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근이세요?”
우리 엄마는 프로 당근러다. 당근 온도 57.6도. 거래 횟수만 174번. 100퍼센트의 재거래 희망률을 자랑하는 최여사. 엄마와 거래한 이들은 하나같이 좋은 평을 남긴다. 장사만 20년 가까이 해오셨으니 친절은 몸에 배 있기 마련. 그 친절이 중고 물품을 거래할 때도 티가 나나 보다.
얼마 전에 엄마는 다니던 직장에서 퇴사했다. 잠시 쉼이 필요하기도 했고 업장과 여러 문제가 있어서 서로 갈라서기로 한 것. 20년 가까이 일만 하셨으니 엄마의 쉼을 열심히 응원하는 중이다. 그 덕분에 프리랜서인 나와 집에 같이 있는 시간이 늘어났다.
직장을 다닐 때도 활동했던 그녀의 당근 사랑은 퇴사를 하니 더욱 물올랐다. 처음에는 물건만 대충 찍어서 올렸다. 이제는 하얀 배경지를 두고 원하는 구도가 나올 때까지 물건을 이리저리 돌려본다. 마음에 드는 구도가 나오면 숨을 한 번 참고 카메라 버튼을 누른다. 찰칵. 옆에서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참 귀엽단 말이지.
이 동네 거래 왕에 걸맞게 물건을 올리면 사람들의 반응이 꽤나 핫하다. 한동안은 알람 소리에 신경이 쓰이기도 한다. 인기 있는 물건은 올린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판매되고 구매자는 집 앞으로 찾아온다. 그러면 엄마는 간식 몇 개를 들고 나갔다가 빈손으로 들어온다.
엄마 대신에 내가 거래할 때가 있다. 갑작스러운 일정으로 부득이하게 엄마가 나가지 못할 경우 내게 부탁한다.
“아들 신발장 앞에 물건 놔뒀어. 그분이랑 네 시에 집 앞에서 만나기로 했어”
여성분이신지. 나이는 어떻게 되시는지. 돈은 받아야 하는 건지. 어떠한 정보도 없이 나는 물건을 들고 무작정 집 앞으로 나선다. 그렇게 나는 집 앞에서 소리 없는 눈치 싸움을 시작한다.
중고 거래를 하러 온 사람들은 딱 봐도 티가 난다. 동네 주민이라면 절대 하지 않을 행동 하나는 두리번거린다는 것. 이곳이 맞는 곳인지 아닌지 핸드폰을 보며 고개를 갸우뚱하신다는 것. 그렇게 내 데이터베이스에 근거한 표적 대상이 발견되면 천천히 다가가 비밀스럽게 물어본다.
“당근이세요?”
이제껏 내 예감은 실패한 적이 없다. 집에서부터 들고 온 물건을 드리고 돈을 받는다. 약간의 사담도 나눈 뒤 인사를 드린다. 대개 최여사와 동년배들의 어머니들이 나오셔서 나를 아들같이 생각하신다. 쇼핑백 안에는 엄마가 넣어둔 소정의 간식도 들어있어서 물건을 받으시고는 행복한 표정을 지으신다.
그 표정을 보면 왠지 나도 모르게 기분이 좋아진다.
나중에 엄마에게 물어봤다.
“간식은 왜 같이 드리는 거야?”
“와 주시는 게 감사하잖아”
“무료로 나눌 때도 드리잖아”
“그럼 엄마가 더 행복해지니까”
짧게 오간 대화 속에서 머리를 쿵 하니 맞은 것만 같았다. 나눔만으로 행복한 마음이 드는 데 거기에 간식까지 전하니 더 행복하다는 마음. 물론 이곳까지 와 주신 것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드린 것도 있겠다. 하지만 더욱 큰 의미는 엄마 자신의 행복을 위해 드린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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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에녹의 브런치스토리
프리랜서 | 일기를 쓰다보니 여기까지 왔습니다. 일기속 얘기들을 조금씩 꺼내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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