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돈의 시작
LL.M.을 올 때부터 바 시험을 보겠다고 결정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바 시험은 보지 않겠다고 마음 먹고 유학을 왔다. 이유는, (1) 더 이상 고시공부는 하기 싫어서, (2) 뉴욕 바 시험을 보려면 학교에서 필수과목을 몇 개 이상 들어야 하는데, 그 밖에 재밌어 보이는 과목이 너무 많아서 내 학점을 필수과목에 낭비하고 싶지 않아서, (3) 목표의식이 없어서였다. 1년 동안 학교 다니다가, 바 시험을 봐야겠다 싶어지면 캘리포니아 바를 보면되지, 하는 마음이었다.
캘바 (캘리포니아 바)는 LL.M.을 안가더라도, LL.M.에서 필수과목을 안듣더라도 자국에서 법조인이거나 법대를 나오면 누구나 볼 수 있다.
뉴욕 바는 LL.M.들이 가장 흔하게 보는 시험이다. 유럽에서는 뉴욕 바를 가장 선호하기도 하고, 비미국인으로서는 맨하탄에 취직 기회가 상대적으로 많기 때문이다. 캘리포니아에도 외국인 변호사 수요가 많기는 하지만, 사람들이 캘바는 잘 안본다. 캘바는 합격률이 25% 정도로 무시무시하게 낮기 때문이다. 뉴욕 바 합격률이 70% 정도인 걸 생각하면, 같은 시간 동안 공부하는 거 이왕이면 안전하게 붙자는 마음이 다들 있는 것 같다.
캘바 합격률이 낮은 이유는, (1) 일단 공부할 과목이 더 많고, (2) 캘리포니아 주법이 연방법과 다른 점이 많아서 둘다 공부하기가 헛갈리고, (3) 캘리포니아에 로스쿨 인가를 받지 못한 법대가 많은데 여기 졸업생들이 대거 캘바를 봐서, (4) LL.M.을 나오지 않아도 시험을 볼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지원자 수 자체가 많아서,이다.
어쨌거나 나는 LL.M. 1학기를 마쳤을 때 주변의 권고로 뉴욕 바 시험을 보기로 결정했다. LL.M.은 뉴욕 바 시험을 볼 수 있게 해주는 평생 한 번 있는 기회인데, 나중에 후회하느니 지금 그냥 봐두라고들 했다. 일리가 있었다. 그래서 그때부터 뉴욕 바에 필요한 필수과목을 듣기 시작했다.
원래 뉴욕 바든 캘바든, 7월 말일에 이틀동안 시험을 본다. 하지만 2020년에는 유례없이 판데믹 때문에 시험일자를 무기한 연기함 → 뉴욕 바는 뉴욕 주 내 로스쿨생을 우선적으로 시험장에 들여보내주겠다고 함 → 전국 로스쿨 학장들이 들고 일어남 → 뉴욕 바는 미안하다면서 너네는 내년에 시험 보라고 함 → 7월 달에 원래대로 시험을 강행한 주에서 확진자 속출 → 무서워진 캘바와 뉴욕 바 모두 9월 초로 시험을 옮김 (아직도 온라인으로 전환은 안한 상태) → 뉴욕이 이제 와서 타주 학생도 받아주겠다고 함 → 캘바가 온라인으로 전환 → 뉴욕 바도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온라인으로 전환 → 캘바와 뉴욕 바 모두 10월 5일로 일자를 확정함.
이런 카오스 속에서 학생들은 바 공부는 언제 시작해야 할지, 미국을 뜨고 본국으로 돌아갈지, 뉴욕 바를 포기하고 다른 주 시험으로 빨리 갈아탈지, 내년 2월에 시험을 볼지 모두들 혼란스러워했다.
특히 온라인 전환이 확정되기 전에는 LL.M.들은 본국으로 가지도 못하고 (뉴욕 주가 이제라도 타주 학생을 받아준다면 뉴욕 주 안에서 시험을 봐야 하므로), 그렇다고 시험 공부를 시작하지도 못하고 (아예 올해 뉴욕 바를 못 볼 수도 있으므로) 계속 미국 땅에 살면서 이제나 저제나 뉴욕 바 소식만을 기다렸다.
어떤 LL.M들은 올해 안에 뉴욕 바를 보는 것은 글렀다고 생각하고, 아예 뉴욕 바에 시험원서조차 넣지 않고 있다가, 8월이 다 되어서야 뉴욕 주가 '이젠 타주 학생도 받아줄게' 할 때 타이밍을 놓쳐서, 아예 10월 시험도 못 보게 되기도 했다.
나도 이런 불확실성이 너무 싫었다. 그래서 일단 원서를 내기만 하면 시험 응시는 하게 해주는 캘바에 원서를 넣었다. 언제 보든, 온라인으로 보든 오프라인으로 보든 올해 안에 시험 보게는 해주겠지. 그러고는 6/1부터 시험공부를 시작했다.
그때만 해도 3개월만 공부하면 될 줄 알았다.
≪2020 코로나 시대의 바 시험(2) - 시간관리≫ https://brunch.co.kr/@kr-uslawyer/13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