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영화만 보면 잠을 자는 이유

다 저 때문입니다...

by 승주연

나는 대학교에서 러시아어를 전공하고, 석사 때도 러시아어 언어학을 전공했다. 석사 졸업 후에는 러시아 전문 센터에서 러시아어 강의도 하고, 한국 소설을 러시아어로 번역하는 일을 했다.

현재까지 나는 러시아 소설을 한국어로 번역하거나, 러시아어 시험 감독관 일을 하기도 하고, 러시아어 강의도 하며, 다양한 행사에서 강연도 하고, 팟캐스트에 출연해서 녹음도 하면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그러니까 하루 중 절반 이상을 러시아어로 소통하거나 번역하거나 일을 하는 데 쓰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문제는 한국어와 러시아어가 서로 달라도 너무 많이 다른 언어라는 것이다. 논리 체계도 다르고, 사고의 흐름도, 문화도 너무 상이해서 이 두 언어 사이에서 탁구공처럼 이리저리 치이다 보면 저녁 무렵에는 너덜너덜해지곤 한다.

이를테면 나는 이런 고민을 한다.

한국어 원문에 '주인공이 컵에 입술을 갖다 댔다'라고 한다면, 러시아어로 옮길 때는 컵을 들어서 입술에 갖다 댔는지 컵은 가만히 있고, 몸을 숙여서 입술을 컵에 갖다 댔는지를 유추하거나 알아낸 후에 번역해야 한다.

아주 간단한 예를 들면, 한국어로 '나 8시까지 갈게.'를 러시아어로 번역하려면, '간다'는 것이 도착을 의미한다는 것을 이해한 후에 '도착하다'라는 동사를 써서 번역해야 한다. '이가 아파서 왔어요'라는 간단한 문장이라도 러시아어로는 아픈 이가 하나인지 2개 이상인지 알아내서 이에 걸맞은 동사의 형태를 사용하여 번역을 해야 한다. 같은 표현이라도 전혀 다른 의미를 나타내는 경우가 있는데, 예를 들면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라는 속담의 경우 한국어에서는 '반복되는 지루한 일상'을 의미하지만, 러시아어에서는 '굉장히 열심히 (사는 모습)'을 의미한다.

같은 동작이라도 수없이 많이 쪼개고 논리를 표현하기 위해서 수없이 많은 접속사를 사용하는 러시아인들은 개떡 같이 말해도 찰떡 같이 이해하지 못하고, 개떡 같이 말하면 개떡 같이 알아듣는다. 하지만 그에 반해 한국어는 러시아어보다 덜 구체적이며, 많은 행위를 다소 모호하게 표현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개떡 같이 말해도 상대방이 찰떡 같이 알아듣기를 바라는지도 모른다. 이렇게 서로 다른 두 개의 행성 사이를 하루 종일 멀미 나도록 왔다 갔다 하다가 저녁이 되면 제한된 용량으로 간신히 버티던 내 뇌는 과부하로 인해 파업을 선언하게 된다. 결국 내 뇌 속에 있던 생각의 스위치는 꺼지고 나는 정말 생각을 안 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영화를 보거나 책을 읽는 행위는 대부분 하루 일과가 끝난 저녁이나 밤에 한다.

그리고 자주 나는 남편과 함께 영화를 본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이미 생각의 스위치가 고장 난 내 뇌는 생각을 안 하고, 그런 나는 종종 영화의 줄거리에 집중을 하지 못한다. 똑같은 장면을 보고도 나는 연신 '왜? 왜 저 사람은 저길 간 거야? 왜 역관이 되면 코끼리를 태워주는 거야? 저 여자는 저 남자 부인인가?'와 같은 질문으로 남편을 괴롭히게 된다. 그러면 남편은 '저 여자를 지켜주려고 간 거지. 역관이 되면 태국을 갈 거고, 태국에는 코끼리가 있으니까 코끼리를 태워준다는 거잖아. 그게 이해가 안 돼?'라는 식으로 대답을 한다. 그리고 내 질문에 하나하나 대답을 하면서 남편은 점점 영화를 보는 것이 아니라 영화 과외를 하는 것 같은 기분을 느끼고, 자기도 모르게 코를 골고 있는 것이다.

물론 그 이후로 나는 혼자 상상의 나래를 펼치면서 영화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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