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에녹 Sep 30. 2023

손수건과 텀블러를 들고 다니기로 했습니다.

나름 환경을 위한 시도라고 해야 할까요. 타인을 관찰하기는 좋아하지만 그들의 인생에 관여할 만큼의 의지는 없는 제가 최근에 자연이란 것에는 관여하고 싶더랍니다. 왜 관여하고 싶었을까요. 망해가고 있는 지구에 깊은 연대감을 느껴서 일까요. 그렇다기보다는 2030년 이후로는 망가진 지구를 돌이킬 수 없다는데 어떤 노력도 하지 않는 제가 꼴 보기 싫더라고요. 그래서 손수건과 텀블러를 들고 다니기로 했어요.

 

손수건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가 저는 행커치프예요. 정장을 입은 영국 남자가 왼쪽 가슴에 요란하게 접어서 꽂아둔 모양새 말이에요. 그리고 죄송하게도 남자들이 괜히 여성들 앞에서 있어 보이려고 들고 다니는 허세 용품 정도로만 생각했습니다. 눈물 훔치는 짝사랑녀에게 넌지시 건네는 플러팅 용품. 뭐 이런 거랄까.

 

저는 평소 몸에 걸리적거리는 거를 선호하지 않는 사람이에요. 가방 들고 다니기를 꺼리고 주머니에 어떠한 것도 없으면 하는 사람. 에어팟을 끼는 날에는 케이스는 집에 두고 알맹이만 귀에 꽂은 채 집을 나갑니다. 지갑 또한 큰 물건으로 생각해 체크 카드 한 장만 들고나가요. 그런 제게 텀블러는 마치 등산 갈 때 끌고 가는 캐리어처럼 거추장스러운 물건이에요.

 

손수건도 기껏 들고 나왔으니 밖에서 휴지를 자제해야 하잖아요. 어휴 이것도 일이더랍니다. 카페를 가면 음료와 함께 주는 휴지 몇 장 있잖아요. 그걸 굳이 거절해야 해요. 또 한 번은 써브웨이에서 샌드위치를 먹다가 손에 소스가 묻은 거예요. 물티슈로 스윽 닦으면 될 것을 화장실로 가야 하는 번거로움. 이게 이게 은근히 귀찮단 말이죠.

 

그런 투정을 부리면서까지 해야 하냐 하시는 분들도 있으실 텐데. 사실 제 생각도 그래요. 굳이 이렇게까지 하면서 살아야 하나 싶은 거죠. 환경을 위한 희생을 기쁘게 받아들이지 못하겠더라고요. ‘나 하나쯤이야 뭐’하는 마음으로 삼십 년 가까이 살아왔으니 오죽하겠습니까. 솔직히 오늘 휴지 몇 장 아낄 바에야 책 출간을 안 하는 게 더 나을 수도 있잖아요. 엥?

 

앞서 말했던 것처럼 지구를 위한다는 명목을 자기 위안으로 삼는 걸로 시작했어요. 망해가는 지구 앞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내가 꼴 보기가 싫은 거. 뭐라도 해야겠으니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았던 거죠. 제 생활에 부담되지 않는 선에서 말이에요. 그 마음을 행동으로 옮겼으니 그래도 할 거 했다면서 자기만족하는 모양새가 꽤나 토 쏠립니다. 우웩.

 

근데 텀블러를 들고 다니니까 보이더랍니다. 꽤나 많은 사람이 텀블러를 들고 다녔다는 것을. 저도 그런 자극을 은연중에 받고 있었던 걸지도 모르겠어요. 그리고 어쩌면 텀블러는 지구를 보호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계속해서 외쳤던 무언의 메시지일 수도 있겠어요. 나 하나쯤이야라는 생각으로 방관하기보다 내가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자기 확신 말이에요. 또 모르죠 이 확신들이 삼삼오오 모여 정말 지구가 망하지 않을 수도 있을지.

 

ps. 생각해보니 망하는  지구가 아니라 우리아닌가.

작가의 이전글 칭찬이라는 벌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