜찮은 것 같고

갔다 와서 다시 앉아서 나를 보면서 웃어주는 널 보니

네가 또 좋은 것 같다.

집에 가서 이불속에 누워서 잘 들어갔냐는 너의 문자를 보니 네가 참 괜찮은 것 같다.     

 다음날 이 남자와 썸을 탈지 안탈 지를 고민하는 게 나의 일과였다.






그런 10년의 시간이 지나서 딱 29살에 결혼을 하고 애둘엄마가 되었다. 

아주 태어날 때부터 애엄마 인척 하면서 이것저것 애들을 위해 따지기 시작했다.

 "집에 오면 손 씻어야 해요.

자 아~해보세요. 집에서는 뛰면 안 돼요. 살금살금 걸으세요. 티브이는 멀리서 보세요. 책 읽어줄까. 이제 씻어야 해요."      


 애들 둘을 데리고 가끔 밖에 나가면 20대 때 나를 알았던 사람들은 먼저 다가와서 나에게 인사했다.

 “이제 엄마 다됐네.”



엄마 다된 나는 10대처럼 철학서를 읽지 않고 20대처럼 술을 마시지 않는다. 지금은 아이에게 좋다고 하는 것을 하루하루 쿠팡으로 주문하면서 글을 쓴다.

많은 실수를 하고 잘못을 하면서 멧집을 키운다.

갑자기 생각나면 이불 킥 감이 한두 개가 아니다. 그래도 나를 키운다.

육퇴 후에는 엄마라는 가면(역할)을 벗고 오롯이 나를 챙긴다. 아무리 쓸데없는 것이라도 그것이 내가 원하는 것이면 하려고 노력한다.






 둘째는 낮잠을 자고 있고 나는 서둘러 글을 쓰고 있다. 온전한 나와 만나는 1프로의 시간이다.

1프로의 시간에 왜 이렇게 모자란 엄마 일까 라는 자책보다, 서둘러 자기 자신을 만나 보는 것은 어떨까.

그렇게 키운 자신의 맷집이 나다운 육아를 할 수 있는 힘이 된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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