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집 운동 다시 학교 집 운동 매일 같이 같은 루틴으로 하루하루를 빠르게 흘려보내고 있었다.
그러다 학교에서 나도 ‘교권침해’를 당했다.
옆 선생님, 건너 건너 선생님의 이야기로만 듣던 일이 나에게도 일어났다.
처음은 ‘괜찮겠지. 그럴 수도 있어.’라고 나를 속이며 아무렇지 않은 듯 일상을 흘려보내려고 했다.
그러나 난 괜찮지 않았고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병원도 가고 상담도 하다 결국 병가를 냈다.
병가를 내고 나를 다시 일으키려 발버둥 쳤다.
아무 생각도 하고 싶지 않아 드라마를 몰아 보기도 하고, 하염없이 걷기도 하고, 심리 상담을 하며 나의 옛이야기를 들춰보기도 했다.
그중 나에게 그나마 가장 큰 도움이 된 것이 책 읽기와 글쓰기였다.
책을 통해 사람들이 얼마나 열심히 발버둥 치며 살아가고 있는지 엿보고,
글을 쓰며 지금까지 내가 얼마나 행복한 사람이었는지를 톺아보며,
지금의 시련이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들어 줄 수 있다는 억지스런 믿음이 생겼다.
학교 집 운동의 틀을 벗어나 시간을 오롯이 나에게만 쓸 수 있는 여유가 생기자 억지스런 믿음의 거름이 될 수 있는 일들이 눈에 들어왔다.
눈에 밟히는 모든 일들을 해보고 싶은 욕구로 마음이 가득 찼다.
’ 클래스 101‘이라는 유료 온라인 클래스 플랫폼에 가입부터 했다.
다양한 클래스 중에 제일 눈에 들어온 것은 디지털 드로잉이었다.
프로크리에이트라는 앱을 통해 캐릭터를 만들어 카카오톡 이모니콘 승인을 받아 수익을 창출하는 법을 소개하는 클래스를 들었다.
프로크리에이트라는 유료 앱을 당장 깔고 강의에서 알려주는 대로 선과 점을 찍어 나갔다.
새로운 세상이었다.
종이와 펜으로 스케치도 잘 못하는 내가 아이패드와 아이펜슬을 잡고 그림을 그리는데 그것 참 신통방통했다.
화면에 손가락 두 개를 툭 갖다 대면 그었던 선이 사라지고, 손가락 세 개를 툭 갖다 대면 다시 선이 나타난다.
두 손가락을 대고 오므렸다 벌렸다 하면 화면 속의 종이가 작아졌다 커졌다 한다.
물감, 색연필 등 채색 도구를 쭉 늘어놓지 않고도 펜슬로 톡톡 선택하여 원하는 느낌의 질감과 색깔로 화면을 채울 수 있다.
누군가에게는 너무 익숙할 수 있지만 나에게는 새로운 세상이었다.
내가 알아 버린 새로운 세상은 이미 강산도 바뀌고 남을 기간 15년 전에 만들어진 세상이었다.
그 사실을 알고 나니 즐거웠던 마음이 조급함으로 바뀌었다.
‘내가 이렇게 뒤처져서 살고 있구나.’ 뒤처지면 안 된다는 생각에 요즘 세상에 뛰어 들어가 보려고 이것저것 알아보기 시작했다.
간간히 보던 유튜브와 인스타그램 말고 또 뭐가 있을까?
X, 스레드, 노션, 틱톡, 챗지티피, 미드저니, 나노바나나 등 뭐가 이리 많은지 지금은 선택지가 폭발한 것 같다.
말 그대로 선택지가 쏟아지는 세상이 된 거다.
예전엔 몇 개의 플랫폼, 몇 개의 도구, 몇 개의 트렌드가 있었기 때문에 몇 개만 잘 따라가도 새로운 세상에 쉽게 적응하며 남들과 소통이 가능하고 시대에 뒤처지지 않게 살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말 그대로 쏟아지고 있다. 이 모든 것을 따라가려고 하는 것은 어쩌면 불가능할지도 모르겠다.
내가 따라가려고 발버둥 치며 휴대폰에 이 앱 저 앱 마구잡이로 다운로드 받으며 시간을 허비해 보니 지친다.
여기도 들어가 봐야 하고 저기도 들어가 봐야 하고 나의 소중한 시간은 한정되어 있다. 모든 것에 에너지를 쏟을 수는 없다.
몸만 마흔, 마음은 이십이라도 남들이 하는 거 다 해봐야 하는 나이는 몸이 이십일 때다.
지금 나는 뭐에 시간을 쓸지 나의 방향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몸만 마흔 마음은 이십이다.
쏟아지는 세상에서 살아남으려면 새로운 것을 쫓기보다는 나랑 맞는 것을 선택해야 한다.
나의 방향에 따라 선택하고 집중해야 한다.
새로운 세상은 곧 쏟아지는 세상에서 나의 방향대로 내가 선택한 세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