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근육
나는 사실 손재주가 거의 없다. 그래서 그런 것인지 무언가를 내 손으로 만들어보고 싶다는 욕구가 내 마음 한편을 가득 채우고 있다. 내 마음 전체라고 하기엔 이런 생각을 하는 빈도가 낮기도 하고, 잘하지도 못하는 데에 마음 전체를 내주는 건 아닌 것 같다는 합리적인 판단이 작용했으리라. 최근에는 인형 옷을 만들고 싶어서 유튜브 영상을 틈나는 대로 보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내가 남편에게 조금 풀이 죽은 목소리로 말했다.
-여보, 내가 인형 옷을 만들겠다고 마음을 먹고 유튜브에서 만드는 방법을 알려주는 영상을 보면 볼수록 자신감이 줄어드는 것 같아.
-잘하는 걸 해. 아니면 내 옷부터 수선하던가.
-수선할 게 있어?
-찾아보면 있겠지.
-찾을 필요까지는 없고. 게다가 당신 옷 수선한 건 sns에 올리기도 뭐하고... 뭐랄까 그럴싸한 결과물이 아니니까.
-그래서 이번엔 뭘 만들고 싶은데?
사실 수년 전에 윤미한테 인형을 만들어주겠다고 부직포를 색깔별로 샀다가 장롱 위에 고스란히 올려둔 일이 있었고, 결국 나는 인형을 만들 엄두도 내지 못하고 포기했었다. 다행히도 그로부터 2-3년이 지난 어느 날 갑자기 딸 학교 준비물로 부직포가 필요해서 내가 의기양양하게 '다 생각이 있었네, 선견지명이네' 하면서 딸한테 부직포를 주면서 당시 상황은 일단락되었다.
-인형 옷.
-왜 하필 인형 옷인데?
-일단 예쁘고 귀엽고, 인형 옷 만들다 보면 사람 옷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한 5-6년 정도 인형 옷을 만들다 보면 나나 윤미 옷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고...
-그냥 사서 입어.
-그래도 만들어보고 싶어.
-알았어. 알아서 해.
잠시 후에 내가 남편에게 말했다.
-난 정말 손재주가 없나 봐.
-왜 또?
-아까 인형 옷 도안을 만드는데 진짜 힘들더라고.
-이제 인형 옷을 만든다면서 도안을 만들었다고?
-응. 유튜브에 보니까 직접 만들던데?
-에효... 당신을 어쩌면 좋니? 인터넷에 찾아보면 만들어놓은 도안 많을 텐데. 그거 출력해다가 도안대로 천 잘라서 박음질하면 될 텐데. 어렵게 사네.
-진짜?
-난 도안을 인쇄했을 거라고 생각했지.
-당신이 하면 잘하겠네.
-나야 어떻게 하는지 알지. 어렵지 않을 것 같기도 하고.
-부럽다.
-바느질부터 하지 말고 소근육 발달시키는 종이접기 같은 거부터 시작해봐. 그것도 쉽지 않아.
-바느질은 잘하거든! 흥!
-알았어. 그럼 해보든가.
*사진은 제가 만들고 싶은 인형 옷입니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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