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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에녹 Aug 17. 2023

프리랜서는 행복하고 또 불안합니다

컴퓨터를 통해 일하는 프리랜서의 장점 중 하나라면 노트북 한 대만 있으면 어디든 작업공간이 될 수 있다는 것. 나는 영상을 만드는 사람이니 사양만 괜찮은 노트북이라면 집 앞 정자가 내 작업실이 되기도 하고, 근처 공원이 내 작업실이 되기도 한다. 때로는 날씨가 좋은 날에는 한강에 돗자리 펴놓고 그곳에서 작업을 할 때도 있다. 노을을 맞으면서 말이지.​


내가 가장 애정하는 작업실 중 하나는 카페이다. 수시로 생기고 있는 카페에 친구를 만난다는 명목으로 간다고 하면 어느 세월에 다 갈 수 있을까. 나는 매일 일하는 사람이니 카페 탐방도 할 겸 오늘의 작업실을 물색한다. -리단길. 내가 사는 동네에도 평리단길이라는 골목이 있다. 이름에 걸맞게 카페들도 줄지어 들어오니 카페를 자주 애용하는 나에게는 반가운 소식이다.

오늘의 작업실은 1층 창문이 열려 바깥과 카페 안의 경계가 없다 할 수 있는 작은 카페. 카페 주변은 실제 사람들이 거주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택배 전하러 온 택배 아저씨. 강아지를 산책시켜 주기 위해 나온 할머니. 기술의 발전으로 요구르트 차를 손쉽게 밀고 다니는 아주머니까지. 가끔 두 볼에 스치듯 불어오는 바람은 이 카페를 더 찾아오고 싶게 만드는 친절한 알바생과도 같다.


​그렇게 세 시간 정도를 작업하다 정신을 차려보니 그동안 카페에 들어온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그리고 내 주변에서 나와 비슷한 또래가 지나가는 모습도 볼 수 없었다. '이 좋은 카페를 혼자 독차지할 수 있다니'하는 생각도 잠시 내가 하는 일에 묘한 불안감이 찾아온다.


​본격적으로 프리랜서의 일을 시작한 지 2년 정도의 시간이 흘렀다. 처음에는 남들이 하지 않는 일을 한다는 것에 짜릿함을 느꼈다. 출퇴근 지옥철을 이제는 경험하지 않아도 된다는 기쁨. 직장 상사의 얄궂은 장난에 이제는 맞추지 않아도 된다는 해방감. 내가 원하는 것들을 원하는 시간에 할 수 있다는 자유. 이제 어떠한 방해 없이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펼치며 살겠다는 마음으로 시작한 프리랜서 생활은 묘한 중독처럼 시작됐다.


​처음은 남들이 하지 못하는 걸 한다는 게 기쁘기만 했지만 이제는 조금 무섭기도 하다. 사람들이 가지 않으려 하는 길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지 않을까. 가지 못하는 게 아니라 가지 않는 거라고. 그 길을 너는 구태여 선택해서 가는 거라고 하는 마음의 소리가 나를 쿡쿡 찌른다. 나와 비슷한 삶을 사는 또래가 하나라도 있다면 그와 이런저런 얘기도 해보며 다른 방법들도 생각해 볼 텐데. 하지만 나를 불안하게 만드는 건 언제나 나였듯 나를 달래는 일도 매번 나였다.


​프리랜서는 일을 잘 해내야 한다는 마음보다 나와 잘 지내야 하는 마음이 더 중요한 듯하다. 내게 영향을 주는 사람이라곤 나밖에 없으니 나와의 사이가 좋지 않게 되면 내가 하는 일에도, 시간을 관리하는 일에도, 내가 꿈꿔온 많은 일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준다. 오늘 찾아온 이 짧고 연약한 불안은 오늘만 찾아오지 않더라. 이 생활이 너무 행복할 때도 불현듯 찾아오기도 하고 친구와 평소처럼 고민거리를 나눌 때도 찾아온다. 그럴 때마다 나와 합심하여 그 불안을 쫓아내지 않으면 그것들이 나를 조금씩 갉아 먹는다.


​비스와바 심보르스카의 여인의 초상에서는 이런 문장이 나온다.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게 하기 위해 변해야 한다. 이것은 쉽고, 불가능하고, 어렵고, 해볼 만하다.' 나는 지금의 생활에 꽤나 만족하고 살고 있기에 이 생활이 변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일을 잘 해내야 함은 물론이고, 나와도 잘 지내야 함도 물론이다. 이 두 가지를 잘 해내려 무단히 애쓰고 있는 요즘이다. 특별히 꾸준함의 덕목은 게으른 완벽주의자인 나에게 힘들고도 벅찬 말이란 말이지. 그렇기에 내가 변해야 하는 모습 중 하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이런 모습으로 말이다.


​게으르지만 꾸준한 완벽주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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