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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필영 Mar 09. 2020

나는 엄마로도 살고 싶은데

엄마로만 살고 있다



 아이들이 잠들고 난 뒤 급한 것부터 했다.

이번 달 월급은 코로나 여파로 작았다. 귀찮았던 일을 시작할 때였다.

보험 서류를 정리했다. 설계사에게 드릴 서류는 봉투에 넣어놓고 모자란 서류가 있는 것은 파일에 따로 넣어놓고 인터넷 접수가 가능한 내 보험은 약값 봉투, 진료비 영수증, 진료확인서를 앱으로 넣었다.

서류 정리를 마무리하고 아이방으로 갔다.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것은 산타할아버지가 사준 주방놀이다. 그리고 옆에 사촌이 물려준 크레파스가 있다. 그 옆에 분리수거한다고 누가 내놓은걸 새 거 같아서 들고 온 책이 있다. 마트에서 내가 사준 아기 상어 병원놀이가 바닥에 있고 그 옆에는 둘째가 가지고 노는 핑크퐁 한글나라가 있다.

그리고 오른쪽 벽에 아이들 옷을 넣을 수 있는 다용도 수납장이 있다. 거기에는 짝을 찾지 못한 퍼즐이 한가득 있고 그 옆에는 창문이 크게 나있다.

아이들이 잠들고서야 아이들의 방을 둘러보게 되었다. 하나씩 정리한다는 핑계로 나는  빨래 바구니 속에 다 넣었다. 빨래 바구니는 금방 가득 찼다.

방은 모처럼 방다운 모습을 되찾아가고 있었다. 이어서 거실도 방처럼 하나씩 하나씩 치우고 닦았다.

오래간만에 양말과 팬티가 서랍장에 들어갔고 수건이 제자리를 찾아 들어갔다.

원래라면 건조기에서 대충 꺼내서 입다 보면 그 옷이 거의 다 사라질 만큼 정리를 하지 않고 지냈는데 오늘 오랜만에 깨끗해졌다.

새벽 3시, 집은 깨끗해지고 집과 아이만 신경 쓰는 나는 텅 비었다.

나는 엄마로도 살고 싶은데 엄마로만 살고 있다. 다이어리에는 내 시간을 가지지 못한 엑스가 하나 더 늘었다.






모처럼 지역맘 카페에 들어갔다. 들어가 보니 약간의 설전이 있었던 것 같다. 왜 긴급하지도 않은데 긴급 보육으로 아이들이 휴원령이 내려진 지금 어린이집을 보내느냐의 문제였다.

워킹맘이었던 어떤 엄마가 당신 아이 코로나 걸려도 당신 탓, 이라고 했던 게 발단이 되어서 여기저기서 글이 올라왔다.

병원도 못 가냐, 일주일에 두 번 병원 간다고 아이를 맡긴 나는 죄인이네요.라는 댓글을 읽고, 긴급의 의미는 각자 다르다는 댓글도 보았다.

그리고 워킹맘이라서 어쩔 수 없이 보내는데 보내기 싫다는 엄마들의 댓글도 보였다.

아무튼 댓글은 그래도 따뜻한 글이 많았지만 올려놓은 몇몇 글은 정말 날카로웠다.

우리 지역은 24일부터인가 본격적으로 코로나가 시작되었다. 그래서 그때부터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보내지 않은 엄마들은 이제 한 2주 정도 집에 데리고 있었던 것이 된다.

14일 동안 나도 콧노래를 흥얼거리면서 부엌을 대청소하고 화분에 물을 주는 날도 있었다. 어제도 4시까지만 해도 뽀로로 노래를 부르면서 딸기를 숟가락으로 으깼다.

 ‘딸기청을 만들어서 우유에 타 먹어야지.’

집에는 딸기 냄새가 진동을 했고 내 손 끝에, 그리고 아이들 입에서 나는 딸기향이 지나치게 좋았다. 아이들이 사랑스러웠다. 분명히 4시까지는 그랬는데.

시작은 변기에 오줌을 싸기 시작한 첫째가 바지에다가 오줌을 싼 것이었다. 한두 번은 웃으면서 넘겼지만 다섯 번이 되자 아이를 들고 엉덩이를 씻기는데 웃음기가 사라졌다.

그때부터는 별것도 아닌 것에 화가 나고 짜증이 났다.

아이에게 화를 내고 나면 나에게도 화가 난다. 화낼 일이 아니라는 걸 누구보다 내가 잘 알기 때문이다.



잠을 설치는 중 그사이에 잠이 들었다. 아이들이 나를 깨웠다.

정신없이 아침시간을 보내고 휴대폰을 보니 보험금이 입금되었다. 22000원이지만 돈이 채워졌다. 남편이 점심 출근이라 잠시 아이를 맡기고 커피숍으로 왔다.

어제 장난감 통도 채우고 속옷으로 서랍장도 모두 채웠다.

마스크를 끼고 비장한 마음으로 일회용 컵에 커피를 담아와서 자리에 앉았다.      

‘한 시간 동안 나를 꼭꼭 눌러 담아 채워서 집에 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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