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모르겠지만 제안서를 만들다 보면 아무래도 뭔지는 몰라도 뭔가가 뚜렷해질 것 같았다.
뭐부터 해야 할까 고민하다가 남편이 준 2시간 자유시간에 서둘러 도서관에 갔다.
거기서 육아 에세이를 30권 꺼냈다. 목차를 읽어보았다.
‘보통 이런 걸 쓰는구나.’
그다음 내가 브런치에 올린 글을 보았다.
‘내가 쓰고 싶은 것은 뭐지?’ 정확한 답은 찾지 못하고 ‘드디어 육퇴다!’ ‘오늘도 독박 육아’ 같은 제목을 쓰고 싶은 건 아니다는 결론만 내린 채 집으로 왔다. (내 글과 색깔이 맞지 않는 듯한 느낌이었다.)
문을 여니 친정엄마가 와서 청소를 하고 있었다.
나는 아기매트 위에 누우며 엄마에게 말을 걸었다.
"언제 왔대? 난 새로 생긴 도서관 갔다 왔어."
“집 좀 치우고 살아. 지금 도서관이 문제가 아니라 너희 집 분리수거통이 터지려고 한다.”
“엄마, 근데 내가 지금 뭘 쓰고 싶은지 정확하게 모르겠어.”
“쓰기는 뭘 쓴다는 거냐. 애 키우기도 바쁜 마당에...... 아니 건조기까지 있으면서 왜 이렇게 빨래가 밀리는 거냐. 요즘 시대가 얼마나 편한데 애를 기저귀 채워서 어린이집 보내면서 맨날 힘들다고 징징대고, 게을러터져서는.”
나는 그 말을 듣고 슬그머니 먹다 흘린 과자 부스러기를 치웠다. 그리고 게을러터진 내가 육아가 왜 힘든지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엄마 말대로 세탁기도 건조기도 있고 심지어 청소도 잘 안 하고 요리도 잘 안 하고 애 두 명 중 한 명은 기저귀 한 채로 어린이집에 보내 놓으면서 정말 나는 뭐가 힘든 걸까.
애 둘의 출산, 그전에 임신, 그전에 결혼까지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 보았다.
3년 전 결혼을 준비하면서부터 나에게 관심을 주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라떼족(나 때는 말이야...)들이 몰려왔다.
결혼을 한다고 하니 4계절은 만나봐야 한다고 나를 나무랐고 애를 낳으니 천기저귀도 안 쓰는데 육아는 거저 하는 거라고 했다.
애를 좀 더 키우니 식당에서 너무 떠들면 떠든다고 눈치를 주고 막상 뽀로로를 보여주면 엄마가 되어서는 저런 거나 보여주고 하는 시선으로 나를 보았고, 여름이면 양말을 안 신기고 나왔다고 기어이 와서 한 마디씩 하시는 할머니들이 넘쳐났다.
생각해보면 20대 때 그래 취업은 언제 할 거냐, 취업하면 결혼은 언제 할 거냐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출산하자마자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사람에게 젖 안부부터 묻는 사람이 있었고 친정엄마는 우리 애가 모유를 먹지 못해 불쌍하다고 했다. 첫째를 낳으니 둘째는 언제 낳을 거냐고 했고 둘째를 낳으니 아들 하나는 있어야지 했다. 심지어 나는 아기 엄마 친구가 없는 것으로 어른들에게 혼나기도 했다.
난 원래 별로 친구가 없었는데.
‘할머니가 키워서 그렇지 뭐.’ 이런 말도 싫고 누군가에게 건네진 평가에 ‘애 안 키우는데 잘 모르지 뭐.’ 이런 것도 참 별로다.
편견을 가지고 바라보는 시선, 혹은 말에 대해서 사실은 그거 편견인데, 사실 그거 오지랖이야. 살짝이 글로서 얘기해주고 싶은 심정이다.
엄마의 말을 거꾸로 해보았다. 애 키워서 바쁜 마당에 왜 글을 쓰고 있을까.
그 미묘한 시선이 나는 불편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처럼 느끼는 사람들에게 공감이 되어주고 싶고 위로가 되어주고 싶기 때문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