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두 달 가까이 전시를 준비했다. 글을 쓰는 사람들과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이 협업하여 전시를 해보자해서 시작한 프로젝트. 나는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전시에 참여했다.
전시를 위해 내가 해야 하는 일 순위는 글을 쓰는 것. 전시를 하기 위해서는 내 이름으로 제작된 책 한 권이 필요했다. 그래서 나는 좀 더 많은 글이 필요했다. 그 당시 글을 쓰는 일은 내게 재밌는 일 중 하나였기에 원고를 채우지 못할 거란 걱정은 되지 않았다. 그렇게 모든 글이 채워졌다. 그리고 모든 원고에 쓰인 단어의 개수를 세어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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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랜서여서 그런가. 나는 평소에 사람들과 대화를 잘 하지 않는다. 대부분 온라인상에서 텍스트로 업무 관련 내용이 오간다. 친구들도 자주 만나지 않다 보니 집에서 가족들과 대화하는 게 전부. 죄송하게도 집에서 살가운 아들은 아니기에 내 입을 놀릴 일은 크게 없다. 하루에 백 단어쯤 말하려나. 이런 내게 글쓰기는 말보다 많이 하는 소통 중의 하나이다.
인생 처음으로 전시라는 걸 하다 보니 사람들에게 알렸다. 알리는 것도 일이더라. 결혼하면 청첩장 보내는 일이 꽤나 어렵다는 커플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그 말에 백번 공감이 갔다. 내가 하는 전시에 가까운 거리도 아니다 보니 와 달라는 게 참 미안한 마음이었다. 그래서 몇몇 사람을 제외하고는 내 SNS에 전시 소식을 알렸다.
감사하게도 많은 사람의 축하를 받았고 응원의 메시지도 받았다. 책의 내용을 궁금해하시는 분들도 계셔서 신나게 말씀드렸다. 책이 나온다고 하니 이제 정식 작가가 된 것이냐고 사람들이 묻는다. 그런 거 아니라며 손사래를 치지만 내 안에 이상한 마음이 꿈틀거린 듯했다.
전시를 시작하니 정신없이 한 주가 흘러갔다. 전시하는 기간 절반 가까이 전시장에 상주했다. 그 기간 지인들께서 직접 방문해 내 책을 사 가기도 했다. 한 번은 처음 본 사람이 내 책을 구매하며 내게 사인을 요청한 순간이 있었다. 사인은 은행이나 식당에서나 해봤지 내 책에 사인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준비한 사인은 없어서 은행 서류에 하는 사인을 해드렸다. 행복하라는 문구와 함께.
한 분은 내게 DM을 보내셨다. 책에 내 SNS 계정을 적어뒀었는데 그 계정으로 연락을 주신 거였다. 공감되는 문구의 사진을 찍어 보내주시면서 말이다. 작가님이라는 호칭으로 나를 불러주시는 그의 말에 꽤나 어색했다. 나를 부르는 거 같지 않다고 해야 하나. 분명 나를 부르는 걸 텐데 내가 대답하면 안 될 것만 같은 기분.
그렇게 하루하루 나는 작가라는 호칭에 점점 익숙해졌다.
전시의 모든 일정이 끝이 났고 일상이 다시 시작되었다. 전시 때 입으려고 구매했던 옷은 옷장 한편으로 밀려났다. 일상에서 즐겨 입었던 옷을 다시금 꺼내 입기 시작했다. 꿈만 같은 시간. 잠시 다른 사람으로 살았던 것 같은 순간.
일상 속에서 계속해 왔던 글을 쓰기 위해 노트북 앞에 앉았다. 글은 여전히 잘 쓰이지 않았다. 그리고 전과 다른 마음이 들어와 있음이 느껴졌다. 무엇을 이야기해야 할지에 대한 마음보다는 이상한 고민 말이다.
‘어떻게 하면 내 글이 더 멋있어 보일까’
순간 당황했다. 이야기 속 메시지에 초점을 두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멋있고 더 잘 난 글이 될까에 대해 고민하는 것이었다.
내가 스스로 경계하는 것 중 하나는 칭찬이다. 칭찬을 들으면 자꾸만 안주하고 싶은 버릇이 있기에. 더 잘할 수 있는 일에도 ‘이만하면 됐지’하는 마음으로 자꾸만 놓아 버린다. 전시하는 동안 주변에서 해주신 칭찬들과 작가라는 타이틀에 나는 꽤나 취해있었다.
작가이기에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글을 쓰기에 작가인 것인데. 다시 한번 글을 쓰는 일에 마음을 다잡기로 했다. 그리고 멋있는 글을 쓰려고 하기보다는 마음이 담긴 글을 써야겠다며 스스로 한 번 더 되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