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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필영 Feb 27. 2020

이것은 육아 이야기가 아니다


 요즘 남편은 내가 스토브리그의 스 자만 꺼내도 즐거워한다. 본인이 가르쳐주고 내가 문제를 맞히는 과외학생이 된듯한 기분이다.

“여보 우리 스토브리그 오늘은 11회 볼 차례예요. 애들 재우고 제방으로 넘어와요.

남편은 야구광이다.  

그 드라마가 방송에서 할 때 남편은 다 보았지만 나에게 보여주기 위해 요즘 또 보고 있다.


 





드라마에서는 백승수 단장(남궁민)이라는 주인공이 나온다. 야구를 잘 모르는 채로 야구단장이 되었다. 본인은 책을 포함 질문 등 여러 가지 방법으로 야구에 대해 그리고 그 팀에 대해 배우려고 노력한다. 그런데 무언가 새로운 일을 단원들에게 지시를 내릴 때면 그 팀 내에 관련 사람들은 하나같이 같은 말을 했다.     

  ‘야구 안 해봐서 잘 모르나 본데......’           

6회쯤이 넘어가자 내가 자주 듣는 말로 번역해서 들렸다.


'아직 아기 엄마라 잘 모르나 본데... 애가 좀 크면요.'

'새댁이라 잘 모르나 본데, 애 추워. 따뜻하게 입혀야지.'

'아직 젊어서 잘 모르나 본데......'






 어제도 남편과 두 편을 알차게 다 보았다. 남편은 남편 방에서 자고 나는 아이가 자고 있는 안방으로 갔다.

애들 옆에서 화면 밝기를 0으로 해서 백승수 단장, 그리고 스토브리그에 대해 검색해보았다.

혹시 스포 테러를 당하지 않을까 해서 조심조심 블로그에 들어갔다.

제일 먼저 들어간 블로그에서 남궁민 얼굴 위로 글이 한 줄 보였다.     

‘이것은 야구 이야기가 아니다.’     

보는 순간 내가 쓰는 것 역시 ‘이것은 육아 이야기가 아닌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33살 먹은 내가 꿈을 이루려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애도 키우고 남편도 키우고 나도 키우는 그런 이야기이다.

빨리 육아 퇴근해서 쉬고 싶다. 그런데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나는 그 뻔한 말들한테 한 번쯤은 태클을 걸고 싶었던 것이다.





   

몇 개월인가 정확하게는 기억나지 않지만 아이들이 아기띠를 하고 아직 침받이를 하고 있을 때부터 단골 소아과 옆에  학습지를 권유하는 여자들이 있었다. 그들은 나에게, 그리고 내 아이들에게 웃으면서 사탕을 주거나 풍선을 주었다. 가끔 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반지 같은 것도 주었다.

그러면서 무슨 발달검사를 해보라고 권했다.

그분들은 나에게 웃으면서 말했다.

 “잘 모르시나 본데, 저희 교재는 우리 아이들의 발달에 도움을 주고...(중략) 일단 발달검사라도 한번 받아보시죠?”

그 말을 듣고도 가만히 있자 옆에 있던 풍선을 우리 아이에게 준 여자가 덧붙여 말을 이어갔다.

 “애기 엄마, 어릴 땐 다들 비슷해 보이죠? 크면 차이나요. 첫쨰정도면 이거 하시면 되겠는데?”               

그쪽 교재에 대해서도 잘 모르시고 발달검사에 대해서 잘 모르시는  나는 학습지를 신청하지는 않았지만 그 길을 지나갈 때마다 불편했다.     




 2월 한 달 동안 커피값이 11만 원이 나왔다. 맙소사가 입에서 저절로 튀어나왔다.

육아에서 도망가는 비용 치고 비싸다.

그런데 육아에서 도망치면서 결국 육아를 소재로 글로 쓰고 있다.

 야구 잘 모르는 백승수 단장은 내가 본 것이 지금 10회까지인데 지금까지는 팀의 근본적인 문제를 끄집어내서 변화를 주고 있다. 그 변화는 여태까지는 성공적인 것 같다. 좋은 용병을 구해왔고 발상의 전환으로 연봉 계약도 모두 성공했다.



나도 나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파스쿠찌에 온다.

이런 글은 어떨까? 이런 주제는 어떤가?

단어 순서를 바꿔보기도 하고 문단을 통째로 뒤바꿔보기도 한다.

어떻게 하면 누군가의 마음에 진짜 글이 될 수 있을까 생각 값 11만 원이 나왔다.

육아 이야기가 아니다. 소재가 그것일 뿐, 자주 육아에서 도망치고 파스쿠찌에 가는 내 이야기이다.     


집에서 가장 가깝고 친절해서 자주 간다.



그렇지만 매일 육아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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