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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종화 Feb 13. 2020

시간 여행, 과학이 묻고 철학이 답하다(2)

3차원주의와 4차원주의를 둘러싼 쟁점들

구분                                                     3차원주의                                                  4차원주의 


세계는 변하는가?                             아리스토텔레스 - 변한다                          파르메니데스 - 변하지 않는다

시간은 흐르는가?                             A - 이론                                                     B - 이론

시제는 본질적인가?                         시제주의(그렇다)                                       무시제주의

과거/미래는 존재하는가?                 현재주의                                                     영원주의

개별자는 어떻게 지속(존재)?           이동지속이론                                             시간적 부분이론


1. 아리스토텔레스와 파르메니데스


 (1) 헤라클레이토스 : “우리는 동일한 강에 두 번 들어갈 수 없다.” 강물은 끊임없이 흐른다. 어제의 강과 오늘의 강은 다르다. 모든 것은 변화하고, 변화하면 이전과 다르다. 인간의 몸을 구성하는 세포는 매일 일부가 죽고, 일부가 새로 만들어진다. 그러면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는 다른 존재일까? 헤라클레이토스의 말대로라면, 그렇다.


 (2) 파르메니데스 : “우리는 강에 한 번도 들어갈 수 없다.” 


  A. 있는 것은 있고, 없는 것은 없다.

  B. 어떤 것이 변화하기 위해서는 없던 것이 생겨야 한다.

  C. 그런데 없는 것은 없다.

  D. 따라서 변화는 불가능하다. 


  파르메니데스의 제자 멜리소스의 논증


  A. 변화란 동일한 어떤 것의 속성이 달라지는 것이다.

  B. 어떤 것의 속성이 달라지면 그것은 더이상 동일한 것이 아니다.

  C. 따라서 변화는 불가능하다.


  컵에 담긴 따뜻한 물이 차갑게 식는 현상은 같은 한 잔의 물이 따뜻한 속성을 가지다가 차가운 속성을 가지는 변화다. 그런데 따뜻한 속성과 차가운 속성은 다르다. 그러므로 컵에 담긴 물은 동일한 물이 아니다. 그러므로 물은 차가워지지 않는다? 파르메니데스는 헤라클레이토스와 정반대의 결론을 얻는다. 하지만 두 사람이 공통적으로 생각하는 바가 있다. 속성이 다르면 동일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헤라이클레이토스는 속성이 달라지므로 동일하지 않다고 생각했고, 파르메니데스는 변화가 불가능하므로 동일하다고 여긴 셈이다. 그러면 어제의 강과 오늘의 강은 동일하지 않는데 어떻게 강이 있는걸까? 파르메니데스의 제자들은 어제의 강과 오늘의 강이 전체 강의 일부라고 주장했다. 강이 생겨나서 없어질 때까지 모든 순간을 합해서 하나의 강이라고 여긴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강에 한 번도 들어갈 수 없다.” 만약, 강에 들어갔다고 말하려면 강이 생겨나서 없어질 때까지 줄곧 강에 들어가 있어야 한다. 4차원주의에서 과거, 현재, 미래가 한꺼번에 존재한다는 내용과 흡사하다. 


 (3) 아리스토텔레스 : “우리는 동일한 강에 여러 번 들어갈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컵에 담긴 물, 사람, 강이 모두 같다고 여긴다. 한 존재가 변화를 겪지만 동일한 존재라고 생각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를 가능태와 현실태로 설명한다. 올챙이는 자라서 개구리가 된다. 올챙이와 개구리는 분명 다르지만 그래도 동일한 생명체라 할 수 있다. 올챙이는 개구리가 되는 ‘가능태’이고, 개구리는 올챙이가 변한 ‘현실태’라고 본다. 존재하는 방식이 바뀔 뿐이다. 가능태가 현실태가 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 시간이다. 시간이 지나야 올챙이는 개구리가 된다. 이렇게 보면 어제의 강과 오늘의 강은 다르지만, 다른 시간에 존재하고 있으므로 여전히 동일한 강이다. 그래서 “우리는 동일한 강에 여러 번 들어갈 수 있다.”



 2. A - 시간론과 B - 시간론


 (1) 맥타가트의 논증 - 시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 A - 시간론 : 3차원주의와 거의 비슷한 시간론이다. 과거/현재/미래가 근본 개념이다. 과거가 지나갔다, 미래가 다가온다 같은 표현이 실제로 시간의 흐름을 나타낸다. 모든 개별자는 본래적 속성으로 과거성, 현재성, 미래성을 가진다.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과거성을 가지며, 도널드 트럼프는 현재성을, 2022년 월드컵 축구공은 미래성을 가진다. 


  * B - 시간론 : 4차원주의와 비슷한 시간론이다. 이전/이후/동시 개념이 근본적이다.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과거-존재자가 아니라 트럼프-이전-존재자라고 표현하며, 2022년 월드컵 축구공은 미래-존재자 대신 트럼프-이후-존재자라고 말해야 한다. 이전-동시-이후 관계는 한번 결정되면 절대로 변하지 않는다. 이는 세상이 변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① 시간이 존재한다고 가정해보자.

 ② 시간이 존재하면, 그것은 A-시간이거나 B-시간이다.

 ③ 따라서 A-시간이 존재하거나 B-시간이 존재한다.

 ④ 시간이 존재하면, 세상에 변화가 있다.

 ⑤ 변화가 있으면, A-시간이 있다. (B-시간론에서 세상은 변하지 않는다)

 ⑥ 따라서 시간이 존재하면, 그것은 A-시간이다. 

 ⑦ A-시간 속의 사건은 과거성/현재성/미래성을 모두 가진다. 

 ⑧ 과거성/현재성/미래성은 양립불가능하다.

 ⑨ A-시간은 모순이다.

 ⑩ A-시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⑦과 ⑧이 무슨 말인지 알아보자. 카이사르의 암살사건(기원전 44년)은 한니발이 알프스를 넘어 로마를 침공했을 때(기원전 218년)에는 미래-사건이었고, 사건 당시에는 현재-사건이었으며, 지금은 과거-사건이다. 한 사건이 과거성/현재성/미래성을 다 가진다는 말은 이런 의미다. 그런데 어떤 것도 과거성/미래성/현재성을 함께 가질 수 없지 않은가? 사람이 뚱뚱하면서 동시에 날씬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래서 A-시간이 모순이 된다고 맥타가트는 주장한다. 


  (결론) 시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맥타가트 논증의 얼개는 이렇다. 시간에는 A-시간과 B-시간이 있다. 그런데 시간은 변화를 전제한다. 그래서 변화를 인정하지 않는 B-시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 A-시간은 모순이다. 따라서 A-시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B-시간도 A-시간도 존재하지 않으므로, (결론) 시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2) 시드니 슈메이커 : 결빙파티 반론 “변화가 없어도 시간이 존재할 수 있다”

 세계가 1지역, 2지역, 3지역으로 나누어져 있고, 각 지역은 주기적으로 모든 변화와 운동이 일어나지 않는 결빙상태에 1년간 빠진다고 가정하자. 한 지역이 결빙상태가 되면 다른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결빙된 지역을 보고 재미있어 할 것이다. 결빙된 지역의 사람들은 정작 자신이 결빙되었다가 풀린 것을 모른다. 사람의 사고는 뇌의 물리적 활동에서 생겨나기 때문에, 결빙된 동안 뇌의 활동이 정지되면 아무것도 느끼거나 생각할 수 없다. 결빙의 주기는 각 지역이 3년, 4년, 5년이다. 그러면 60년만에 한 번 세 지역 모두 결빙상태가 된다. 사람들은 언제 결빙이 시작하는지를 언제쯤 봄이 오는지 알듯이 추론할 수 있다. 그들은 전체 결빙이 시작하기 바로 직전에 물건을 허공으로 던지며 “결빙파티 시작!”이라 외친다. 결빙이 시작된다. 결빙이 끝나면 그들은 결빙 시작 전 던진 물건을 받으며 “결빙파티 끝!”이라고 외친다.


 슈메이커가 제시한 이런 상황은 변화가 없어도 시간이 흐른다는 점을 납득시킬 수 있다. 그런데 맥타가트의 논증을 깨뜨릴 수 없었다. 분석철학자 김한승은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만약 세계 전체가 1년간 결빙 상태에 빠져 있으려면 시간이 흘러야만 가능하다. 시간이 흐르지 않으면 어떻게 1년간 세계 전체가 결빙 상태에 있을 수 있겠는가? 즉 슈메이커의 결빙파티 반론은 A-시간이 있어야 ‘변화 없는 텅 빈 시간’도 존재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줌으로써 A-시간의 우선성을 입증해버렸다. 결과적으로 맥타가트의 논증에서 ⑥이 성립된 셈이다.


 (3) 맥타가트의 자기 반론과 해명


  맥타가트 논증에서 A-시간이 모순인 이유가, 사건이 과거성/현재성/미래성을 모두 가지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런데 맥타가트는 (자신의 논증을 더욱 견고하게 만들기 위해 제기한) 자기 반론에서 모순이 아니라고 말한다. 사건이 과거성/현재성/미래성을 ‘동시’에 가지지 않고, ‘순차적’으로 가지기 때문이다. 아래 예시를 보자.


 ❶ 카이사르의 암살사건은 미래-사건이고, 현재-사건이며, 과거-사건이다.

 ❷ 카이사르의 암살사건은 미래-사건이었고, 현재-사건이며, 과거-사건이 될 것이다. 


❶은 사건이 과거성/현재성/미래성을 모두 가지기 때문에 모순이다. 그러나 ❷는 모순이라고 할 수 없다. 사건이 과거성/현재성/미래성을 차례로 가진다. 그러면 ❷를 다르게 번역한 아래 문장을 보자.


 ❸ 카이사르의 암살사건은 과거-시점에서는 미래-사건이고, 현재-시점에서는 현재-사건이며, 미래-시점에서는 과거-사건이다. 


 ❸은 모순이다. ❸에서는 사건이 아니라 시점이 양립불가능한 과거성/현재성/미래성을 모두 갖고 있다. 동사의 시제를 보라. 그렇다면 ❷에서 사건이 가진 모순을 ❸에서 시점이 떠안은 셈이다. ❸의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메타-시점을 도입할 수 있다.


 ❹ 카이사르의 암살사건은 메타-과거-시점 관점에서 본 현재-시점에서는 미래-사건이고, 메타-현재-시점 관점에서 본 현재-시점에서는 현재-사건이며, 메타-미래-시점 관점에서 본 현재-시점에서는 과거-사건이다. 


 ❹도 모순이다. ❸에서 시점이 가진 모순을 메타-시점이 떠안았다. 더 상위 시점을 도입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런즉, 사건이 가진 모순을 시점이 떠안는다는 맥타가트의 자기 반론은 실패다. 여기서 중요한 근거는 언어의 시제였다. 이에 대해서 조금 후에 살펴보자. 


 (4) 아서 프라이어의 반론 “사건은 변할 수 없다”


 카이사르의 암살사건이 미래-사건이었다가 현재-사건이고, 다시 과거-사건이 될 것이라는 변화가 모순이라는 것이 맥타가트 논증의 핵심이다. 프라이어는 이에 반대한다. 이런 변화는 언어의 오용에 의한 가짜 변화라는 주장이다. 카이사르가 태어나 성장해 갈리아를 정복하고, 내전에서 승리해 권력을 잡았다가 암살당해 죽은 그의 삶이 진짜 변화란다. 그의 죽음이 미래-사건이었다가 현재-사건이며, 과거-사건이 되는 것은 가짜 변화다. 


 카이사르는 고대 로마 시대에 살았던 개별자다. 개별자는 변할 수 있다. 그가 대머리가 되거나, 빚쟁이에서 장군이 되거나, 권력자에서 암살당해 죽을 수도 있다. 그런데 그가 죽은 암살사건은 개별자가 아니다. 카이사르 암살사건은 개별자인 카이사르가 겪는 변화다. 카이사르 암살사건은 변할 수 없다. 변화가 또 변화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건도 변할 수 있지 않나? 내가 책을 읽는데 처음엔 재미있다가 중반 이후엔 지루해질 수도 있다. 설날 고향으로 가려고 운전을 하는데 수도권에서는 밀려서 천천히 운전하다가 정체구간을 벗어나서 속력을 높여 운전할 수도 있다. 프라이어는 이런 변화가 언어에서 비롯된 착각이라고 말한다. 책을 읽는 사건이 변한게 아니라 내 마음이 변한 것이며, 운전하는 사건 자체가 변한게 아니라 자동차의 속력이 변했을 뿐이다. 


 (5) 한우진 : 논증의 형식이 타당하지 않다. 


  덕성여대 한우진 교수는 엄격한 논리 계산을 거쳐 맥타가트 논증의 결론이 다음과 같이 나와야 한다고 주장한다. 


 (결론) A-시간이 존재하지 않거나 B-시간이 존재하지 않는다. 


 즉,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결론이 아니다. 한우진은 맥타가트의 자기 반론과 해명에서 ❸ “카이사르의 암살사건은 과거-시점에서는 미래-사건이고, 현재-시점에서는 현재-사건이며, 미래-시점에서는 과거-사건이다.” 가 무시제 문장이라는 점을 지적한다. B-시간이 부정된 상황에서 B-시간을 의미하는 무시제 문장을 도입했기 때문에 맥타가트의 주장은 “B-시간이 존재하면 A-시간이 존재하지 않는다”가 된다. 이 점을 논리식에 반영하면 맥타가트의 결론과 다른 한우진의 결론이 나온다. 시제가 왜 중요한지 바로 살펴보자.



 3. 시제주의와 무시제주의


  * 시제 문장 

 ① 지금 비가 온다.

 ② 베트남 전쟁이 일어났다. 

 ③ 카타르 월드컵이 열릴 것이다. 


 * 무시제 문장

 ❶ 2020년 2월 5일에 비가 온다.

 ❷ 베트남 전쟁은 걸프전 이전에 일어난다.

 ❸ 카타르 월드컵은 러시아 월드컵 이후에 열린다. 


  시제주의에 따르면 시제 문장이 가지고 있는 과거/현재/미래에 대한 정보는 문장의 본질적 특성이다. 무시제주의는 시제 문장이 담고 있는 과거/현재/미래에 대한 정보가 무시제적으로 환원되는 가짜 정보라고 본다. “베트남 전쟁이 일어났다”는 과거시제 문장은 “베트남전쟁은 걸프전 이전에 일어난다”는 무시제 문장이 될 수 있다. 


 (1) 버트런드 러셀의 무시제주의


 러셀은 초기 무시제주의자의 대표적 인물이다. 그는 모든 시제 문장을 무시제 문장으로 고쳐 쓸 수 있다고 봤다. ①은 ❶로, ②는 ❷로, ③은 ❸으로 고칠 수 있다. 그런데 러셀과 같은 초기 무시제주의는 두 가지 문제점을 가진다. 


 먼저, 시제 문장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정서다. 며칠을 기다린 소풍날 아침, 폭우가 내린다. 민수는 이렇게 탄식한다. “지금 비가 내린다” 그런데 무시제 문장으로 고치면 “2019년 5월 6일 아침에 비가 내린다.”인데 민수가 느끼는 감정이 드러나지 않는다.


 또, 시제 문장과 무시제 문장은 진리값이 다르다. “베트남 전쟁이 일어났다”는 과거시제 문장은 1960년 이전에는 거짓이지만 1960년 이후에는 참이다. 반면, “베트남전쟁은 걸프전 이전에 일어난다”는 무시제 문장은 한 번 참이면 영원히 참이다. 시제 문장과 무시제 문장의 진리값이 일치하지 않는 점은 시제 문장과 무시제 문장이 같다고 본 러셀의 무시제주의에 대한 결정적 반론이다.


 (2) 휴 멜러의 무시제주의


  멜러는 ‘진리조건’이라는 개념을 통해 무시제주의를 구원하려고 했다. 진리조건은 어떤 명제가 참이 되는 조건이다. 문장의 진리조건은 대개 그 문장에 관한 사실이다. “2018년 10월 1일 정오에 비가 온다.”는 무시제 문장의 진리조건은 ‘2018년 10월 1일 정도에 비가 온다’는 무시제적 사실이다. “지금 비가 온다”는 시제 문장의 진리조건은 ‘지금 비가 온다’는 시제적 사실이다. 여기까지만 보면, 시제 문장의 진리조건은 시제적 사실이고, 무시제 문장의 진리조건은 무시제적 사실이다. 그러므로 시점에 따라 진리값이 달라지는 시제 문장과 진리값이 변하지 않는 무시제 문장의 차이는 여전하다.


 멜러는 여기서 ‘문장 자체’와 ‘문장을 언급하는 말’을 구분해서 보자고 제안한다. 이런 경우를 생각해보자. 아침에 집 앞에서 신문배달원이 “신문 왔어요”라고 외치는 말을 들었다. 오후 늦게 사무실에서도 “신문 왔어요”라는 말을 들었다. 문장은 “신문 왔어요’로 같지만, 이 문장을 언급하는 말은 다르다. 아침에는 조간신문이 왔다는 뜻이고, 오후 늦게는 석간신문이 왔다는 의미다. 문장을 언급하는 말은 시간, 장소, 상황에 따라 다르다. 


 시제 문장을 ‘문장을 언급하는 말’로 보면 시제 문장의 진리조건은 무시제적 사실이다. “한국전쟁은 1950년에 일어났다”는 ‘과거문장을 언급하는 말’의 진리조건은 ‘한국전쟁은 1950년에 일어나고, 이러한 언급은 1950년 이후에 말해진다’는 무시제적 사실이다. 멜러는 시제 문장의 진리조건이 시제적 사실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한국전쟁은 1950년에 일어났다”는 시제 문장은 역사적으로 보면 참이다. 그러나 이 시제 문장의 진리조건인 ‘한국전쟁은 1950년에 일어났다’는 시제적 사실은 1950년 이전에는 없는 사실이므로 참이 아니다. 멜러는 이것이 시제주의의 치명적 약점이라고 지적했다.


 (3) 그레이엄 프리스트의 멜러에 대한 반론


 멜러는 “한국전쟁은 1950년에 일어났다”는 시제 문장에서 ‘문장을 언급하는 말’의 진리조건이 ‘한국전쟁이 1950년에 일어났다’는 시제적 사실이라고 보았다. 그러면 1950년 이전에는 한국전쟁이 일어났다는 사실이 없으므로 참이 아니다. 그러므로 시제적 사실은 시점에 따라 모순이 될 수밖에 없다는 논증이다. 프리스트는 멜러에 반대하여 시제 문장을 ‘문장 자체’가 아니라 ‘문장을 언급하는 말’로 보아도, 시제 문장의 진리조건이 시제적이라고 주장한다.


 프리스트는 “어떤 문장의 진리조건은 어떤 사실이다”에서 ‘~사실이다’를 현재 시제 술어로 보라고 제안한다. 


 <“한국전쟁은 1950년에 일어났다”는 ‘문장을 언급하는 말’의 진리조건은 ‘한국전쟁은 1950년에 일어났다’는 시제적 사실이다>


 위 문장은 현재에 관한 문장이다. 이 문장에서는 1950년 이전에 대해서는 어떤 언급도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멜러가 제기한 1950년 이전에는 ‘한국전쟁이 1950년에 일어났다’는 시제적 사실이 없다는 문제가 해결된다. 프리스트는 더 나아가 무시제 문장의 진리조건도 시제적 사실이라고 주장한다. “한국전쟁은 1950년에 일어난다”는 무시제 문장에서 ‘일어난다’가 무시제적 동사이다. 그런데 프리스트는 무시제적 동사를 과거시제 또는 현재시제 또는 미래시제 동사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국전쟁은 1950년에 일어난다”는 무시제 문장의 진리조건은 다음과 같다.


 ‘한국전쟁은 1950년에 일어났거나, 또는 일어나거나, 또는 일어날 것이다’


 이 문장은 시제적 사실이다. 


 (4) 아서 프라이어 ‘프라이어 문장’


  위에서 무시제주의가 시제 문장이 나타낼 수 있는 독특한 정서나 느낌을 살릴 수 없다고 했다. 프라이어는 이 점을 전면에 내세워 시제 문장이 무시제 문장과 본질적으로 다르다고 주장한다. 


 대학교 기말고사 마지막 시험을 마치고 교정을 내려오면서 민수는 “시험이 끝나서 정말로 다행이다.”라고 말했다. 러셀과 같은 초기 무시제주의자는 이를 무시제 문장으로 번역할 것이다. “2018년 12월 20일에 기말고사가 끝나서 정말로 다행이다.” 아무리 봐도 시제 문장에서와 같이 민수가 느낄 후련함이 전달되지 않는다. 


 멜러는 이런 ‘프라이어 문장’을 무시제 문장으로 번역할 수는 없지만, 대신 무시제적 진리조건을 가진다고 주장한다. 멜러 방식으로 분석해보자. 위 문장은 “시험이 끝났다”라는 문장과 “정말로 다행이다”는 문장을 ‘그리고’로 연결했다. “시험이 끝났다”는 ‘문장을 언급하는 말’은 '시험이 끝나고, 이러한 언급은 시험이 끝난 후에 말해진다’라는 무시제적 진리조건을 가진다. “정말로 다행이다”는 안도감을 표현하는데, 이는 괴로운 일을 마친 ‘이후’에 할 수 있는 표현이다. 이전, 이후는 시간적 순서가 아니라 관계만을 드러낸다. 그러므로 프라이어 문장의 전체 진리조건은 무시제적이라는 논증이다. 


 멜러의 주장에 대해 여러 학자가 참여해 논쟁을 벌였다. 여기에 다 소개하고 싶지만 그러지 않겠다. 사실 누구의 주장이 옳다고 결정하기 어렵거니와, 이정도면 시제와 관련된 쟁점이 무엇인지 충분히 소개했다.



  4. 현재주의와 영원주의


 (1) 현재주의 : 3차원주의와 거의 같다. 과거와 미래는 존재하지 않고 현재만 존재한다. 시간이 흐르면서 미래는 현재가 되고, 현재는 과거가 된다. 다른 말로 ‘지금주의’라고 한다. 


 (2) 영원주의 : 4차원주의와 거의 같다. 과거와 미래도 현재와 동시에 존재한다. 영원주의의 이미지는 과거/현재/미래가 벽돌을 쌓아둔 모양이다. 그래서 ‘블록우주’ 이론이라고 한다. 영원주의에서 시간은 공간과 비슷하다. ‘여기(here)’가 특별한 장소가 아니듯 ‘지금(now)’도 특별한 시점이 아니다. ‘여기’는 이 단어를 말하는 사람이 위치한 장소를 지시할 뿐이다. 마찬가지로 ‘지금’도 이 단어를 말하는 사람이 존재하는 그 순간을 가리킬 뿐이다. 


 (3) 가능주의 : 과거와 현재는 존재하지만 미래는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론이다. 현재주의와 영원주의를 절충한 이론으로 보기도 한다. 가능주의는 왜 현재가 특별한지 설명할 수 있다. 가능주의에 따르면, 현재는 아직 존재하지 않는 미래가 생성되는 순간이다. 그러면 이런 세계는 점점 커질 수밖에 없다. 과거가 점점 늘어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능주의를 ‘자라나는 우주’ 이론으로 부르기도 한다. 


 (4) 스포트라이트 이론 : 과거, 현재, 미래가 모두 존재한다는 점에서 영원주의와 비슷하다. 그러나 현재가 특별하다는 면은 현재주의와 닮았다. 옛날식 영화 필름을 생각해보자. 필름에는 영화 전체가 담겨 있다. 그러나 영화관 스크린에는 한 장씩 차례로 비친다. 스크린에 비치는 필름 한 장이 현재다. 우주의 전 역사, 즉 모든 과거/현재/미래가 영화 필름이 담겨 있고, 현재는 지금 스크린에 비치는 장면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현재는 그것이 스크린에 비치고 있기 때문에 특별하다. 과거를 다 기억하지 못하는 이유는 필름에 감겨 스크린에서 사라졌기 때문이다. 미래를 모르는 까닭은 아직 스크린에 비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왜 과거와 미래에 대한 태도가 다른가?]


 앞에서 예로 들었던 시험이 끝난 민수의 심정으로 돌아가보자. 민수가 기말 시험을 다 끝내고 나오면서 “시험이 끝나서 정말로 다행이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그가 치른 시험 과목 중 하나가 결과가 나왔다. 민수는 낙제 점수라서 내일 재시험을 쳐야만 낙제를 면할 수 있다. 민수는 처연하게 “헐! 내일 또 (재)시험을 쳐야 해?” 말했다. 여기서  민수의 반응이 왜 달라질까? 현재주의를 따르면 많은 설명이 필요없다. 끝난 시험은 지나갔고 재시험은 아직 오지 않았다. 지난 일에 안도하고 미래의 일을 걱정하는 마음은 지극히 당연하다. 그러면 영원주의에서는 이를 어떻게 바라볼까?


 영원주의에서 과거나 현재나 미래는 같이 존재한다. 그러면 왜 지나간 일에 안도하고 미래의 일을 걱정하는지 설명하기 어렵다. 모든 것이 한꺼번에 같이 있는데 어떤 감정이나 느낌이 생기겠는가? 영원주의자들은 이에 대한 대답으로 인과의 방향성을 가져온다. 먼저 사건이 나중 사건의 원인이 되기 때문이란다. 민수의 경우, 시험을 마치고 내려온 민수의 현재가 내일 재시험에 영향을 미칠 수 있으므로 더 신경을 쓰고 걱정을 하게 된다는 설명이다. 


 선우환 교수는 이에 반대한다. 그는 걱정한다고 해결할 수 없는 사건을 예로 든다. 재시험 같은 경우는 여러 요인이 시험 성적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하지만 내일 여행을 가기로 했는데 코로나 바이러스가 더 확산된다거나, 비가 온다거나, 미세먼지가 심해지거나 하는 문제는 걱정을 한다고 해결할 수 없다. 그럼에도 우리가 이런 일에 대해서 걱정하는 마음은 이상하지 않다.


 영원주의자는 이제 엔트로피 개념으로 이론을 방어한다. 이전-이후 관계에 방향이 있는데,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방향이다.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방향에 있는 내일의 재시험에 대해 민수가 걱정을 한다는 거다. 그런데 이전-이후 관계의 방향성에 대해서는 설명이 되지만, 왜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방향에 있는 사건을 걱정하는지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 


 영원주의자 배리 데인튼은 과거와 미래에 대한 우리의 감정이나 느낌이 (시간이 흐른다는) 착각 때문에 일어난다고 주장했다. 동일한 대상에 대해서 상반된 감정을 가질 수 있듯이 어제의 시험과 내일의 재시험에 대해 다른 감정을 가진다고 이상할 것이 없다는 말이다. 그러나 이 대답도 상반된 심리상태에 대한 설명은 가능하지만, 왜 과거에 대해선 안도감을 미래에 대해선 걱정을 느끼는지 설명하지 못한다.



 5. 이동지속이론과 시간적 부분이론


  우리는 1. 아리스토텔레스와 파르메니데스 에서 변화와 지속, 그리고 동일성에 대해 잠깐 살펴봤다. 여기에선 조금 더 심화해서 알아보자. 여기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개념이 {엘비스 패러독스 논쟁}에 등장했던 라이프니츠의 ‘동일자의 구별불가능성 원리(Principle of Indicernability of Identicals, PII)다. 어떤 것이 동일하다고 말할 수 있으려면 모든 속성이 같아야 한다. 대우명제로 바꾸면, 어떤 속성이 다르면 그것은 동일한 것이 아니라고도 할 수 있다. 아래와 같은 논증을 보자.


  ① 어린이 마이클 잭슨의 피부는 검다.

  ② 성인 마이클 잭슨의 피부는 하얗다.

  ③ 어린이 마이클 잭슨과 어른 마이클 잭슨의 피부색이 다르다.

  ④ 어떤 대상의 속성이 다르면 그것은 동일한 것이 아니다.(PII)

  ⑤ 어린이 마이클 잭슨과 어른 마이클 잭슨은 다른 사람이다.(결론) 


 뭔가 좀 이상하다? 분명 어린이 마이클 잭슨이 자라서 어른 마이클 잭슨이 되는데…..PII를 어떻게 해석하고 고치는가에 따라 변화와 지속, 동일성에 대한 관점이 달라진다. 


 PII를 환기하며 록산느 커츠가 제시한 세 가지 테제를 중심으로 시간의 지속이론을 보자. 


  전체성 테제 : 개별자는 전체로서 온전하게 존재한다.

  동일성 테제 : 개별자는 변화하면서 동일성을 유지한다.

  PII 테제 : 어떤 것이 동일하다면 그것의 모든 속성은 같다.


 세 테제는 각각을 보면 자명하게 옳다. 그런데 이 세가지 테제를 한꺼번에 적용하면 모순이 발생한다. (위의 논증을 보라) 어느 테제를 포기하거나 수정하는가에 따라 시간의 지속이론을 아래 세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1) 이동지속이론


  마이클 잭슨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매순간 ‘전체’로서 온전하게 존재한다.(전체성 테제) 그리고 살아가면서 계속 변화하면서 마이클 잭슨이라는 사람의 동일성을 유지한다.(동일성 테제) 이처럼 전체성 테제와 동일성 테제를 받아들이면 PII테제가 참이 아니다. 어린이 마이클 잭슨의 속성과 어른 마이클 잭슨의 속성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런데 PII 테제를 조금 수정하면 참이 될 수도 있다. “어떤 것이 동일하다면, 그것의 모든 속성은 ‘동시에’ 같다” 라고 테제를 수정해보자. PII 테제를 ‘동시에’ 존재하는 개별자에게만 적용한다. 그러면 어린이 마이클 잭슨의 피부색이 검고, 어른 마이클 잭슨의 피부색이 하얀 상황도 PII 테제를 위반하지 않는다. 


 이동지속이론은 시간의 3차원주의에 해당한다. 존재자는 시간을 뚫고 존재한다. 누군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그는 온전한 전체로서 존재한다. 1살 때도, 10살 때도 그는 전체로서 존재한다. 그는 태어난 이래로 항상 동일한 존재다. 성장하고 살면서 변화를 겪지만 그래도 그는 같은 사람이다. 


 (2) 확장지속이론


  이 이론은 시간의 4차원주의에 해당한다. 세 가지 테제 중 전체성 테제를 포기한다. 그러면 어린이 마이클 잭슨과 어른 마이클 잭슨은 각각 온전하게 존재하는 한 명의 사람이 아니다. 어린이 부분과 어른 부분은 전체 마이클 잭슨의 시간적 부분이다. 전체성 테제를 포기하면 PII 테제에 모순이 없다. 어린이 마이클 잭슨과 어른 마이클 잭슨이 동일한 개별자가 아니라 전체 마이클 잭슨의 부분에 지나지 않으므로 서로 다른 속성을 가져도 상관없다. 


 확장지속이론에 대해 이런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이 이론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개별자의 부분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면 내가 사용하고 있는 노트북, 내가 읽고 있는 책, 내가 먹는 케이크, 그리고 나 자신조차 온전한 전체가 아니다. 그런데 어떻게 온전한 존재가 아닌 내가 온전하게 존재하지 않는 책을 다 읽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케이크 한 조각을 먹었다고 케이크를 다 먹은게 아니고, 야구 경기 1회만 보고 경기 전체를 다 보았다고 할 수 없지 않은가?


 (3) 찰나지속이론


  찰나지속이론도 시간적 부분 이론에 속한다. 확장지속이론과 달리 동일성 테제를 포기한다. 그러면 어린이 마이클 잭슨과 어른 마이클 잭슨은 동일한 사람이 아니다! 황당한 결론이 아닌가? 찰나지속이론을 따르면 어린이 마이클 잭슨과 어른 마이클 잭슨은 무슨 관계일까? 찰나지속이론을 지지하는 사람은 그 관계가 ‘상대역(counterpart)’ 이라고 설명한다. 


 ‘상대역’은 ‘상응자’라고도 하는데 양상논리학에서 나온 개념이다. 양상논리학은 표준 논리학을 확장해, 가능성이나 필연성, 당위와 허용 같은 양상(Modality)을 표현하는 논리체계이다. 예를 들어 “김구는 한국의 대통령이 될 수 있었다.”라는 문장은 가능성을 말했다. 양상논리학(그 중에서도 양상실재론-데이비드 루이스)에서 이 문장의 뜻은 다음과 같다. “상상가능한 다른 세계들 중에 김구가 대통령인 세계가 적어도 하나는 있다.” 다중우주가 무한하게 많이 존재하는데 최소한 하나의 우주에서는 김구가 암살당하지 않고 이승만 대신 대통령이 되었다는 말이다. 


 필연성을 다룬 문장은 무슨 의미가 될까? “김구는 필연적으로 백범이다.” 이 문장은 양상논리학에서 “상상가능한 모든 다른 세계들에서 김구의 호는 백범이다.” 모든 다중우주에서, 다른 세계의 모습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와 다르더라도, 김구의 호는 무조건 백범이라는 말이다. 이 이론에서는 ‘상상가능한 세계’는 물리적으로 존재한다. 그래야 가능성과 필연성을 다룬 명제가 참이 될 수 있다. 이때,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세계에서 존재하는 김구와 상상가능한 다른 세계에 존재하는 김구의 관계가 바로 ‘상대역’ 관계다. 둘은 ‘동일한’ 존재가 아니라 상대역 관계를 가지는 유사한 존재다. 


 찰나지속이론가들은 어린이 마이클 잭슨과 어른 마이클 잭슨이 동일한 사람이 아니라 ‘상대역’ 관계를 가진다고 본다. 그러면 존재하는 모든 것, 우주 자체조차 아주 ‘찰나’에 존재한다. 민수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매 순간의 민수를 모두 합쳐야 진짜 민수다. 어느 한 시점의 민수는 전체 민수의 시간적 부분일 뿐이다. 확장지속이론과 다른 점은 한 시점의 민수가 온전한 사람으로 여겨진다는 것이다. 


 (4) 테세우스의 배


  테세우스는 미노타우르스를 물리친 아테네 최고의 영웅이자 왕이었다. 아테네 사람들은 그가 타고 다니던 테세우스호를 오래 보존하기 위해 배를 구성하는 나무판자가 낡을 때마다 새 나무판자로 교체했다. 그렇게 오랜 시간이 흐르자 처음 테세우스호가 만들어질 때 배를 구성하던 나무판자는 모두 교체되었다. 이 배를 신-테세우스호라고 하자. 이 배를 원래의 테세우스호라고 할 수 있을까? 


 토머스 홉스는 한 번 더 꼬았다. 원래의 테세우스호를 이루던, 그러나 새 나무판자로 교체된 낡은 나무판자를 버리지 않고 모아서 이 판자들로 다시 테세우스호를 만들었다. 이 배를 구-테세우스호라고 하자. 그렇다면 신-테세우스호와 구-테세우스호 둘 중 어느 배가 진짜 테세우스호라고 할 수 있을까?


 ① 이동지속이론에서는 신-테세우스호가 진짜 테세우스호라고 말할 것이다. 왜냐하면, 최초에 만들어진 테세우스호가 변화를 겪으면서도 ‘전체’로서, ‘동일성을 유지’하기 때문이다. 사람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수많은 세포가 죽고, 새로 만들어지고, 심지어는 분자를 이루는 원자도 교체되지만 같은 사람이 아닌가? 배라고 뭐가 다르겠는가?


 ② 확장지속이론을 따르면 원래 배가 두 개일 뿐이다. 처음 만들어진 테세우스호가 신-테세우스호가 될 때까지 모든 시간적 부분을 합한 배가 있다. 또, 처음 교체된 나무판자에서 구-테세우스호가 될 때까지 모든 시간적 부분을 합한 배가 있다. 만약에 4차원주의까지 받아들인다면 모든 시간대가 동시에 존재하기 때문에, 애초에 배는 두 개가 존재한 셈이다.


 ③ 찰나지속이론을 도입하면 매일매일 새로운 배가 생겨났다고 볼 수 있다. 나무판자가 하나씩 바뀔 때마다 새로운 배다. 이 배들은 동일한 배가 아니라 서로 ‘상대역’ 관계를 가진다.  


  나는 세 이론에서 제시한 대답 모두가 찜찜하다. 이 문제는 누구도 명쾌하게 결론내리기 어렵다. 변화와 동일성의 관계는 논리로 따지기 어렵고 직관에 더 의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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