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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승주연 Jan 19. 2022

이벤트 소동

택배 

 인스타그램 팔로워 수가 2200명이 넘었고, 마침 새해가 시작된 지 얼마 안 돼서 나는 인스타그램 이벤트를 하기로 결심했다. 나름 내가 번역한 ''티끌 같은 나'', 도스토옙스키 커피, 러시아제 초콜릿까지 해서 독서 세트라는 것을 만들어서 이벤트를 했다. 처음에는 친구 태그도 하고 댓글을 남긴 사람 중에 추첨을 통해서 뽑겠다고 적었다. 하지만 이틀째가 돼도 이벤트에 응모하는 사람은 없었고, 이벤트가 끝나기까지 하루하고도 절반이 남은 시점에서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그래서 나는 연락을 받으면 반가워할 친구들이나 제자들에게 연락해서 이벤트 소식을 알렸다. 그리고 추첨이 아닌 선착순으로 바꿨고, 결국 이벤트는 하루 일찍 끝났다. 이제 택배만 보내면 된다. 


 나는 정성스럽게 책에 그 사람에 맞게 글도 적고 나름 사인도 하고 몇 번이나 확인한 후에 택배를 보냈다. 이제 이벤트에 당첨된 내 제자나 내 친구들이 택배를 받고 보내는 메시지를 보면서 흐뭇해하는 일만 남았다. 친구 H한테서 카톡 메시지가 왔다. 


''주연아, 택배 잘 받았어! 그런데 책에 S 이름이 적혀있는데?'' 

''뭐? 그럴 리가... 내가 몇 번이나 확인했는데.''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두 눈을 아주 크고 세게 뜨고도 믿기 힘든 일이 벌어져있었다. 택배가 바뀐 것이었다. 불길한 예감이 서서히 고개를 들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이 불길한 예감이라는 녀석의 고개를 꾸욱 누르며 S의 책은 B에게 가있길 간절히 바랬다. 걱정도 되고, 그래도 일이 생각보다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길 바라는 마음을 적절하게 섞어서 친구 S한테 연락했다. 


''S야,  너 혹시 택배 받았니?''

''내가 아직 집이 아니긴 한데, 집에 택배는 왔다는데?'' 

''그게, 저기, 혹시 책에 네 이름이 안 적혀 있어도 놀라지 마... 네 책은 H한테 갔나 봐.'' 

''ㅋㅋㅋㅋㅋㅋㅋㅋ 괜찮아. 잠깐만 내가 집에 전화해서 확인해볼게.'' 

''응. 제발 H 책이 너한테 있는 거였으면 좋겠다.'' 

''그게.... Y라는 학생 택배가 나한테 왔는데?'' 

''완전히 섞였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가 있지? 내가 몇 번이나 확인했는데. '' 

''괜찮아. 승샘.ㅋㅋㅋ'' 


그리고 나는 또 다른 학생들에게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냈다. 

''K야, 너 혹시 택배 받았니?'' 

''선생님, 아니요. 제가 아직 집이 아니라서요.'' 

''혹시, 책에 네 이름이 안 적혀 있더라도 놀라지 말라고. 택배가 섞였어. 그것도 완전히.'' 

''네, 괜찮아요.'' 


이벤트도 그렇고, 사인이라는 걸 한 것도 그렇고 내가 뭐 그리 대단한 사람이라고 허세를 부렸나 싶은 생각과 함께 내 실체를 들킨 것 같아서 얼굴이 화끈거렸다.  


#택배소동 #이벤트 #인스타그램 #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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