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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필영 Feb 22. 2020

"내 말 듣지 마."

친정아빠의 교육법

 



 

 아빠는 이발사이다. 17살 때부터 62살인 지금까지 손님들의 머리를 만지고 있다. 가게를 세 번 옮겼다. 두 번째 가게에서 세 번째 가게로 옮길 때쯤 핫도그를 팔던 할아버지가 돌아가셨고 세 번째 가게를 한 지 5년 정도 지났을 때 매번 술에 절어있던 슈퍼 주인아저씨가 돌아가셨다. 그때 아빠가 암 진단을 받긴 했지만, 다행히 완치되었다.     

 아빠는 평소에 정치적인 성향을 숨기지 못해서 이발하다가도 손님과 다투곤 했다. 그러고 나면 손님은 돋보기안경이나 모자 같은 걸 급하게 챙기고서는 인사도 없이 가게 문을 열고 나가버리곤 했다. 얼마나 문을 세게 여는지 손님이 나간 뒤에도 한참 열었다 닫히기를 반복하면서 왔다 갔다 했다. 그런데 그 손님은 다음 달이 되면 어김없이 이발소로 온다. 돋보기안경을 끼고 이발소가 여기밖에 없다는 듯이 말이다.     

 아빠가 평소에 하는 말은 시작은 다른데 결국에는 꼭 세 가지로 마무리된다. 

부모가 바르게 행동하면 자식이 결국 잘된다.’와 ‘교회든 절이든 열심히 다니면 도움이 된다.’ 그리고 ‘나는 좋은 아내를 둬서 복이 많다.’이다. 그 얘기 말고도 잊을법하면 아빠의 얇은 입술에서 나오는 말이 있다.     

 “내 말 들으면 안 된다. 내 말 들으면 나 정도밖에 안 돼. 나는 이발 사고 집 한 채 있고 그럭저럭 밥 먹고 사는 정도잖아. 너는 너 하고 싶은 대로 살아. 내 말은 듣지 마.”     

 고등학교 때 학교 근처에 태권도장이 있었다. 그 앞을 지나갈 때 한 번은 초등학생들이 발차기하는 모습을 보았다. 탕탕하는 소리를 듣다 보니 배우고 싶어 졌다. 부모님께 말씀드리니 회비를 주셨다. 다음 날 선생님에게도 말씀드렸지만, 대답 대신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셨다. 그 눈빛이 뭘 의미하는지는 알고 있었지만, 야간 자율학습 시간을 알리는 종이 치기 10분 전 학교를 빠져나와서 태권도장을 갔다. 그렇게 3일 동안 다녔다. 아침 조회시간에 회초리를 일단 맞고 시작했다. 3일이 지나자 선생님이 한숨을 쉬며 집으로 전화를 하겠다며 교무실로 갔다. 수업이 모두 끝난 후 종례시간에 선생님을 다시 만났을 땐 “너희 아빠 참 특이하시다.” 이 말만을 남기고 나갔고 그때부터 1년 동안 맞지 않고도 태권도를 배울 수 있었다. 나중에 이발소에 가서 뭐라고 얘기했냐고 물어보니 아빠가 코를 풀며 말했다.

 “저희 아이는 대학 못가도 선생님 탓 안 할 테니 야간 자율학습 시간에는 태권도를 보내주세요.” 그 말 밖에 안 했다면서 심드렁한 표정을 지었다.      

 스무 살이 되고부터 일을 구하면 금방 그만뒀다. 그리고 또 새로운 일을 구했다. 휴대폰을 자주 바꾸고 요금도 직접 냈다. 영화관에서 야간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했다. 그사이에도 가끔 아빠와 식탁에서 마주칠 때면 똑같은 말을 했다.

 “멋대로 살아. 너희 세대는 나보다 네가 더 잘 알겠지.”

그래서인지 결혼도 내 멋대로 만난 지 2주 만에 결정했고 3년 만에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자유롭게 크니까 얼마나 좋냐. 이렇게 잘되었잖아.”

어제 애들을 어린이집에 태워주시며 아빠는 신바람이 나서 얘기했다.

 ‘나는 창업도 실패했고 직업을 대여섯 번 바꾸는 동안 한 번도 잘된 적이 없는데? 게다가 공무원 시험 준비도 3년이나 했는데 떨어졌는데….’               

 멋대로 자라서 좋은 점은 뭐가 있을까. 생각해보니 결정 장애가 없다는 것 아닐까. 몇 번이고 ‘결정’이라는 단추를 직접 눌러볼 수 있었다. 공무원 학원을 고를 때에도 스스로 찾아가서 상담을 받아보고 결정했다. 상담실에는 부모님이 대신 설명을 듣고 등록하는 사람도 많았다. 물론 합격하지 못했지만, 그 실패가 다음 단추를 누를 때는 도움을 주었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는 일도 마찬가지이다. 나라는 사람의 데이터가 쌓이고 원하는 것과 하고 싶은 것이 뭔지 점점 더 분명해졌다. 아빠 덕분에 선명한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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