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자수와 도넛

야자수는 살려주세요!

by 승주연

남편과 나, 그리고 딸은 오랜만에 밤에 운동을 핑계 삼아 산책을 나와서 다이소에도 들르고 빵가게에 가서 식빵도 샀다. 서로 갖고 싶은 것을 갖고 흐뭇한 미소를 띤 채 잠시 밖에 서있는데 남편은 마침 근처에 있는 버거킹에 햄버거를 산다고 들어갔고, 딸과 나는 하필 던킨도너츠 앞에 있었다. 언제부터인가 집에 과자를 안 사놔서 딸은 과자가 주는 달달한 에너지가 늘 고팠다. 이때 딸이 던킨도너츠를 가리키면서 말한다.

-엄마, 우리 도넛 먹을까?

-이 시간에?

-응. 마침 던킨도너츠 앞에 있으니까.

-우리 이번 달에 돈을 많이 써서 내일 먹으면 안 될까? 내일은 9월이 시작되는 날이니까.

-내일도 이 시간에 이 앞에 서있는다는 보장은 없잖아요. 아빠가 온 김에 버거킹 들어갔듯이 우리도 마침 던킨도너츠 앞에 서있는 김에 들어가서 도넛 사 먹어요.

-알았어. 대신 도넛은 네가 사.

-알았어요. 제가 살게요.


이렇게 해서 우리는 던킨도너츠에 들어갔다. 난 새로운 식재료는 두려워하지만, 새로운 과자나 새로운 도넛류는 나오기가 무섭게 도전하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다. 그런데 이때 야자수가 예쁘게 꽂혀있는 도넛이 눈에 들어왔다. 야자수 나무가 왜 새하얀 코코넛 위에 있는지 이해할 수는 없지만, 코코넛과 파인애플잼이라는 조합만 보더라도 맛없을 수 없을 것 같았고, 무엇보다도 야자수가 무척 마음에 들었다.

-난 이 야자수 나무가 꽂혀있는 도넛으로 정했어. 넌?

-전 초콜릿이 묻은 도넛과 마시멜로우가 잔뜩 붙은 이 도넛으로 정했어요.

-그래, 돈은 집에 가서 줘. 일단 엄마 카드로 결제할게.

-네.


사실 난 포장할 때 직원이 야자수를 잘 살려서 섬세하게 포장해줄 거라 내심 기대했었다. 도넛 값을 지불하고 밖으로 나온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도넛이 든 종이봉투 안을 열어봤다. 순간 나는 망치로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았다.

-아니, 이게 뭐야? 야자수를 접어서 넣다니!

-엄마, 그게 어때서요?

-아니, 이건 아니지. 내가 이 도넛을 산 이유는 바로 이 야자수 때문인데.


포장 상태를 본 나는 당장 야자수가 꽂힌 도넛을 꺼내서 딸아이 도넛 위에 얹었다. 야자수가 위로 오도록 말이다. 그러자 마음이 좀 놓였다.


-뭐 하시는 거예요?

-이렇게 해야 해. 안 그러면 야자수가 접힌단 말이야. 그런 일은 절대 일어나선 안돼.

-네? 어차피 먹을 땐 버릴 거잖아요.

-먹기 전에 사진을 예쁘게 찍으려면 이대로 집에 가져가야 해.


어쩌면 나 같은 어른들을 위해 만들어졌을지 모를 도넛을 신주 단주 모시듯 조심스럽게 가져와서 예쁘게(?) 사진을 찍은 후에 블랙커피와 함께 먹었다.


도넛을 먹으면서 야자수도 먹을 수 있었으면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나무줄기는 초콜릿으로 만들고, 나뭇잎은 음... 그러니까 나뭇잎은... 초록색 초콜릿으로 만들면 어땠을까? 그리고 이 녀석을 위해 특별히 제작한 포장지에 넣어서 케이크처럼 판매했다면 조금 더 특별한 도넛 아니, 케이크가 되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입맛을 다셨다.



#야자수나무 #던킨도너츠 #번역작가 #포장에집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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