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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에녹 Aug 16. 2023

의미 없는 시간은 없다

나는 글을 쓴다. 목표하기로는 일주일에 에세이 세 편. 본업은 영상감독 일을 하고 있기에 이 세 편은 쉽지 않은 숙제이다. 글이 완성되면 블로그와 브런치에 올린다. 세상에 공개하지 않으면 성장하기가 쉽지 않다고 생각하기에.

 

그렇다고 사람들이 내 글에 열렬히 반응해 주지는 않는다. 읽지 않으시는 분들이 대부분이겠지만 감사하게도 조용히 읽어 주시는 분들이 계신다. 애초에 나는 책 한 권을 내고 싶어 쓴 글이기에 사람들의 인정을 바라지는 않는다. 하지만 정성껏 달아주신 댓글에는 남몰래 히죽거리며 좋아함.

 

그런 나에게도 글을 쓸 때 어려운 점이 있다면 깜빡이는 커서를 보는 것. 어떤 철자를 눌러야 할지. 어떤 이야기를 말해야 할지는 늘 어렵다. 글이 쉼 없이 써질 때 커서는 깜빡거리지 않는다. 커서가 깜빡거린다는 건 문장이 멈췄다는 것.

 

그런 의미로 이 글은 네 시간 동안 깜빡이는 커서만 들여다본 이야기다.

 

오랜만에 글을 쓰러 카페에 왔다. 나를 환기하기 위해 매일 작업하는 공간에서 종종 벗어난다. 어느 날은 공원 벤치가 되기도 하고 어느 날은 집 앞 정자가 되기도 한다. 이 날은 특별히 카페에 온 이유가 있다. 돈을 쓰면 그래도 앉은 자리에서 글을 한 편 써야 한다는 책임감이 생기기 때문.

 

그래서였을까. 글을 꼭 써야겠다는 책임감이 큰 부담으로 다가왔다. 깜빡깜빡. 커서가 내게 말을 건다. 뭐라도 써보라고. 본인은 달릴 준비가 됐다는 듯 자꾸 나를 재촉한다. 나라고 쓰고 싶지 않을까.

 

한 문단을 써본다. 지운다. 한 문장을 써본다. 지운다. 한 단어를 써본다. 지운다. 한 음절. 한 초성. 그러다 배고프다는 말을 쓰고 쓴웃음을 지으며 지워낸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니 머리가 아파진다. 맞은 편 사람의 행동을 하나씩 적어보기도 한다. 커피잔을 든다느니. 핸드폰을 쓴다느니. 나를 힐끔 보는 것 같다느니.

 

세상 모든 것들은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는 나름 글쓰기 신념이 깨지는 것인가. 세상을 아무리 둘러봐도 보이지 않는 이야기들. 그런 내 신경을 묘하게 긁으며 깜빡거리는 커서. 재수 없어.

 

커피는 바닥을 보이기 시작했고 창밖으로 노을이 지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배에서 울리는 저녁 알람. 꼬르륵. 시간은 어느새 네 시간 정도가 흘러가 있었다. 나는 숨을 천천히 내쉬며 노트북을 덮었다.

 

다음 날이 됐다. 글을 써야 했다. 어제의 트라우마가 떠올랐다. 순간 카페에서의 일상이 글이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카페에서의 네 시간이 내게 어떤 의미였을까를 돌아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마냥 의미 없이 보낸 시간 같았다. 시간은 시간대로 쏟았는데 정작 나온 결과물은 아무것도 없으니까. 그 시간이면 영화를 볼 수 있고 친구를 만나기에도 충분한 시간이다. 그리고 일을 했다면 돈을 벌 수도 있는 시간이겠지.

 

그런 아쉬운 마음이었지만 생각해 보니 나는 네 시간 동안 끈질기게 뭔가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돈이 벌리는 것도 사람들이 알아주는 것도 아닌데도 말이다. 목표한 것을 위해 내 자리에서 꾸준히 할 수 있는 사람. 실패할 수는 있어도 포기하지 않는 사람. 올해 목표했던 ‘무엇을 하든 꾸준하게 하자’를 몸소 실천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어제의 일상은 한 편의 글이 되어 이렇게 세상에 등장했다. 노트북 앞에서 머리를 쥐어뜯던 나는 알지 못했다. 그 시간이 다음 날 내게 어떤 영향을 끼칠지.

 

생각해 보니 세상 모든 것들은 이야기를 가지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나름의 의미를 발견해 가는 것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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