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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필영 Mar 04. 2020

남편이 이제야 사람으로 보였다


  며칠째 우리 집은 전쟁터였다.

코로나바이러스로 첫째가 어린이집에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두 명을 어찌어찌 보기는 하지만 요리와 청소, 그리고 애들 목욕은 아주 손을 놔버렸다.

더러운 여자 셋이서 머리를 긁어가면서 책을 읽는다.

아이들은 30번 40번 반복해서 읽어줘도 재밌어한다. 나는 재미없어서 하품을 하고 머리를 긁고, 애들은 웃으면서 머리를 긁는다. 오늘은 씻겨야지 생각을 하고 있는데 집에 벨이 울렸다. 오늘 어머님이 오실 것은 알고 있었지만 점심때쯤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침 10시에 어머님이 오셨다. 그리고 애 둘을 다 데리고 10분도 안되어서 가셨다.

애들이 떠나고 난 뒤 집을 빙 둘러보니 쓰레기로 가득했다. 원래도 더럽지만 내가 봐도 좀 심각했다. 음식물이 4 봉지나 나왔다.

 '지금이 집을 치울 수 있는 기회일걸.' 하는 생각이 들어서 일단 설거지를 해치웠다.

잠시 쉰다고 소파에 커피를 들고 앉았다. 그러면서 휴대폰으로 이것저것을 검색했다. 30분쯤 뒤에는 누워서 검색했다.

그리고 옷걸이로 전락했던 실내 자전거도 탔다. 타는데 계속 아이들 우는 소리가 들렸다. 애들은 없는데.

다리가 아파서 30분 만에 자전거에서 내렸다. 글을 좀 써볼까 하면서 노트북을 켰는데 왠지 입이 심심해서 초코칩 하나를 서랍에서 꺼내 뜯었다.

초코칩을 한 개먹으니 시간이 점심 1시 30분, 야간 마치고 잠들었던 남편이 일어났다.

애들은 어디 갔냐고 묻길래 둘째까지 어머님이 데리고 가셨다고 말했다.

적응이 안된 나와 남편은 계속 거실을 걸어 다니며 이거 좀 기분이 이상하다고 했다.

이 고요함이 믿어 지질 않았다. 집이 이렇게 적막하고 고요해도 괜찮은 걸까.

그러고 보니 애들이 없이 남편과 내가 집에 둘 다 있다.

모처럼 내가 똥 쌀 때 남편은 누워서 평온하게 휴대폰을 볼 수 있었다.

게다가 내가 설거지를 할 때 남편이 씻는 게 가능했다.

남편이 씻고 난 뒤 나도 씻어야지 생각하고 욕실에 들어갔다. 아이들이 없으니 음악을 들으며 씻을까 하다가 나도 모르게 아이들의 소리를 못 들을까 봐 음량을 낮추고 있었다.

‘아, 애들이 없지 참.’

다시 최대치로 높여서 신나게 목욕을 했다.

'군사'에서 '사람'이 된 기념으로 오랜만에 우리가 서로 사랑해서 결혼한 사이였음을 확인하는 시간도 가졌다.

 그러고도 시간은 아직 점심이다.  마스크를 끼고 동네 파스쿠찌로 갔다.

한 시간쯤 지나자 어머님께 전화가 왔다.

 “너희가 데리러 올래. 내가 데려다줄까.”

나는 이 말 한마디에 둘째가 엄마를 찾는다는 걸 알았고 데려다주시면 감사하겠다고 말씀드리고 서둘러 노트북을 챙겨 집으로 갔다.



어머님이 애들을 데려다주시고 집을 쓱 보시더니 청소를 시작하셨다.

나는 그새 더 생긴 설거지를 했다.

설거지를 하면서 3번 정도 핑크색 고무장갑을 벗어야 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원래의 우리 집으로 돌아갔다.

끝나니 저녁 9시였다. 어머님은 집에 가시고 남편은 야간 출근했다. 애들을 재우고 나니 11시가 되었다.







우리 부부는 아주 오랜만에 '군사'로서의 전우애가 아닌 '사람'으로서의 하루를 보냈다.

다들 이렇게 사는 건가? 이렇게 조용하고 우아하게.

어머님 덕분에  신기한 시간을 가졌다.


매일전쟁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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