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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HSN 변 호 사 님 Nov 16. 2020

로펌에서 운전기사는 무슨 일을 할까?

여느 기업 조직이 인사팀, 총무팀, 기획팀 ... 이렇게 나누어져 있는 것처럼, 로펌에도 인사팀, 총무팀, 대외팀... 과 같은 여러 부서가 있다. 그 중 하나가 운전기사들로 구성된 팀이다.   


이런 식으로.


기사님들이 하는 일


변호사들은 재판도 가야 하고 외부 회의에도 가야 한다. 가뜩이나 문서와 노트북을 들고 다니느라 짐도 많은데, 그때마다 버스나 택시를 탄다면 너무 불편할 것이다. 그래서 로펌에는 회사 소속 차량과 기사님들이 있다. 변호사들을 법정이나 회의장소에 데려다 주는 것이다.  


변호사와 운전기사님의 협업은 이런 식으로 이루어진다:  

    각 변호사의 비서는 미리 변호사의 일정을 체크해서 운전팀에게 알려준다.  


    그러면 운전팀은 운용가능한 운전기사와 차량의 스케줄을 보고서, 시간표를 짠다. 2020년 10월 15일 3시 재판에는 뫄뫄 운전기사님이 차량번호 0000를 몰고 뫄뫄 변호사를 서울중앙지방법원에 데려다주고 데려 온다, 하는 식으로.   


    그 시간표대로 해당 변호사들에게 운전기사와 차량을 붙여준다.   


    그럼 비서는 해당 변호사에게 몇 시 몇 분까지 주차장 앞으로 나와서 차량번호 0000를 찾으라고 전한다.   


    변호사는 시간에 맞춰 주차장으로 나가서 차를 탄다.   


영화 「링컨 차를 타는 변호사」의 한 장면. 이런 상황 되게 많다.

  

기사님들은 변호사만 싣고 다니는 게 아니다. 스태프도 싣는다. 웬만한 소송은 다 전자소송으로 전환돼서 더 이상 우편으로 문서를 접수한다거나, 급한 경우 사람이 직접 가서 접수하는 일은 없어졌다. 하지만 아직 형사소송은 전자소송 체계가 아니라서, 우편이나 인편으로 직접 문서를 접수해야 한다. 만약 로펌은 서울에 있는데 청주지방법원 형사사건에 급히 뭔가를 제출해야 한다면, 스태프가 직접 청주로 문서를 들고 가서 제출해야 한다. 그럴 때 기사님들이 스태프를 태우고 청주까지 가는 것이다.


기사들의 프로페셔널리티


내가 겪은 기사님들은 다 프로였다. 새벽같이 지방에 가느라 그 이른 아침에 출장을 떠나도, 하나도 흐트러지지 않은 모습으로 약속시간 20분 전에 이미 주차장에 와 계신다. 항상 양복 차림에, 멀끔한 모습이다. 기사들 말씀을 들어보면 9시에는 취침하신다고 한다. 그 다음날 새벽같이 운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잘 생기고 키 크신 분도 많다.   


모자에 장갑은 오바지만, 딱 이런 느낌!


운전도 잘 하신다. 한번도 운전 덜컹거리거나 길을 못 찾거나 하는 걸 본 적이 없다. 가장 빠른 길, 가장 안막히는 길, 법원의 동서남북문 중에 어느 문이 가장 법정과 가까운지 파악해서 그 문에 내려주신다. 먼 길 갈 때에는 정체 상황 파악하면서 사고 지점 피해서 항상 시간에 맞춰주신다. 시간 약속을 어기는 건 항상 변호사인 편... 


기사들도 여느 팀처럼, 과장, 대리, 사원과 같은 직급이 있다. 신입 기사들을 뽑을 때 과장님이 조수석에 앉아서 도로주행 테스트를 한다고 한다. 그때 얼마나 스무스하게 운전을 하는지, 길은 잘 찾는지를 본다고 한다. 가끔 과장님이 운전하시는 차를 탄 적도 있었는데, 사원급과의 실력 차이는 느끼지 못했다, 워낙 다들 운전을 잘 하셔서...   


기사님들은 다들 정말 베스트 드라이버이다.

 

변호사들이 모범택시보다 회사 차량을 훨씬 선호하는 이유가 바로 기사님들이 프로이기 때문이다. 택시기사들보다 훨씬 운전도 잘 하고 딱딱 대기하고 있어서 시간낭비도 안할 뿐 아니라, 회사에서 목적지까지 이르는 길을 수십 수백번 운행해온 경험으로 인해 가장 빠르게 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타 사유로, 한겨울 코트 같이 법정 안에서는 거추장스러운 물품을 차에 두고 내릴 수 있어서, 차 안에서 맘 놓고 잘 수 있어서, 택시기사가 자꾸 말 시키지 않아서 등등이 있다) 


기사님과 변호사의 관계


변호사도, 기사들도 사람인지라, 변호사들 사이에 인기 있는 변호사는 기사들에게도 인기 있고, 변호사들 사이에 인기 없는 변호사는 기사들에게도 인기가 없다. 기사님을 배려하고 조심스러워 하는 사람은 기사님들이 잘 기억하고 반겨 한다. (양세형이나 유재석 같이 인품이 있는 개그맨이 롱런하는 걸 봐도 세상사 다 똑같은 것 같다.)  


1. 기사들은 복귀시각을 알려주는 변호사를 좋아한다.


예를 들어 재판이 11시다. 재판이 10분 만에 끝난다면 변호사가 바로 회사로 복귀할 테니, 기사들로서도 법원 근처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바로 회사로 들어가 점심을 먹으면 된다. 하지만 재판이 40분 후에 끝난다면, 변호사는 참석한 의뢰인과 바로 점심 먹으러 갈 수도 있고 법원 근처에서 일하는 친구 변호사와 만나 점심을 먹으러 갈 가능성도 있다.


편도가 아니라 왕복 차량이라면, 기사로서는 변호사가 일정이 끝나자마자 변호사를 태우러 와야 하기 때문에 항상 법원 근처에서 대기하고 있어야 하는데, 만약 변호사가 재판 끝나고서 예고 없이 점심까지 먹으러 간다면, 기사님은 점심도 못 먹은 채 계속 기다리기만 해야 한다.   


제발 밥 좀 먹게 해주세요!!


그래서 출발할 때나, 아니면 차에서 내릴 때 미리 말씀드려야 한다. 오늘 재판은 증인 신문이 있어서 1시간 넘게 걸릴 거예요, 오늘 재판 길어지니까 식사하시고 오세요, 이런 식으로. 최대한 예측할 수 있는대로 말씀드려야 한다. 점심 약속이 없었는데 법정에 참석한 의뢰인이 갑자기 재판 끝나고 점심 먹으러 가자고 한다,면 그 즉시 문자나 전화로라도 말씀드려야 한다.


안 그러면 기사님은 마냥 기다린다. 기사님은 변호사가 혹시라도 재판 중일 수도 있기 때문에 휴대폰 연락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변호사가 어렵기도 하고... 


만약 재판이 길어지거나 의뢰인과 점심을 먹어야 해서, 기사님이 점심시간을 넘겨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 오면, 파트너들은 미리 만 원 씩 건넨다. 점심 값 하시라고. 처음에는 나도 그래야 하는 줄 알고 만 원 드렸는데 알고보니 어쏘 찌끄레기는 그렇게 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괜히 내가 기사님께 실수 한 것 아닌가도 생각했는데, 그냥 좋아하셨던 것 같기도 하고.  


2. 전용차량은 진짜 잘 걸려야 한다.


높은 파트너들에게는 전용차량과 전용기사가 주어진다. 파트너와 전용기사는 거의 매일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낸다. 출근할 때, 외부 이동할 때, 저녁 회식할 때, 퇴근할 때. 전용기사는 특별한 일이 없으면 해당 파트너만 모시지, 다른 변호사를 운전해주진 않는다.  


로펌 차량으로는 오피러스나 제네시스가 제일 많은 것 같다.

 

파트너들은 조찬 회의에 갈 수도 있고 저녁에 회식을 할 수도 있고, 의뢰인을 만나러 나갈 수도 있고, 주말에는 접대골프를 치러 갈 수도 있다. 그 때마다 전용기사가 차량을 몬다. 전용기사는 파트너의 스케줄에 따라 함께 움직인다.


파트너만 도맡아 운전하는 전용기사들은 시간 (09시~18시) 외  근무가 기본이기 때문에, 야근 수당과 주말 수당을 바라보고 전용기사를 자원하는 사람도 있다. 반대로 개인의 자유가 더 중요한 사람이거나, 맡아야 하는 파트너가 악명 높은 경우에는 전용기사를 회피하기도 한다.


악명이 높다함은 성격이 괴팍하거나, 전용기사에게 개인 심부름, 심지어 본인 가족의 개인 심부름을 시킨다거나 하는 경우를 말한다. 이런 경우는 아무리 노련한 기사라도 계속 근무하기가 힘들기 때문에 서로 전용기사 맡기를 꺼려한다.


반면 정말 인격적으로 잘 해주시는 파트너도 있다. 기사들 말을 들어보면, 변호사들 사이에서 인기 많은 파트너가 기사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많다. 전용기사와 해당 파트너는 워낙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고, 차 안팎으로 컨택하는 기회가 많기 때문에 기사들도 (어쏘들이 그러한 것 처럼) 파트너의 인품에 매료된다.

 

그래서 전용기사일이 힘들더라도 파트너가 필요하시다 하면, 불편함을 참고 (예를 들어 파트너가 이사를 가서 운전거리가 더 멀어졌다든가), 의리로 그 파트너를 모시기도 한다. 그런 파트너와 일을 많이 하는 어쏘는, 그 전용기사와도 얼굴을 트게 되고, 충성심 강한 기사분은 왠만하면 그 어쏘의 일에는 운행을 해주려고 노력한다. 이럴 때 쫌 감동이다.


3. 기사님과 변호사 관계는 일방향이다.


기사님들은 변호사를 잘 알지만, 변호사들은 기사들을 잘 모른다. 기사님들은 변호사의 이름과 얼굴과 일정을 잘 알아야 하지만, 변호사들은 나를 태워주는 기사가 누군지 몰라도 된다.  


이건 회사의 수직관계 내지 상하관계에 의한 것이다. 변호사들에게는 아예 직급이 없고, 기사님들에게는 직급이 있다 (부장님, 차장님, 과장님 이렇게). 하지만 기사님들은 변호사를 위해 존재하고 변호사는 기사님들보다 우위에 있는 것 같은 게 전체적인 분위기다.  


바로 이런 경우.


예를 들어, 기사님은 오늘 동부지방법원 3시 재판에 출정할 뫄뫄 변호사의 이름과 얼굴을 미리 익히고 있어야 한다. 출발 시각에 10분 먼저 주차장에서 대기하다가, 뫄뫄 변호사가 나오면 뫄뫄 변호사님, 여기요! 라고 알린다.


변호사들에게도 출발 전에 <차량번호 0000, 기사 뫄뫄 사원> 이라고 공지가 되긴 하지만, 양 손에 짐 든 채로 주차장 앞에서 다시 휴대폰을 꺼내 공지를 확인하는 건 번거롭기 때문에, 회사에서는 서로를 알아보는 부담을 기사에게 지우는 것이다. 회사가 클 수록 변호사 숫자도 백명이 넘어갈 수 있는데, 이런 경우 변호사의 이름과 얼굴을 외우는 게 쉽진 않을 것이다.  


서로 간의 상하관계는 기사들이 차 안에서 비가시화되는 데에서 가장 노골적으로 드러난다고 생각한다. 변호사들은 차 안에서 별 얘기를 다 한다. (기사에게 얘기하는 것은 아님) 전화로 사적인 얘기, 누가 들으면 부끄러울만한 얘기 다 하고, 같은 차에 탄 변호사와 회사사람 흉도 보고 비밀스러운 사건 얘기도 한다. 앞 좌석에 운전자가 있다는 사실은 까맣게 잊어버리는 듯 하다.  


사실은 앞에서 운전하는 기사님은 다 듣고 있다. 안 듣는 척, 못 보는 척, 앞만 보고 달릴 뿐이지. 기사님들은 룸 미러도 안보신다, 뒷 좌석에 탄 변호사들 얼굴과 마주칠까봐.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호사들은 마치 자율주행 차량에 탄 마냥, 서슴없이 전화통화나 대화를 한다.   


내 경험 상 기사님이 이렇게 뒤를 보는 경우는 없었다. 나와 대화 중일지라도!


같은 차 안에 타고 있는 사람 중, 변호사들끼리는 서로의 존재를 의식하지만 운전자의 존재는 의식하지 않는 것, 운전자가 비가시화되는 것은... 너무 단적으로 변호사와 기사 간의 권력관계를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영화 ≪기생충≫에서 송강호는 '선을 넘는다.' 이선균에게 "그래도 사모님 사랑하시죠?"라고 물었을 때 이선균은 굉장히 불쾌해했다. 이선균 입장에서 "그래도 사모님 사랑하시죠?" 하는 질문은 송강호가 해서는 안되는 것이었다.   
송강호가 공사 구분을 못하긴 했다.


이런 권력관계가 회사 안에서 변호사와 기사 사이에도 알게 모르게 있기 때문에, 변호사들이 기사들을 비가시화하고, 기사들도 스스로를 비가시화하는 게 규범 (norm)이 돼버린 것이다. 이런 문화는 분명히 고쳐야 할 부분이 있다.  


회사 내의 수직적 권력관계는 비서와 변호사 사이에서도 마찬가지다. 회사에서 비서의 위치에 관해서는 https://brunch.co.kr/@kr-uslawyer/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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