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라이밍

개인적 욕망과 출산, 그럼에도 불구하고.

by 별빛

<클라이밍>은 공포·스릴러 장르 영화들의 연이은 개봉과 더불어 미국 여름 시즌 대표 외화 대작의 개봉시기인 6월에 개봉하였다. 트리플픽쳐스의 디지털 배급 아래 전국 110여 개의 스크린을 확보하여 극장 개봉된 <클라이밍>은, 2017 한국영화 아카데미 장편 17기 과정 프로젝트로 출발하여, 약 3년간의 시기를 거쳐 제작되었다. 이 영화의 특이점은 포스터만 보아도 알 수 있는데, ‘3D 애니메이션 작화의 2D화’ 즉 작화방식에 차별화를 두어 관객으로 하여금 특이하고 괴기한 느낌을 자아낸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기존의 콘텐츠에서 다루었던 것과는 반대로 임신과 출산에 대한 여성의 심리를 긍정적 측면에서 바라보는 것이 아닌, 그것에 대해 공포를 겪는다는 시각에서 이야기한다. 즉 <클라이밍>의 주인공 ‘세현’은 임신과 출산의 과정 속에서 극도의 불안을 겪는 인물로 표현되는데, 이는 주제의 희소성을 겨냥하기 위한 감독 본인의 임신 중 가졌던 감정을 영화로써 풀어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주인공 ‘세현’은 국내대회에서 정상의 자리를 유지하고 있지만, 원치 않은 임신으로 경력 단절의 위기를 겪는 클라이머이다. 때문에 임신 전후의 자신이 변화하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유 모를 예민과 낯섦으로 망상과 악몽에 빠진다. 이는 과거와 현재/꿈과 현실 사이의 경계가 불분명한 혼란의 상태, 즉 시공간의 부조화를 유발시킨다. 여기서 관객들은 스토리 전개의 이해를 위한 별도의 노력을 해야 하는데, ‘지금의 세현은 꿈/현실 혹은 과거/현재 중 누구인가?’라는 의문이 영화가 진행될수록 심화된다. 영화는 이러한 시공간의 사이의 부조화를 과거(영화 초반, 관객들로 하여금 과거로 인식하게 하는 시간을 일컫는다. 이는 영화가 진행되면서 서로 다른 차원의 이야기었음을 알게 한다.) 사고로 고장 났었던 그녀의 스마트폰에 자신으로부터 온 메시지라는 매개체로써 잇는다. 스마트폰으로 연결된 자신과의 대화는 ‘과거’의 세현과 ‘현재’의 세현 사이에서 자의와 상관없는 행동을 유발시키곤 하는데, 과거 남편 ‘우인’의 부재를 현재의 상황에서 해소하고자 하는 모습으로 대표된다. 그러나 이는 앞서 언급했듯 관객으로 하여금 서로 다른 차원의 이야기, 즉 평행세계 속 두 인물에 관한 것이었음을 알게 한다. 거듭 암장-집-대회를 반복하는 세현과 시어머니의 집에서 단둘이 있는 세현을 대비시키며, 물리적 공간의 차이로써 이를 암시하고 있다. 영화 말미, 각자의 욕구 충족을 위한 공간의 침범은 이러한 비대칭적 구조를 해소시키며 비로소 두 시공간이 평행 세계였음을 일깨우고 ‘진짜’ 세현을 등장시킨다. 어째서인지 멍한 눈을 하고 출산 후 아기를 안고 있는 세현은, 영화 전반을 이끌며 대립과 긴장의 관계를 유지한 ‘두 세현들’이 극도의 불안이 야기한 자신의 망상이었음을 그것의 잔상이 사라진 이후에 깨닫게 된다. 그와 더불어 젖을 무는 아기로 인해 일말의 고통을 호소한 세현은, 이전의 혼란을 담담히 받아들이는 듯한 모습을 보이며 비로소 엄마가 되기 위한 첫걸음을 딛는 것으로 영화는 마무리된다.


이처럼 독특한 작화방식과 참신한 소재로 개봉 전부터 기대를 모았던 <클라이밍>은 누적관객수 6,318명을 동원하였다. 그러나 개봉주차 당시 독립예술영화 전체 박스오피스 1위를 달성하였을 뿐만 아니라, 상업영화 시장에서 개봉일 당시 박스오피스 10위에 진입하며 관객들의 주목과 기대를 한 몸에 받았다. 이미 박스오피스는 5월에 개봉했던 <크루엘라>와 <분노의 질주:더 얼티메이트>, <콰이어트 플레이스2> 등의 외화 대작들이 장악하고 있었고, 대형 배급사의 블록버스터급 영화인 <발신제한>의 개봉을 앞두고 있는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도대체 어떠한 방식의 마케팅 전략이 이러한 흥행을 만들어낸 것일까? 조사 결과, 4가지 요인으로 이를 설명할 수 있다. 먼저 한국영화 아카데미의 신작이라는 기대감을 관객들에게 적절히 어필하였다. 봉준호, 조성희, 장준환 감독 등 한국의 대표 영화감독들을 배출시킨 한국영화 아카데미는 양질의 콘텐츠로 관객들의 기대감을 충족시킨 선례가 있기에, <클라이밍> 또한 홍보·마케팅 전략 중 하나로 이를 강조한 바 있다. 두 번째로, 공포·스릴러 장르 마니아 혹은 애니메이션 마니아라는 특정 관객층을 타겟으로 한 마케팅 특수를 활용하였다. <클라이밍>은 안시 국제애니메이션 페스티벌 장편 경쟁부문에서 한국 애니메이션 유일의 공식 초청작이며 2020 부천국제애니메이션 페스티벌에서 2관왕을 하는 등 화려한 수상 이력이 있다. 심지어 정식 극장 개봉의 확정이 가능해진 것도 부천에서 개최된 위 페스티벌에서 영화를 관람한 관객의 익스트림 무비 리뷰글이 화제가 되어 배급사가 극장 개봉을 적극적으로 추진했기 때문이다. (6월 8일, 롯데시네마 건대입구에서 영화 커뮤니티 익스트림 무비와 함께 했던 단독 GV 시사회가 있었다.) 즉 공포영화/애니메이션의 마니아들이 먼저 발견한 영화라 할 수 있겠는데, 이는 개봉 직후 명확한 타겟층 관객 확보를 위한 효과적인 마케팅 전략의 발판으로써 작용하였다. 세 번째, K-애니 대표 감독들과 언론평단의 극찬이 위 영화를 일반 대중들에게 인지시켰다. 독립예술영화는 특정 관객층이 아닌 이상 일반 대중들은 그러한 영화가 개봉하는지조차 모르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그러나 <클라이밍>은 <서울역>, <돼지의 왕>으로 대표되는 연상호 감독과 <기기괴괴 성형수>의 조경훈 감독의 극찬을 담은 영상을 공개하며 대중적 인지도를 쌓았다. (5월 24일, 롯데시네마 페이스북에 공개된 메인예고편 공개영상이 하루만에 30만뷰, 1000개의 댓글을 기록하며 인기 동영상에 등극한 결과가 나타났다.)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마지막 요인을 들 수 있는데, 앞서 개봉하여 10만의 관객을 동원한 <기기괴괴 성형수>와의 평행이론을 강조한 마케팅 전략을 활용하였다. 위 영화의 디지털 배급사인 트리플픽쳐스의 블로그를 통해 <클라이밍> 홍보·마케팅 전략을 살펴보면, 위와 같은 내용을 강조하여 다방면으로 활용한 포스트들이 다수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클라이밍> 관람 이후 드는 주관적 생각을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클라이밍>의 감독은 임신 또한 일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하여 우리네 일상 속에 평범하게 자리 잡은 ‘클라이밍’이라는 소재를 제목으로 선정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를 보다 심도 있게 살펴보기 위해서는 ‘클라이밍은 무엇을 의미하는가?’부터 알아야 한다. 개인적으로 ‘클라이밍’이란 자력으로 다양한 경로를 통해 위로 ‘올라가는’ 행위를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때문에 필연적으로 그것의 목표는 정상이 될 수밖에 없다. 주인공 세현은 이러한 클라이밍을 직업으로 선택한 클라이머로, ‘세계대회 출전’이라는 욕망과 더불어 직업인으로서의 외적 제약이 없는 자유로운 환경을 원망(願望)한다. 그러나 원치 않는 임신이 걸림돌이 되어 이의 충족을 제한하는데, 이것이 임신에 대한 거리낌을 증폭시키는 요인으로 판단되어진다. 때문에 세현의 후배인 ‘아인’의 등장과 그녀의 배경적 조건은 주인공으로 하여금 ‘직업과 아기’, ‘개인적 욕망과 아기’ 라는 가치를 양자택일해야만 하는 대립적 구조로써 인식하게 한다. 여기서 우리는 영화적 전개의 난해함과 불친절함에 별도의 이해하기 위한 노력을 요구받아왔음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진행될수록 임신을 겪었던 여성이라면 누구나 이해하고 공감이 가능한 감정의 도출을 느낀다. 이는 ‘세현’의 고민과 불안이 사실적이기 때문이라 생각되어진다. 최근 불거진 남양유업의 육아휴직 이후 가해진 복귀여성에의 인사 불이익 사례는 ‘세현’의 선택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 실재한다는 것을 입증한다. 따라서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나로써 살 것인가, 남을 품은 채 살고 품은 뒤의 삶을 살 것인가?’는 엔딩 크레딧이 올라간 뒤에도 우리에게 생각의 여지를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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