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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필영 Feb 29. 2020

냉장고에 맥주캔이 한 달째 있다

    

 “카스레몬 좋아하니?”




 그 오빠의 서울말에 나는 한번 움츠러들었고 카스레몬을 챙겨 온 것에 두 번 움츠러들었다.

일본어학원에 갈 시간이었는데 그 오빠로 인해 대공원 벤치에서 같이 카스레몬을 마시기 시작했다.

그 오빠와 나는 같은 과였다. 인기가 많은 오빠였다. 뭐 나쁘지 않은 외모라고는 생각했지만 내 스타일은 아니었다. 나는 좀 더 호탕하고 사람 좋고 푸근한 사람이 좋았다. 별로 친한 사이도 아니었다.

그 오빠는 딱 붙는 셔츠를 자주 입었고 면바지를 자주 입었다.

그것과는 별개로 사람은 좋은 것 같았다. 게다가 4월의 공기에 마시는 카스레몬은 확실히 맛이 있었다.

카스레몬 픽처를 하나 다 비우고 내 기억에 그분은 나를 집까지 데려다줬다.

그냥 맥주가 마시고 싶었고 너도 하루키(일본 작가)를 좋아하니까 대화를 해보고 싶었다고 했다. 아 그러고 보니 내가 그때 2학년이었는데 1학년 후배 중에 누군가를 좋아한다고도 얘기했었다. 키가 크고 당찬 후배였다. 나는 웃으며 잘해보세요 파이팅을 외치고 집으로 들어갔다.          






그러고 2달 정도 뒤에  친구와 투다리에 갔다.

내가 그날 그 오빠와 대공원에서 맥주를 마셨다고 하니 내 친구는 그 오빠가 너를 좋아하는 건 혹시 아니냐면서 흥분했다. 나는 그럴 리 없다면서 후배를 좋아한다는 이야기도 했다고 전해주었다. 그렇지만 나도 그 오빠의 의도가 궁금했다. 그래서 평소에 술자리에 잘 나오지 않는 오빠에게 문자로 투다리로 오라고 했다.

그 오빠는 40분정도 뒤에 투다리에 도착했다. 내 친구와 셋이서 오손도손 매콤한 우동과 염통 꼬지를 나눠먹었다.


그 오빠는 집에 가는 길에 말했다.

 "누가 불러서 술집에 나온 게 처음이야. 네가 부르는데 당연히 나와야지."라고 했다.

그때는 그 오빠가 왜 그러는 걸까 궁금했다. 그 궁금증은 결국 풀지 못한 채 자연스럽게 그 오빠와 멀어지게 되었다. 졸업하고 난 뒤에는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어항을 팔고 물고기를 파는 곳에서 일한다고 했었는데 만나지 못했다.

그리고 10년이 지났다.

아직도 카스레몬이 나오는지 모르겠다. 10년 동안 한 번도 마시지 않은 카스레몬만큼이나 그때 그 고민은 쓸데없는 것이었다.





 

코로나가 와서 집에만 있다.  

냉장고 문을 열었더니 한달전에 사놨던 맥주가 그 자리에 그대로 있다.

맥주는 결국 어떻게 되려나.

누군가 우리 집에 손님으로 와서 벌컥벌컥 한 번에 마셔버리려나, 치킨을 먹을 때 남편이 갈증이 난다는 핑계로 마시려나 이런저런 상상을 해본다.





 그래도 맥주는 어떻게든 사라질 것이고 텅 빈 거리에는 다시 사람들이 생길 것이다. 고민하든 고민하지 않든 아무렇지도 않게 모든 상황들은 다 지나갈 것이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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