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승주연 Jan 22. 2022

다분히 목표지향적인

뼈해장국 

 어젯밤에 잠자기 전에 나는 굳게 다짐했다. 아침에 꼭 뼈해장국을 먹고 학원 수업을 하겠다고 말이다. 평소보다 이른 5시 50분에 일어나서 머리를 감고 딸아이 점심까지 차려놓고 남편과 나는 함께 집을 나왔다. 


 우리는 7시 15분 차를 안정적으로 탔고, 모든 것은 평소와 다를 바 없어 보였다. 하늘도 파랗고, 겨울 날씨는 여전히 자신의 존재감을 확실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그런데 잘 가던 지하철이 갑자기 동작역쯤에서 오랫동안 서있더니 상행선 지하철들이 멈춰있다는 방송이 나왔다. 아직 갈 길은 멀었고, 문을 계속 열어놔서 발도 시리고 (하필 오늘 구두를 신고 올게 뭐람!) 내 머릿속은 어젯밤에 자기 전부터 온통 '뼈해장국'으로 가득 차 있었다. 오늘 아침에 내가 반드시 해야 할 일은 '든든하고 맛있는 뼈해장국을 먹는 것'이다. 이때부터 나는 머릿속으로 생각하기 시작했다. 어떻게 하면 늦지 않게 도착해서 뼈해장국을 먹고 출근을 할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을 세상에서 가장 진지한 표정을 지으면서 하고 있을 즈음 '삼각지역' 도착을 알리는 방송이 나왔다. 나는 서둘러 가방을 챙겨서 내렸다. 6호선은 괜찮을 거고, 그러면 내가 정말 그토록 먹고 싶어 하던 뼈해장국을 먹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청난 인파 속에서 내가 낼 수 있는 최대 속력으로 환승 통로를 따라 걸어서 무사히 6호선 지하철을 탔다.곧이어 남편한테 카카오톡으로 메시지를 보냈다.


-당신은 어디야? 

-난 아직... 지하철역이 가다 서다를 반복하고 있어. 당신은? 

-나 해장국 먹고 싶은데... 

-못 먹을 것 같은데. 도착하면 9시 30분일걸? 

-나 사실 조금 전에 4호선 버렸어. 

-뭐? 

-나 6호선 지하철 탔어. 

-진짜? 그러면... 먹을 수도 있겠네. 미리 주문해놔. 

-민망하게. 한 그릇을... 

-네이버 예약으로 주문하면 되지. 


잠시 후에 남편한테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냈다. 


-나 정확하게 9시에 도착했어. 그리고 뼈해장국 빨리 나온대. 

-맛있게 먹어. 

-응. 정말 맛있어. 내가 자기 전에 생각했던 그 맛이야! 


뼈해장국을 다 먹고 계산을 하려고 하는데 사장님이 마침 식사를 하고 계셨다.


-매번 죄송해요. 식사하시는데. 

-여기 다닌 지 오래됐죠? 결혼하기 전부터 다닌 것 같은데. ㅎ 

-기억하시네요? 네. 세월이 많이 지났죠. 그럼 수고하세요. 


문득 사장님은 나를 어떻게 기억하시는 걸까? 혼밥이라는 것이 낯설 때부터 당당하게 혼밥을 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러시아 선생님들과 같이 와서 러시아어로 대화하면서 밥을 먹었기 때문일까? 그것도 아니면 내가 뼈를 잘 못 발라먹어서 기억하시는 걸까? 


밥을 다 먹고 나오는데 남편한테서 또 카카오톡 메시지가 왔다. 

-헉. 이젠 열차 고장이라고 내리래.  그런데 안 내리고 버티는 사람들도 있어. 많이 안 내렸는데 열차는 그대로 출발했어. 

남편은 그 열차에서 결국 내린 것 같았다. 

잠시 후에 남편으로부터 카카오톡 메시지가 왔다. 

-그런데 아까 그 고장난 열차 타고 간 사람들은 어디로 갔을까? 차고지까지 갔을까? 


#뼈해장국 #든든한한끼 #지하철 #목표지향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