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마

화장실에서?

by 승주연

남편은 평일에 왕복 4시간이 걸리는 거리에 있는 회사에 출퇴근을 하기 때문에 평소엔 늘 수면 부족에 시달린다. 외모만 봤을 때는 예민해 보이지 않지만 잠귀가 나보다 훨씬 밝은 편이다. 즉, 자다가 잘 깨고, 또 한 번 깨고 나면 다시 잠이 드는 데에 시간이 걸린다. 그런 남편은 저녁 9시쯤 되면 거실 바닥이든지 소파 위에서든지 어디서든 잠이 들기 일쑤였고, 잠자는 자세는 잠들기 직전까지 하던 일과 밀접한 연관이 있었다. 뭔가를 만들다가 잠이 오면 손에 뭔가를 든 채로 자고 있고, TV를 보다가 잠이 들면 소파에 기댄 채로 잠이 들어 있곤 했다. 누워 있을 때도 있고, 엎드려서 잠이 들기도 했으며, 어딘가로 가려고 했을까 싶은 묘한 자세 그대로 잠이 들어있기도 했다. 마치 어린아이들처럼 말이다.


그런데 점심 식사 후에 남편이 보이지 않았다. 나는 두 귀를 쫑긋 세웠다. 어딘가에서 자고 있다면 코 고는 소리가 들릴 테니까 말이다. 아니나 다를까 어딘가에서 '드르렁드르렁'하는 흥겨운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아직 소리가 나는 장소를 특정하기는 어려웠다. 그런데 화장실 쪽을 보니 문이 닫혀있었고, 소리는 그 근처에서 나는 듯했다.


순간 '설마?' 하는 의구심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화장실에 아무도 없다면 보통은 문이 열려 있었는데 마침 문도 닫혀있었다. 딸과 함께 거실에 있던 나는 딸에게 말했다.


''윤미야, 아빠가 화장실에서 잠든 것 같아.''

''네?"

''응, 화장실 문도 닫혀있고, 아빠 코 고는 소리가 그쪽에서 나는 것 같아.''

''진짜 그런데요? ㅋㅋㅋ''

''그리고 아빠 평소에도 뭔가를 하다가 그 자세 그대로 잠이 들곤 하잖아. 화장실에 갔는데 졸음이 쏟아져서 잠이 든 건 아닐까?''

''아빠라면 그럴 수 있을 것 같아요.''

''어? 저기 안방에 누군가가 있는데?''

''어? 진짠데요! 아빠 발인 것 같아요.''

''난 또... 화장실에서 잠들었으면 재미있었을 텐데. ㅎㅎㅎ''


*사진은 내가 좋아하는 러시아 인형 '체부라시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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