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서니 제임스 전 - 오페라 갤러리
우연히 오페라 갤러리에서 개최하는 앤서니 제임스 전시를 소개하는 기사를 봤다. 사진에 나온 작품이 멋지고 인상 깊게 남아서 전시를 보러 갔다. 연휴 한 가운데 일요일에 방문했다. 도산 공원 바로 건너편에 있는 갤러리 건물을 들어서니 무더운 바깥과 단절된 새로운 세상이 나타났다.
50’’ Icosahedron, stainless steel, specialized glass, LED lights, 127*127*127 cm, 2019
‘아이코사히드론’은 20개의 정삼각형으로 이루어져 있다. 내부에 직선 조명과 거울이 있어 안을 들여다보면 끝없이 계속되는 무한의 기하학적 이미지가 눈을 사로잡는다. 이상의 시 ‘건축무한육면각체’가 현대적으로 탄생한 작품같다. 작품 설명에서 두려움과 숭고미를 동시에 느끼게 한다고 말했는데 정확하다. 정갈한 LED조명과 거울이 펼쳐낸 시각 이미지는 무한대로 이어져 심연으로 빨려드는 듯한 두려운 감정을 일으킨다. 그러나 미술관에서 시원한 에어컨 바람 아래에 서서 조각을 바라보고 있는 나를 의식하면 두려움은 숭고의 감정으로 이어진다. 무한의 공간감은 곧 우주의 신비를 떠올리게 하고 미지의 세계에 대한 두려움은 이내 인식을 초월한 대상을 우러르게 된다. 그 앞에 선 나는 한없이 초라해지다가 이런 감정과 인식을 얻은 일에 자부심을 가진다. 나 자신을 위압하는 대상에게 아름다움을 느끼는 감정이 바로 숭고미다.
에드먼드 버크(1729~1797)는 영국의 철학자이자 정치가로 미학에서도 중요한 발자취를 남겼다. 그는 아름답고 조화로운 것에서 인식할 수 있는 보편적인 미적 감정이 사실은 거대하고 두려우며 기괴한 것에서 야기되는 숭고의 감정과 동일한 기원에서 나온다고 주장했다. 이런 주장은 이후 칸트의 미학과 철학에 영향을 주었다. ‘숭고’의 미학은 그때까지 위압적이고 인간의 활동을 방해할 뿐이었던 자연대상을 미적 쾌감을 주는 대상으로 ‘발견’하고 ‘전도’했다. 알프스 산맥, 나이아가라 폭포, 애리조나 계곡 등이 이렇게 숭고한 감정을 주는 자연이 되었다. 칸트는 버크의 전도를 다시 전도한다. 숭고함을 느끼는 주체는 자연물이 아니다. ‘나’라는 주관 안에서 숭고함의 이념이 있다. 숭고함의 주체는 자연대상이 아니라 감정을 느끼는 사람이다. 두려움, 아름다움, 그리고 자부심으로 이어지는 감정의 흐름이 버크와 칸트의 미학과 이어질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다.
여기까지 생각하고 전시 설명글을 보는데 전시 제목이 TRANSCENDENCE, 곧 초월이다. 이 단어는 인식이나 경험의 범위 밖에 있는 것을 의미한다. 초월의 전형은 바로 신이다. 그러나 나는 ‘초월’이란 말을 들으면 칸트가 떠오른다. 칸트의 철학을 소개할 때 흔히 초월철학이라고 말한다. 칸트의 ‘초월’ 개념은 일상 용법과 차이가 있다. 사전적 의미가 단순히 인식과 경험의 범위 바깥에 있는 것이라면, *칸트 철학에서는 “모든 경험에 선행하면서도, 오직 경험 인식을 가능하도록 하는 데에만 쓰이도록 정해져 있는 어떤 것을 의미한다.” 초월적 인식이란 어떤 하나의 대상 인식이 아니라,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정초적 인식, 곧 표상이나 개념 또는 원리 같은 것을 말한다.
*백종현의 논문 <칸트철학에서 ‘선험적’과 ‘초월적’의 개념 그리고 번역어 문제>에서 인용
앤서니 제임스는 이런 말을 했다.
“나의 의도는 무한대, 즉 우주와 같은 불가능한 개념을 물리적이고 객관적인 존재로 끌어내는 것이다. 과학, 영성, 철학을 내가 아는 가장 순수하고 정직한 방법으로 표현하려 한다. “
나는 이 말이 곧 칸트의 초월철학과 일맥상통한다고 생각한다. 작가는 불가능한 개념을 물성을 느낄 수 있는 구체적 사물로 표현했다. 이 작품 안에 그가 표현하고자 하는 모든 개념을 담을 수는 없다. 그럼에도 관람자는 이 작품 속에서 ‘무한’과 ‘질서’를 동시에 본다. 이를 통해 작가의 의도를 짐작할 수 있다. 칸트의 초월철학은 ‘신’과 같은 ‘초월적’ 존재를 해명하는게 아니라, 인간의 인식을 가능하게 하는 원리를 제시한다. 이 원리가 우리의 물리적 경험을 ‘초월’해 있는 것이다. 앤서니 제임스가 우주와 같은 무한의 개념을 하나의 작품으로 표현할 수 있는 원리가 바로 ‘초월’의 개념이 아닐까? 그러니까 이 전시 제목 ‘초월’이 나타내는 바는 우리의 경험적 인식을 넘어선 어떤 존재만을 뜻하지 않는다. 그런 존재조차도 표현할 수 있는 우리 인식의 ‘초월’성까지 나타낸다. 앤서니 제임스의 작품 몇 가지를 더 소개하겠다.
50’’ Octagon Wall Portal, Powdercoated stainless steel, Glass, LED Lights, 127*127*38.1 cm, 2019
50’’ Pentagram(Solar Black), Stainless steel, Glass, LED Lights, 127*127*127 cm
작은 전시실 한 곳에서 모두 볼 수 있는 소규모 전시다. 그렇지만 이 작품들을 보는 내내 놀랍고, 신비하며, 즐거웠다. 앤서니 제임스의 작품을 관람한다면 후회 없는 경험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