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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종화 Feb 04. 2020

시간 여행, 과학이 묻고 철학이 답하다(1)

시간을 둘러싸고 벌어진 논증들

3차원주의 : 시간은 흐른다. 

 (1) 과거는 지나갔고, 미래는 오지 않았으며, 오직 현재만 존재한다. (과거/미래가 존재하지 않는다)

 (2) 현재는 미래로 끊임없이 나아간다.

 (3) 세계 속의 개별자는 시간을 뚫고 존재한다.


4차원주의 :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1) 과거와 미래도, 현재와 똑같이 존재한다.

 (2) 현재가 미래로 나아가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착각이다.

 (3) 세계 속의 개별자는 시간에 걸쳐 존재한다. 



시간여행의 정의 - 분석철학자 데이비드 루이스(1941~2001)


 시간여행자의 개별시간과 외부시간이 일치하지 않는 여행이다. 


 개별시간 : 주관적인 시간이 아니다. 개별자의 객관적 시간이다. 보통의 대상이 겪는 객관적인 변화의 정도를 개별자가 겪는 변화의 정도와 비교해서 정한다. 

 외부시간 : 나와 관계없이 객관적으로 흘러가는 시간. 그리니치 표준시나 방송에서 알려주는 시간.


시간여행의 가능성


 (1) 실제적(기술적) 가능성

 (2) 물리적 가능성

 (3) 논리적 가능성* (이 책에서 다루는 가능성이다)


시간여행의 유형


 (1) 점프형 : <시간을 달리는 소녀> <닥터 후>

 (2) 지연형 : <인터스텔라>

 (3) 순환형 : 쿠르트 괴델(1906~1978)



 [터미네이터는 1984년으로 갈 수 있을까?]


 1. 사이먼 켈러, 마이클 넬슨


 (1) 시간여행은 과거/미래로 가는 여행이다.

 (2) 과거/미래는 존재하지 않는다.

 (3) 우리는 존재하지 않는 곳으로 갈 수 없다. 

 (4) 따라서 시간여행은 불가능하다. 


 2. 윌리엄 갓프리-스미스


 (1) 시간여행은 과거/미래로 가는 여행이다.

 (2) 시간여행은 가능하다.

 (3) 우리는 존재하는 곳으로만 갈 수 있다.

 (4) 따라서 과거/미래는 존재한다.


 3. 윌리엄 그레이 {도착지-비존재 논증}


 (1) 시간여행은 과거/미래로 가는 여행이다.

 (2) 3차원주의 세계에는 과거/미래가 존재하지 않는다.

 (3) 3차원주의 세계에서 시간여행은 불가능하다.

 (4) 4차원주의 세계에는 과거/미래가 존재한다.

 (5) 4차원주의 세계에서 시간여행은 가능하다.

 (6) 시간여행은 가능하다.

 (7) 따라서 세계는 4차원주의적이다. 


 4. 존 캐롤은 도착지-비존재 논쟁에 반론을 제기


 (1) “시간여행은 과거/미래로 가는 여행이다”라는 명제가 틀렸다. 시간여행은 말 그대로 과거나 미래로 가는 것이 아니라, 과거에 이미 일어난 일이나 미래에 일어날 일과 어떤 관계를 맺는 것이다. 역사학자는 실제 과거를 연구할 수 없다. 그는 단지 과거의 유물이나 유적, 혹은 책을 연구한다. 점성술사가 미래를 예언할 때, 실제 미래를 보지 않는다. 그는 미래의 이미지를 볼 뿐이다. 


 (2) “4차원주의 세계에서 (과거/미래가 존재하기 때문에) 시간여행이 가능하다”라는 명제가 틀렸다. 만약 과거로 가는 시간여행이 가능하다면, 시간여행자가 과거의 역사를 바꿀 수 있는데, 이것이 어떻게 가능하냐는 문제다. 


 * 필 도위는 여기에 반론을 제시한다. 과거로 간다고 해서 과거가 뒤죽박죽 되지 않고, 오히려 과거를 완성시킨다. <터미네이터>에서 카일 리스가 과거로 가서 사라 코너와 사랑을 나누어 존 코너가 태어났다. 시간여행과 시간여행자가 역사를 완성시킨 셈이다. 


 (3) “3차원주의 세계에는 (과거/미래가 존재하지 않으므로) 시간여행은 불가능하다”라는 명제가 틀렸다. 


 * 필 도위는 시간여행자가 출발할 때, 과거나 미래가 존재하지 않지만, 그가 도착할 때에는 과거와 미래가 존재하면 된다고 주장한다. 우리가 매일매일 내일로, 미래로 가는 것과 같다. 미래는 지금은 존재하지 않지만, 우리가 거기에 도착하는 이유는 그때에 그 미래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는 우리가 존재하지 않는 곳으로 갈 수 있다는 뜻이다. 


 5. 크리스티 밀러 {출발지-비존재 논증}


 밀러는 도위가 의도적인 속임수를 썼다고 주장한다. 시간여행의 출발지와 도착지를 바꾸어, 시간여행이 가능하다고 착각을 일으키게 만들었단다. 우리가 원래 생각했던 시간여행은 존재하는 현재에서 출발하여, 존재하지 않는 과거에 도착하는 여행이다. 그런데 존재하지 않는 미래에서 출발해, 존재하는 현재에 도착하는 여행으로 바꾸어버렸다. 밀러는 이런 꼼수도 앞뒤가 맞지 않다고 논증한다. 3차원주의에서 시간여행은 불가능하다는 결론이다. 


 (1) 시간여행은 과거/미래에서 오는 여행이다. 

 (2) 과거/미래는 존재하지 않는다. 

 (3)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 올 수는 없다.

 (4) 따라서 시간여행은 불가능하다. 


 6. 폴 다니엘스 {출발지-미결정 논증}


 (1) 시간여행은 미래에서 출발하는 여행이다.

 (2) 미래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3) 결정되지 않은 것이 어떤 것의 원인이 될 수 없다.

 (4) 따라서 시간여행은 불가능하다. 


 다니엘스는 이 논증이 ‘약한 결정론’을 받아들이면 쉽게 반박된다고 주장한다. 모든 미래가 현재에 결정되어 있다면 ‘강한 결정론’이다. ‘약한 결정론’은 현재에 앞으로 일어날 미래의 ‘일부’만 결정되어 있다는 주장이다. 터미네이터의 시간여행을 생각해보자. 터미네이터가 1984년에 도착하기 이전의 시점에서, 터미네이터의 출발은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그런데 터미네이터가 도착한 이후의 시점에서는 터미네이터의 출발이 결정된 사건이다. 아직 결정되지 않은 미래 사건이 원인이 되어 현재 사건의 결과로 나타날 수 있다. 다니엘스는 {출발지-비존재 논증}을 {출발지-미결정 논증}으로 바꾸어 이를 반박한다. 


 그레이는 4차원주의 세계에서만 시간여행이 가능하므로 세계는 4차원주의적이라고 주장한다. 도위는 이에 반대하여 3차원주의 세계에서도 시간여행이 가능하다고 논증한다. 밀러는 {출발지-비존재 논증}을 통해 도위에 반대해 3차원주의 세계에서 시간여행이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 다니엘스는 {출발지-미결정 논증}을 이용해 밀러에 반대한다. 3차원주의 세계에서도 시간여행이 가능하다는 주장이다. 



[팀은 자신의 할아버지를 죽일 수 있을까?]


 이 질문은 시간여행자가 과거로 가서 역사를 바꾸는 일이 가능한지 논증하는 문제다. 3차원주의에 따르면 시간여행 자체가 불가능하고, 4차원주의에 따르면 시간여행은 가능하지만 과거를 바꾸지 못한다. 


 1. 니콜라스 스미스 {할아버지 패러독스 논증}


 (1) 팀이 시간여행을 할 수 있다고 하자. (가정)

 (2) 팀은 할아버지를 죽일 수 있다. 팀은 좋은 총도 가지고 있고 사격 솜씨도 훌륭하기 때문이다. 

 (3) 팀은 할아버지를 죽일 수 없다. 팀이 할아버지를 죽인다면 팀은 태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4) 팀은 할아버지를 죽일 수 있고, 죽일 수 없다. (모순)

 (5) 따라서 팀은 시간여행을 할 수 없다. (결론)


 이 논증은 귀류법을 사용했다. 어떤 명제를 가정하여 모순을 유도하고, 모순이 나오므로 가정이 틀렸다고 결론을 낸다. 


 2. 데이비드 루이스가 반론을 제기하다. 


  루이스는 ‘X가 Y를 할 수 있다’는 말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X가 Y를 한다’는 사실과 다른 사실들이 함께 참일 수가 있다.(compossible)


 {할아버지 패러독스 논증}의 (4)를 루이스 식으로 다시 해석해보자. ‘팀이 할아버지를 죽인다’는 사실과 ‘팀이 좋은 총도 가지고 있고 사격 솜씨도 훌륭하다’는 사실이 둘 다 참일 수 있다. 그러므로 “팀은 할아버지를 죽일 수 있다”는 명제도 참이다. 다음으로 ‘팀이 할아버지를 죽인다’는 사실과 ‘팀이 할아버지를 죽인다면 팀은 태어날 수 없다’는 사실은 둘 다 참일 수가 없다. 따라서 “팀은 할아버지를 죽일 수 없다”는 명제도 참이다. 두 명제가 모두 참이라면 1-(4)는 모순이 아니다. 따라서 팀은 시간여행을 할 수 있다. 루이스는 ‘할 수 있다’라는 말의 뜻이 맥락에 따라 다르다는 점에서 이 논증을 착안했다. 


 3. 카드리 비벨린


 비벨린은 루이스의 주장에 반대하여 ‘X는 Y를 할 수 있다’는 말을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만약에 X가 Y를 시도한다면, X는 Y를 성공하거나 성공할 수 있을(might) 것이다. 


 이 정의에 따라 다음 문장을 해석해보자. “민수는 자전거를 탈 수 있다”를 해석하면, “민수가 자전거타기를 시도한다면, 그것을 성공하거나 성공할 수 있다”는 문장이 참이라는 것이다. “민수는 하늘을 날 수 없다”를 해석하면, “민수가 하늘을 나는 것을 시도한다면, 그것을 성공하거나 성공할 수 있다”는 문장이 거짓이라는 뜻이다. 팀의 이야기에 이 해석을 적용해보자.


 “팀이 할아버지를 죽이려 한다면, 팀은 성공하거나 성공할 수 있다”는 문장은 거짓이다. 왜냐하면 1-(2)를 보면 참이지만, 1-(3)에 따르면 거짓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1-(4)처럼 말해서는 안되고 “팀은 할아버지를 죽일 수 없다”라고 분명히 말해야 한다. 


 4. 피터 브라나스


  비벨린의 정의에 맞지 않는 사례를 들어 반박했다. “X가 Y를 할 수 있다”가 참이지만, “만약 X가 Y를 시도한다면 X가 Y를 성공하거나 성공할 수 있다”가 거짓인 경우가 있다고 했다. 민수는 노래는 아주 잘 부른다. 전국노래자랑에 나가서도 좋은 성적으로 입상할 실력이다. 그런데 무대공포증이 있어서 막상 예선심사에서는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항상 떨어진다. 이런 경우에 “민수가 전국노래자랑에 나갈 수 있다”는 명제는 참일까, 거짓일까? 비벨린의 정의에 따르면 “만약 민수가 전국노래자랑에 나가려고 시도한다면, 민수는 그것을 성공하거나 성공할 수 있다”는 거짓이다. 그러므로 “민수는 전국노래자랑에 나갈 수 없다”라고 해야한다. 


 브라나스는 비벨린처럼 생각하지 않는다. 노래 실력을 기준으로 볼 때, “민수는 전국노래자랑에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예는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다. 


 5. 김필영(이 책의 저자)


 ‘할 수 있다’는 개념이 맥락에 따라 달라진다는 루이스의 견해에 반대한다. 누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없는지를 따지려면, 관련된 모든 사실을 고려해야 한다. 민수가 전국노래자랑에 나갈 수 있느냐 없느냐 문제는 민수의 노래 실력과 관련된 모든 사실들과 함께 참인지 아닌지를 판단해야 한다. 그중에 “민수가 예선에서 무대공포증 때문에 실력 발휘를 못한다”는 사실이 있으면 “민수는 전국노래자랑에 나갈 수 없다”라고 해야 한다.


 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팀이 할아버지를 죽일 수 있는지 없는지 알려면 관련된 모든 사실들이 함께 참인지 아닌지 따져야 한다. 관련된 사실 중 하나라도 거짓이면, 이는 거짓이다. ‘팀이 할아버지를 죽인다’는 사실과 ‘팀의 할아버지를 죽이면 팀은 태어날 수 없다’는 사실은 함께 참이 될 수 없다. 따라서 “팀은 할아버지를 죽일 수 없다”


 그래서 ‘X는 Y를 할 수 있다’를 이렇게 정의한다.


 ‘X가 Y를 한다’는 사실과 함께 참일 수 없는 사실이 하나도 없었거나, 없거나, 없을 것이다.


 이 정의를 받아들이면 {할아버지 패러독스 논증}에서 (2) “팀은 할아버지를 죽일 수 있다”가 거짓이 된다. 따라서 {할아버지 패러독스 논증}은 불건전한 논증이다. 그렇다면 왜 팀은 할아버지를 죽일 수 없을까?


 [시간여행으로 과거로 간 팀이 자신의 할아버지를 총으로 쏘려고 할 때마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바나나에 미끄러지거나, 다른 누가 지나가거나, 총이 고장나거나, 조준경에 새똥이 떨어지거나…… 아무리 시도해도 실패만한다. 도대체 왜 이런걸까?]


 6. 테드 사이더 {바나나 할아버지 패러독스 논증}


 (C) 팀이 할아버지를 죽이려 했다면, 바나나 껍질을 밟고 넘어졌을 것이다.

 (D) 팀이 할아버지를 죽이려 했다면, 바나나 껍질을 밟고 넘어질 수도 있었을 것이다. 


 (C)는 팀이 시간여행을 통해 과거로 가서 자신의 할아버지를 죽이려 하면 반드시 바나나 껍질을 밟고 넘어진다는 뜻이고, (D)는 팀이 넘어질 수도, 아닐 수도 있다는 말이다. 직관적으로는 (C)가 거짓, (D)가 참인듯 하다. 사이더는 (C)를 이용해 {할아버지 패러독스 논증}을 {바나나 할아버지 패러독스 논증}으로 재구성했다. 그리고 이 {바나나 할아버지 패러독스 논증}이 잘못된 논증이라고 주장하며 4차원주의를 옹호한다.


 (1) 팀이 시간여행을 할 수 있다고 하자. (가정)

 (2) 만일 시간여행이 가능하다면, (C)는 참이다.

 (3) 직관적으로 볼 때 (C)는 거짓이다.

 (4) (C)는 참이면서 거짓이다. (모순)

 (5) 팀은 시간여행을 할 수 없다. (결론)


 사이더는 (C)가 참이라서 이 논증의 (3)이 틀렸다고 주장한다. 어째서 (C)가 참일까? 사이더는 (C)가 아래 문장 (C-1)과 같은 의미라고 본다. 


 (C-1) 팀이 할아버지를 죽이려 했는데 실패했다면, 팀은 바나나 껍질을 밟고 넘어졌을 것이다. 


 (C-1)은 (C)에 팀의 할아버지가 죽지 않는 사태를 집어넣었다. (C)가 (C-1)로 바뀌어야 하는 이유는 팀이 할아버지를 죽이는 일이 항상 실패하기 때문이다. 4차원주의에 따르면 과거, 현재, 미래가 모두 존재한다. 결정론이나 숙명론을 넘어, 미래가 이미 존립하고 있는 상태다. 이런 세계에서 과거를 바꿀 수 없다. 그러므로 시간여행이 가능하다 해도, 과거를 바꾸는 일은 어떻게든 실패하게 마련이다. 



[엘비스 프레슬리는 젊은 시절의 자신을 만날 수 있을까?]


 엘비스 프레슬리는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락의 황제’였’다. 마흔이 넘은 그는 군대에서 전역한 후 점점 시들어가는 인기에 상심해 약물에 빠졌다. 지금은 100킬로그램이 넘는 뚱보가 되었다. 그의 지인 중 뛰어난 과학자가 타임머신을 개발한다는 소식을 듣고, 그는 젊은 날의 자신에게 찾아가 절대 약물에 빠지지 말라고 충고하려고 한다. 그는 젊은 시절의 자신을 만나 약물에 빠지지 말라고 충고하여 자신의 지금 모습을 바꿀 수 있을까?


{엘비스 패러독스 논증}

 (1) 엘비스는 시간여행을 할 수 있다. (가정)

 (2) 중년의 엘비스는 시간여행을 하여 젊은 자신을 만날 수 있다.

 (3) 젊은 엘비스는 날씬하다.

 (4) 중년의 엘비스는 뚱뚱하다. 

 (5) 엘비스는 날씬하면서 뚱뚱하다. (모순)

 (6) 시간여행은 불가능하다. (결론)


 이 논증은 가정을 전개시키면 모순이 일어나 가정이 틀렸다고 결론내리는 귀류법 논증이다. 


 1. 테드 사이더


  사이더는 4차원주의를 받아들이면 이 논증의 (5)가 모순이 아닐 수 있다고 주장한다. 3차원주의에 따르면, 개별자는 시간을 뚫고 지속한다. 엘비스는 과거부터 지금까지 자신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존재하고 있다. 과거의 날씬한 엘비스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사라졌고, 지금은 뚱뚱한 엘비스만 남아 있다. 3차원주의를 따르면 엘비스는 날씬하면서 뚱뚱할 수 없다. 


 4차원주의에서 존재는 3차원주의와 다르다. 4차원주의에서 개별자는 시간에 걸쳐 지속하는 존재자다. 엘비스는 과거-현재-미래에 걸쳐 한꺼번에 존재하고 있다. 그러면 엘비스는 과거부분, 현재부분, 미래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를 시간적 부분이라고 한다. 시간을 공간처럼 활용한 개념이다. 엘비스가 공간적으로 머리 몸통 다리 팔 등으로 이루어진 것처럼 시간적으로도 과거부분, 현재부분, 미래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뜻이다. 논리적으로 현재부분이 과거부분을 만나는 자체는 가능하다. 대신, 중년의 엘비스가 날씬해질 수는 없다. 4차원주의를 따르면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시간적 부분이 한꺼번에 존재한다. 이는 이미 결정된 사실을 바꿀 수 없다는 의미다. 


 닉 에핑햄은 사이더의 주장에 의문을 제기한다. 과거 엘비스와 중년 엘비스가 만났을 때, 날씬한+뚱뚱한 엘비스의 모습이 너무 기이하다는 것이다. 이때, 엘비스의 눈은 4개, 코는 2개, 체중은 60+100이다. 


2. 네드 마코시안


 마코시안은 3차원주의를 받아들여도, (5)가 모순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민수의 오른손이 가냘프고, 왼손이 두툼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엘비스의 어떤 부분은 날씬하고 어떤 부분은 뚱뚱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1. 사이더의 해법과 같은 반론을 맞닥뜨린다. 사이더 해법에서는 시간적 부분이 이상했지만, 마코시안 해법에서는 엘비스라는 사람 자체가 기이하고 어느 부분이 날씬하고 어느 부분이 뚱뚱한지도 알 수 없다. 


 더 결정적인 반론은 크리스티 밀러가 제기한 마코시안 해법이 부분과 전체의 관계가 맞지 않다는 주장이다. 어떤 쇠막대로 숯을 뒤집을 때, 숯이 닿는 부분은 뜨겁고, 손으로 잡는 부분은 차가울 수 있다. 바나나의 껍질은 노랗고, 속살은 하얗다. 이는 부분과 전체의 관계에서 각 부분이 다를 수 있는 정상적 관계다. 그런데 엘비스의 경우에 날씬한 사람과 뚱뚱한 사람이 전체의 부분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렇다고 할 수 없다. 부분과 전체의 관계가 비정상적이다. 


 3. 사이먼 켈러와 마이클 넬슨


  켈러와 넬슨은 개별시간과 외부시간의 개념을 이용하면 3차원주의에서도 (5)가 모순이 아닐 수 있다고 주장한다. 개별시간은 개별자가 겪는 객관적인 변화의 정도를 기준으로 측정하는 시간이고, 외부시간은 개별자와 상관없이 객관적으로 흘러가는 시간이다. 날씬한 엘비스와 뚱뚱한 엘비스가 만난 시점은, 외부시간으로 보면 동시지만, 개별시간의 관점에서는 동시가 아니다. 왜냐하면 날씬한 엘비스의 생체 나이는 젊고, 뚱뚱한 엘비스의 생체 나이는 중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엘비스가 날씬하면서 뚱뚱하다는 문장은 모순이 아니다. 


 사이더는 개별시간의 개념을 반대한다. 개별시간은 편의를 위해 임의로 측정한 양일 뿐이므로 객관적인 시간처럼 사용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4. 존 캐롤


 캐롤은 시간여행 자체가 이미 상식적인 사건이 아닌데 엘비스가 동시에 날씬하면서 뚱뚱한 정도가 문제가 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시간여행 자체가 이상한 일인데 그런 세상에서 뭔들 일어나지 못하겠는가?


 * 라이프니츠의 동일자의 구별불가능성 원리(Principle of Indicernibility of Identicals, PII)


 “엘비스는 날씬하면서 뚱뚱하다”는 명제가 모순인 이유는 PII를 위배하기 때문이다. 날씬한 엘비스와 뚱뚱한 엘비스가 동일한 사람이라면 구별할 수 없어야 하는데, 날씬한 엘비스와 뚱뚱한 엘비스는 명백히 구분된다. 3. 켈러와 넬슨은 개별시간 개념을 끌어들여 PII를 비켜간다. 4. 캐롤은 시간여행에서는 PII를 적용할 수 없다고 주장한 셈이다. 



 시간여행을 논리적으로 다룬 문제와 논증을 보면 놀랍도록 단순하고, 놀랍도록 말이 안되는 듯 보인다. 이는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시간 자체가 기이한 개념이기 때문이다. 기이한 개념을 다룰 때는 가장 기초부터 시작할 수밖에 없다. 한편, 3차원주의와 4차원주의도 여러 다양한 갈래로 나눌 수 있지만 크게 두 주의로 대강 구분할 수 있다. 어느 정도는 시간이라는 개념이 정합성을 갖추어야 하기 때문이다. 거칠게 보면 3차원주의는 시간여행은 논리적 모순이므로 불가능하다는 입장이고, 4차원주의는 시간여행이 가능하지만 역사적 사실을 바꿀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3차원주의에서는 과거는 이미 일어났다가 사라졌으므로 바꿀 수 없고, 4차원주의는 과거 현재 미래가 한꺼번에 존재하니까 바꿀 수 없다. 시간여행을 다룬 영화나 창작물에서 어떤 사실을 바꾸기 그렇게 어려운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을까? 자유로운 상상이지만 어느 정도는 논리적 정합성을 맞추려는 노력을 한 셈이라고 생각한다. 아니면 영화나 창작물에서 일어난 사건이 실은 역사를 바꾼 것이 아니라 역사를 완성시켰다 생각하는게 맞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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