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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필영 Mar 15. 2020

눈물을 결제하는 두 가지 방법

씩씩한 울보가 되었다

 7살 때 썩은 이가 많아서 마취 주사를 맞은 적이 있다. 

 “마취 주사를 이렇게 잘 맞는 7살은 처음 보네. 너 참 씩씩하다.”

 의사 선생님 말씀대로 오빠가 동네에 또래 남자애와 스파링을 시킬 때도 나는 울지 않는 씩씩한 아이였다. 발로 차일 때는 아팠지만 울면 지는 것으로 생각했다.     

 스무 살 때 첫 연애를 하고 난 뒤 이별을 할 때도 비슷했다.

 “이제 진짜 그만하자.”

 내가 불러낸 술자리에 그는 앉자마자 과일 화채에 남아있던 소주를 부었다. 먹지도 않은 과일 화채가 넘칠 듯 찰랑거리는 걸 보고 진짜 헤어지게 될 것을 깨달았다. 울지도 않고 매달리지도 않았다. 다만 계속해서 설사가 나와서 화장실만 들락날락했다. 그의 앞에서는 조곤조곤 사귄 동안의 기억을 말하는 예쁜 이별을 하고 뒤돌아서서 화장실에 가서는 울면서 똥을 싸는 걸 반복했다. 마지막으로 술집을 나오면서 군인이었던 그가 군번줄을 내 손에 쥐여 주었다. 봄에 시작했던 연애가 그다음 해 가을쯤 끝이 났다. 그렇게 헤어졌지만, 도저히 그 헤어짐을 인정할 수 없었다. 집에 찾아가서 다리를 붙잡고 매달리는 상상도 했었지만 나는 겁쟁이였고 쓸데없는 짓이라는 걸 머리로는 알고 있었기 때문에 할 수 없었다. 그때부터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작정하고 매일 마셨다. 마시고 나면 관광명소 가듯이 택시를 타고 그가 사는 아파트로 갔다. 편의점을 하나 끼고 있는 주변을 몇 바퀴 돌고 다시 집으로 가면 두 다리 뻗고 잠이 왔다. 그 짓을 3년 정도 했다. 그러다가 어느 새부터는 그의 집 근처에 가지 않아도 잠을 자게 되었다. 특별한 계기도 없었다. 갑자기 그렇게 되었다. 정신 차려보니 내 다이어리에 더는 그 이름이 없었고 술을 마시게 되어도 굳이 꺼내지 않게 되었다.     

 

지금은 결혼해서 아이를 키우고 있다. 아이를 키우는 것은 원래 잘못 했지만, 요즘에는 코로나 때문에 더 못하겠다. 머리를 감았는데도 우울한 걸 보면 말 다 했다. 그런데 며칠 전 어머님이 갑자기 와서는 집이 너무 더럽다고 했다. 원래부터 더러웠지만, 그날은 그 말을 듣는 게 억울했다. 모처럼 집을 깨끗이 치웠고 아이들이 금방 원래 대로 만들어 놓은 것이었다. 그래서 퇴근하고 남편이 오자 남편에게 “집이 더럽대요. 어머님이.”라고 하니 집이 더러운 건 사실인데 그걸 왜 기분 나빠하냐는 식으로 물어봤다. 그 말에 눈물이 나왔다. 남편은 반사적으로 나를 안았다.

 “내가 집이 깨끗하다는 게 아니라 흑흑……. 오늘 아침에도 청소했는데 흐흐 흑흑 갑자기 흐흐그엏머댇해대ㅓᅟ곡개”     

 울면서 계속 뭐라고 말하는 내가 웃겼는지 남편이 웃었고 나도 금방 따라 웃었다. 남편은 눈물을 닦아주며 우울할 땐 치킨이라며 치킨을 먹자고 했다. 배달 앱을 켜서 치킨을 고른 뒤 일시불을 체크하는 순간 역시 결제는 일시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나고 나서 보니 울지 못해 남은 응어리는 어떤 방식으로든 결제되었다. 이자까지 톡톡히 쳐서 그 눈물을 대체 몇 년을 갚은 걸까. 예전에는 걸핏하면 감정을 할부로 결제했지만, 이제는 일시불로 결제한다. 첫 이별에서 헤어지고 싶지 않다고 울고불고 매달렸더라면 어땠을까.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겠지만, 그 뒤 3년은 달라지지 않았을까. 감정에 솔직해지자 울보가 되었지만 울고 난 뒤에는 씩씩하게 앞으로 걸어갈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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