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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에녹 Aug 14. 2023

멀리가고 싶은 나를 위해

얼마 전 얼굴에 자리 잡은 여드름을 짰다. 나만 느끼는 건지는 몰라도 여드름을 짤 때 묘한 쾌감이 있다. 전 여자친구는 내 얼굴의 블랙헤드를 손수 빼주었다. 표정을 찡그리며 주먹을 불끈 쥐고 있을 때 나는 보았다. 내 콧잔등에 있는 까만 머리들을 없애고야 말겠다는 그녀의 집념 가득한 표정을.

 

그리고 상처 난 자국에 작은 패치를 붙인다. 패치를 붙였는데도 얼굴에 작게나마 흉이 질 때면 신경이 많이 쓰인다. 신기하게도 그럴 때면 SNS에서 내게 알맞은 제품을 광고한다. 검색 하나 없이 생각만 했는데도 말이다.

 

그렇게 나는 광고에 이끌려 흉터치료제를 구입했다. 이주정도 지나면 효과를 볼 거라는 광고는 허위광고였다. 왜 유독 나한테만 그 광고가 해당하지 않을까. 하는 한탄을 하면서 푸욱하니 한숨을 내쉰다.

 

그럼에도 포기할 수는 없다. 사주차가 되면 기가 막힌 변화가 있을지 누가 아는가. 그래서 상품 리뷰 칸에 비포 에프터 사진을 올리며 별점 다섯 개를 남기는 날이 올지 어찌 알겠는가. 사주차에도 효과 없으면 오주차. 그마저도 효과 없으면 두 달. 그렇게 발라보는 거다. ‘운명은 내가 만드는 거야’라는 어느 드라마 대사의 말을 믿어 보기라도 하듯.

 

나는 이런 포기하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운동도 하고 있다. 현재 운동을 시작한 지는 6개월. 주 6일 정도 헬스장에 나가 한 시간 정도 운동을 한다. 프리랜서의 장점을 말하자면 내가 원하는 시간에 운동할 수 있다는 것 정도. 헬스장을 다양한 시간에 다녀본 결과 저녁 시간은 사람들이 많아 피한다. 아침 시간 또한 은근히 사람들이 많다. 점심 먹기 직전. 그 애매한 시간. 나는 그때 운동하러 간다.

 

일주일에 여섯 번씩이나 운동하면 꽤나 많이 운동하는 편 아닌가. 살면서 이렇게 자주 운동을 해본 적이 없다. 그 덕분에 몸의 변화는 조금씩 생기고 있다. 처음 3개월 동안은 말이다. 하지 않던 운동을 하니 변화가 바로바로 보였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몸의 정체기가 시작됐다.

 

운동해도 변하지 않는 몸. 정녕 내 한계는 여기까지란 말인가. 변화가 즉각적으로 눈에 보이지 않으니 운동하러 가는 길이 귀찮았다. 여기에 만족할까 하는 생각도 했다. 남들이 보기에 적당히 마르고 적당히 근육 있는 정도였으니. 내 눈에는 말이다.

 

그러던 중 한 트레이너분께서 보통 삼 개월에서 육 개월 사이에 많이들 그만둔다고 하신다. 매일 그대로인 것 같다는 나랑 똑같은 이유때문에. 그러면서 삼 개월까지는 근육이 잘 붙지만 그 이후부터는 육 개월이 되는 시점까지 정체된다고 하신다. 사람들은 그 삼 개월을 힘들어하는 거란다. 그 말을 들으니 이제까지 한 게 아까워서 포기할 수 없었다.

 

정말 운동한 지 육 개월이 되는 요즘. 근육이 붙는 게 느껴진다. 조금씩 몸에 굴곡이 생긴다고 해야 하나. 그래서 운동이 다시 신나기 시작했다. 아침에 일어나 가볍게 밥 한 끼를 먹고 헬스장으로 간다. 누가 봐도 대단한 몸은 아니다. 그냥 주변에서 쿡쿡 찔러보는 정도. 그럼 나는 괜히 팔에 힘을 준다. 무심하게 말이다.

 

“빨리 가고 싶다면 돈을 쓰고 멀리 가고 싶다면 꾸준해야 한다.”

 

어렸을 적 할머니가 내게 해주신 말씀이다. 일평생 농사만 해오신 농부의 말씀이라 그런지 조금은 그 말에 무게가 실린 듯하다. 그때에는 하나도 이해되지 않았던 말들이 세월이 흐르면서 조금씩 이해되는 말들 있지 않나. 내게는 할머니가 해주신 말씀이 그러하다.

 

포기하지 않는다는 건 어찌 보면 꾸준한 것과 별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마음이 평생 농사만 하신 할머니의 꾸준함과도 맞물리는 일 아닐까. 한 가지 더 바라기는 농작물들을 이웃과 나누셨던 할머니처럼 내가 얻은 것들 또한 나눌 수 있는 사람이 되면 참 좋겠다.

 

마음 한편으로는 빨리 가고 싶은 마음이 왜 없겠는가. 하지만 나는 그리 돈이 넉넉지 않은 사람이니 꾸준함으로 승부를 봐야지. 여드름 흉터 치료제를 포기하지 않고 바르는 일처럼. 그리고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헬스장에 나가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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