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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에녹 Aug 11. 2023

나만 알아도 되는 노력

나는 복도식 아파트에 살고 있다. 한 층에 열아홉 세대 정도 살고 있는 크지도 작지도 않은 아파트. 이곳에서 나는 삼십 년 가까이 살고 있다. 어렸을 때는 이 복도에서 이웃들과 고기도 구워 먹고 옆집 동생과 딱지도 치기도 하며 시간을 보냈던 곳이기도 하다.

 

내 방은 복도를 향해 창문이 있다. 그리고 책상은 창문 밑에 있다. 작업을 할 때면 창문을 마주 보고 작업을 해야 한다. 사람이 지나가기라도 하면 이 창문을 통해 실루엣이 보인다. 영상 프리랜서인 나는 온종일 집에서 작업을 해야 할 때가 많다. 그래서 본의 아니게 이웃들이 언제 들어오고 언제 나가는지를 대략 알게 됐다.

 

한겨울에는 외풍이 들어오는 게 싫어서 문을 꼭꼭 닫아놓는다. 하지만 한 여름인 지금 문을 열어 둘 수밖에 없다. 우리 집에는 그 흔한 에어컨 한 대가 없으므로 선풍기에만 의존해 이 여름을 나야만 한다. 그러니 한 번씩 바깥에서 들어오는 바람이 그렇게나 반갑다.

 

안에서 밖이 보인다면 밖에서도 안이 보인다는 말. 창문을 열어야 하는 상황이지만 그렇다고 내 방이 적나라하게 보이는 거는 싫다.

 

나는 스스로 타협해야만 했다. 창문을 어느 정도 열 것인지. 너무 확 열면 내 방이 모조리 다 보인다. 자기 방은 꽤나 비밀스러운 공간 아닌가. 들키기 싫은 부분들이 있는 곳. 마냥 깨끗하지만은 않은 곳. 아무한테나 허락하지 않는 곳. 나에게 내 방은 그런 곳이다.

 

그렇다고 조금만 열면 바람이 약하게 들어오니 창문을 반만 열어 보자. 그리고 복도로 나가 실제 이웃인 양 지나가 보자. 살짝 흘겨만 봤는데 내 방이 꽤나 보인다. 다시 방으로 들어온다. 그리고 창문을 반의반만 연다. 그리고 다시 이웃 행세를 한다.

 

바람이 방 안으로 어느 정도 들어오고 내 방이 어느 정도 보여도 되는 딱 적당한 지점. 그 지점까지 나는 창문을 열어 둔다. 외풍이 들어오는 것을 포기할 수는 없으니 내 공간을 조금은 보이기로 한 것이다. 작업이 늦게 끝나 새벽이 되기라도 하면 아무도 지나가지 않기에 이때는 문을 활짝 열어 놓는다. 나름의 해방감이라고 해야 할까. 새벽의 바깥 공기는 아침만큼 뜨겁지 않아서 시원하기만 하다.

 

만족스러운 마음으로 창문을 보고 있자니 나는 사람을 대할 때에도 이 같은 습관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나의 비밀스러운 부분은 적당히 가리면서 나를 환기시킬 정도의 문만 여는 습관. 누군가 나의 부족하고 연약한 모습을 아는 게 나는 참 부담스러웠나 보다. 그 모습을 보게 되면 나를 떠날 거라고 생각했나. 마냥 꼭꼭 숨기기는 참 어려운 일이니 아무도 볼 수 없을 때는 문을 활짝 열어 놓는다. 그리고 묘한 해방감에 시원한 마음을 느낀다.

 

하지만 진정한 해방감은 내 부끄러운 부분도 보여줄 수 있을 때 온다고 믿는다. 가령 어렸을 적 피시방에 가고 싶어 어머니 지갑에 손을 댄 적이 있었다. 걸리지는 않았지만 속이 며칠간 마음이 불편했다. 엄마에게 찾아가 내 잘못을 말하고 용서를 구했다. 물론 혼이 나긴 했지만 마음속 불편한 덩어리는 그날 이후로 사라져 버렸다.

 

나는 이것이 진정한 해방감이라 생각한다. 부끄러운 부분을 직접 마주하고 누군가에게 솔직히 털어놓을 수 있는 것. 어렸을 적에 그 덩어리를 해결하지 못했더라면 어쩌면 지금의 나도 해결하지 못했을 수도 있겠다.

 

조금은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나는 방을 조금씩 정리하기로 했다. 그리고 창문을 조금씩 열어보기로 했다. 부끄러운 부분을 감추려 창문을 아주 조금 열기보다는 그 부분들을 없애려는 노력.

 

어쩌면 아무도 내 방을 신경 쓰지 않을 수 있지만 방을 정리하고 깔끔히 하는 일은 내가 아는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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