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삶이란 본인이 하는 일의 책임을 지고 할 수 있는 것과 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나름의 적정한 기준을 갖는 것이라 믿는다. 일은 자아실현에 꽤나 중요한 것이니까. 일을 건강하게만 할 수 있다면 자연스레 내 삶에 만족할 만한 행복감도 따라오는 게 아닐까.
일뿐만 아니라 관계도 그러하다. “오빠 나 오늘 달라진 거 없어?”라는 질문 앞에 남자인 나는 대답할 수 있는 지와 대답할 수 없는 지에 대한 판단을 빠르게 내려야 한다. 대답할 수 없다는 판단이 서게 되면 그 즉시 괜찮은 대안을 만들어 내야한다. 혹여 달라지지도 않은 앞머리 길이나 입술 색을 말했다가는 큰 화를 면치 못할 수 있기에.
당황하지 않는 눈빛. 떨리지 않는 입술. 평소처럼 편안히 들이쉬고 내쉬는 호흡. 의지적으로 나의 감각기관들을 최대한 제어한다. 그리고 다시 보아도 발견하지 못했다면 마지막 한 단계가 남았다. 가장 중요한 단계라 말할 수 있는 단계. 진실한 사과. 뭐 연애를 그렇게까지 해야 하냐 할 수 있는데 누군가 나에게 서운해할 수 있다는 마음은 돌이켜보니 꽤나 값진 마음이었다.
프리랜서로 살다 보니 일이 한 번에 몰릴 때가 있다. 동일한 날로 예식 촬영 문의가 3~4건씩 들어올 때면 그렇게 아쉬울 수가 없다. 나와 똑같이 촬영할 수 있는 사람이 한 명만 더 있었어도. 나와 같은 마음의 촬영자가 한 명만 더 있었어도. 이 일을 할 수 있었을 테니까. 혹여라도 이런 마음으로 촬영을 받게 되면 재앙이 시작된다.
우선 나와 비슷한 대체 감독을 구해야 할거고. 촬영 스타일을 맞춰야 할 것이고. 촬영 감독으로서 현장에서 지켜야 할 매너와 도리를 교육해야 할 것이다. 파일은 또 어떻게 받고 혹여나 확인했을 때 얘기했던 내용과 사뭇 다른 촬영본이라면. 어휴 생각만 해도 오싹.
그때부터 내 삶에 스트레스는 지속 상승할 것이다. 대부분의 촬영은 재촬영을 지양하기 때문에. 그리고 만약 그게 웨딩촬영이라면 더더욱 그러하다. 건강한 삶은 개뿔 그때부터 안 건강한 삶이 지속될 것이다.
어른이 되어간다는 건 내가 하겠다고 한 것의 책임을 져가는 것이라고 누가 그러던데 어른 되기 참 어렵다. 어쩌면 저녁 메뉴 하나 고르는 것에 어려움을 느끼는 것은 그마저도 선택해야 한다는 현실에 질렸다는 방증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